한일수교 50주년 특별기획/ 한일 불교를 말하다
⑤ 한국불교출판계 끼친 영향

“종교 창시자의 생이란 어차피 미화되거나 과장될 수밖에 없다. 많은 이적과 신화를 통해 탄생한다. 불타 석가모니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일생에 대한 자료는 실제로 부족하다. 행적과 말씀에 대한 자료가 불교의 형태로 표현되어 수없이 전해오지만, 그의 일대기를 정리한 자료는 남전대장경이 유일하다.”

일본 불교학자 와타나베 쇼코의 <불타 석가모니>를 번역해 출간할 당시 법정스님이 남긴 말이다. 1965년 쓰여 진 이 책은 법정스님에 의해 번역되면서 ‘신적 존재’였던 석가모니 부처님을 ‘인간이면서 성자’로서 재조명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이전까지는 안진호 선생의 <신편 팔상록>에서 보여지 듯, 대승경전을 바탕으로 쓴 신격화된 부처님의 생애만이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고려 보조국사 이후 선(禪) 불교 중심으로 흘렀다. 교학은 대승불교 사상서를 중심으로 흘렀으며, “근기가 하열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고 치부 당했다. 이런 기조는 조선시대, 근대까지 이어졌다.

아함경 등 초기불전 중심으로

1970년대 日불교서적 소개 붐

이적·신화 중심 석가모니부처님

‘가장 인간적인 성인’으로 표현

‘존재’ 보다 ‘가르침’에 눈 돌려…

반면 일본은 교학과 기복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해 오고 있었다. 메이지유신 때 독일 등 유럽으로 유학한 일본 불교학자들은 초기불교 사상을 유입했다. 유럽이 동남아시아 국가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초기불교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것을 그대로 수입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까지 우리나라는 초기불교를 경시했다. 민족사 윤창화 대표는 “1960년대 강원(승가대학)에서는 ‘<아함경>이란 경전의 종류가 있다’는 정도만 알았지, 그 내용에 대해서는 ‘소승의 수준 낮은 경전’이라고 배웠다”고 회고한다.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우리나라 교학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를 이끈 것은 ‘일본 불서 번역’이었다. 일제시대 전후, 불교학자들의 주된 연구는 ‘조선불교사’ ‘한국불교사’에 머물렀다. 정작 경전에 대한 연구는 “일본 유학학자들이 필요에 따라 일본 서적을 번역한 프린트물을 나눠주는 정도”였다.

현대 불교의 변화를 가져 온 사건의 하나는 불교신문이 1964년 1월 무샤고지 사네아쯔가 지은 <석가의 사상과 생애>를 번역해 <석가>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일이다. 당시 박경훈 주필이 번역을 했는데, 5회부터는 <조용한 폭풍>이란 제목을 달았다. 이 글을 현암사 출판사에서 <석가의 사상과 생애>란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선을 통한 깨달음에만 주목했던 한국불교가 교학의 필요성을 인식한 직접적 계기”가 됐다.

윤창화 대표는 “당시 스님들 가운데 부처님의 생애를 모르는 스님도 많았다. 안다 해도 신격화된 부처님의 생애여서, 사실과는 차이가 많았다. 강원이나 일반 서적으로는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고 설명하고 “이 책은 대중에게 불교와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해 소개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불교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다른 책을 꼽는다면 단연 마스다미 후미오(增谷文雄)의 책을 번역한 <아함경 이야기>(1976년 초판 발행, 현암사)다. 초기불교경전인 <아함경>은 이전까지 한중일 삼국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못했다. 고려대장경에도 목록은 있지만 이를 연구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메이지유신을 통해 영국서 수학한 일본의 젊은 스님들이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아함경>이 소개됐고, 1910년을 전후로 초기경전에 대한 연구 붐이 일었다. 마스다미 후미오의 <아함경>도 그런 연구의 결과였는데, 이를 이원섭 선생이 번역해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불교학 연구의 개념 변화’를 불러왔다.

한국불교가 <아함경>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건’이었다. 고려, 조선시대를 걸치면서 동북아시아 대승불교권에서는 이를 “저열한 소승불교의 대표적 경전”으로 치부했던 까닭이다. 일본 도미나가 나가모도(富永仲基 1715~1746)는 ‘대승비불설’(대승경전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는 설)을 주장했다가 불교교단으로부터 파문 직전까지 갔었다. 그런 풍토에서 <아함경>의 소개는 “한국불교가 불교를 바르게 이해하기 시작한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이후 우리나라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연구 등이 뒤를 따랐고, 초기경전이 다수 유입되는 결과에 이르렀다.

<근현대 한국불교명저 58선>을 통해 해방 전후에서 현대까지 우리나라 불교에 영향을 끼친 서적을 두로 소개한바 있는 윤창화 민족사 대표는 “현재 일본의 불교서적 번역을 극복하고, 독자적으로 불교를 연구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교학과 선종이 같이 발전할 때 불교의 저변이 탄탄해지고, 포교성과도 이룰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만의 불교학을 정립하려는 시도가 더욱 활발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불교신문3118호/2015년7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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