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에게 문학을 묻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선우 작가가 원효와 요석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소설 <발원>을 펴냈다. 본지에 연재했던 내용을 정리해 이번에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 지난 6월16일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민음사 출판사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그녀가 생각하는 불교와 문학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원효와 요석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발원>을 펴낸 김선우 작가.

기자: 불교문학이란 무엇인가.

김선우: 불교문학이란 단어를 쓸 필요가 있을까. 나는 불교를 사랑하지만 신도는 아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종교성을 강요하지 않는데 불교의 가장 큰 매력이 있다. 불교문학이냐 아니냐는 이분법적 강요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원효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스님들의 가르침과도 다르다. 불교적 사유는 인류에게 보편타당한 가르침이다. 그런 사유를 담아낸 철학이 바로 불교다. 앞으로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사상이 불교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불교란 단어는 오히려 문학을 종교적 영역으로 묶어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불교문학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야 불교가 사회, 경제, 정치 등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며 스며들 수 있다. 불교문학을 규정하지 말고 좋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 좋다. 불교문학상 등을 시상할 때도 불교를 소재, 주제로 다뤘는지가 심사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불교의 가치를 담아냈는가가 주요 관점이어야 한다.

 

기자: 김 작가는 부처님과 마르크스를 정신적 주춧돌로 삼고 있다고 들었다. 왜 인가. 두 분은 어떤 연관성을 갖는가.

김선우: 두 분은 사람을 너무도 사랑한 분들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고 주인으로 살라는 인간선언이었다. 부처님 재세시 인도사회는 과도한 신 중심의 사회였다. 계급의 늪에서 고뇌하던 부처님은 그들의 고통을 어떻게 끊어줄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 결과가 모든 생명이 같은 불성을 지닌 존재라는 가르침이었고, 실천적 방법이 사성제와 팔정도를 통한 깨달음이었다. 부처님께서는 평생동안 길을 걸으면서 구도행을 펼쳤다. 사람들 속에서 탁발하고, 상담하며 아픔을 치유했다. 대자대비, 큰 자비심을 지니고 자비행을 실천한 것이 불교다. 그 인간 사랑의 모습은 내게 너무도 큰 감동이었다.

마르크스는 더 가까운 시대를 살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철학가다. 마르크스는 근대국가 성립 이후 억압된 사회구조를 타파하고, 모든 사람이 같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민중을 일깨우기 위한 글을 썼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분 간에는 2000년 이상의 시간이 존재하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같았다.

 

기자: 문학이 대중을 위해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가.

김선우: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양한 경험을 체험하는 일이다. 책을 통해 마음의 변화가 시작될 때, 상처의 치유가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작가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리고 문학을 통해 길을 제시해야 한다. 나와 이웃을 이 시대에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방식을 소설 <발원>에 담았다. 1500년 전 인물이지만, 원효와 요석의 삶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을 전하고 싶었다. 문학의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기자: 김 작가는 시와 소설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시를 쓰면 소설이 어렵다고 한다. 장문의 소설은 시와 상반되는 지점도 있는 것 같다.

김선우: 불교신문에 ‘원효’를 연재하면서 시와 소설의 경계점이 무너졌다. 독자에게 불교의 사유를 어떻게 쉽게 전달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동안 작가의 입장에서 글을 바라봤다면, 이 글은 독자의 입장에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 과정에서 문학은 결국 같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의 시와 소설은 뭔가 표현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었지만, 이후 독자에게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지 고민을 지속하다보니 시와 소설 장르의 벽이 무너졌다. 시와 소설 모두가 인간을 위한 언어이고, 읽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달하는 매개물이란 점에서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기자: 불교와 인연을 소개해 달라

김선우: 작은 언니가 운문사 스님이다. 가장 좋아했던 언니인데, 중고등학교 때 불교학생회를 다니면서 종종 내게 불교에 대해 알려주곤 했다. 어느 날 언니가 고등학교 교사를 내려놓고 ‘더 큰 공부를 하러 간다’며 출가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 강사를 하면서 별탈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생활 이면의 마음은 병들어 있었다. 세상의 혁명을 원했지만 절망에 붙들렸고, 세계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생이 통째로 허무해 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운문사에 갔다. 한 어린 비구니 스님이 ‘출가하려고?’ 질문을 했는데 마음은 ‘예’를 하고 싶었지만 몸은 ‘아니오’라며 나를 주저 앉혔다. 그리고 ‘문학으로 출가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로 시를 쓰기 시작했고, 10여 년 후 소설을 시작했다. 첫 장편소설은 해인사에서 탈고했다.

 

기자: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김선우: 3년간의 시간을 바쳐 출간한 소설이 <발원>이다. 일연의 <삼국유사>,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등 많은 문헌을 참고하고 상상력을 더해 쓴 소설이다. 원효와 요석, 보현랑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우리가 구현해야 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 독자들이 나를 어떻게 잘 사랑하면서 살 것인가를 이 책을 통해 얻기 바란다.

  

원효·요석의 운명적 만남

본지 연재소설 단행본으로

발원 1, 2권

김선우 지음/ 민음사

신라 원효스님이 역사 밖으로 걸어 나왔다. 화쟁 사상을 펼치며, 불교의 대중화를 이끈 원효스님은 중국 유학을 가던 길에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고승이면서, 중국과 일본에 큰 영향을 끼친 ‘해동보살’이다. 그의 150여 권의 저술 가운데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소> 등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경론서다. 반면 원효스님은 태종무열왕의 딸 요석공주와 설총을 낳은 파계승이기도 했다.

김선우 작가가 지난 2012년 본지에 연재한 ‘세 개의 달’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화랑을 꿈꿨던 미소년 새벽은 백제의 병사를 살리기 위해 탈영을 한다. 그리고 열여섯의 나이에 만났던 첫사랑 요석과 사랑을 나눈 로맨티스트로 그려내고 있다.

김선우 작가의 4번째 장편소설 <발원, 요석 그리고 원효>는 ‘빛나는 저녁’이란 의미의 요석과 ‘새벽 빛’이란 뜻의 원효가 운명적인 만남이었음을 전제로 한다. 육두품 신분으로 태어나 화랑도가 되었지만, 전쟁과 살상을 대면하면서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는 부처’를 서원하고 출가의 길로 들어선다. 또 요석공주는 모진 운명에 맞선 당당한 여인으로 풀어냈다.

“머리와 가슴에 횃불을 밝혀라. 그것이 청년의 일. 밝힌 횃불을 꺼뜨리지 않도록 힘써라. 그것이 노년의 일. 기억하라 머리와 가슴에 횃불이 없는 자는 이미 죽은 사람. 젊어서는 너무 이글거려 괴롭고, 늙어서는 자꾸 꺼지려고 해서 괴롭구나.” 원효가 스스로를 ‘소성거사’ 라 칭하며 요석에게 ‘숙부가 전해준 시’를 읊는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김선우 작가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강신주 문학평론가는 해제를 통해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때로는 안타까움에 탄식하게, 때로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정말로 근사한 <발원>은 우리 마음에 수많은 색깔의 파문을 만들어 낸다”며 이 작품을 평가했다.

김선우 작가는 1996년 <창작과 비평>에 ‘대관령 옛길’ 등 10여 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 <캔들 플라워> <물의 연인들>과 <도화 아래 잠들다> 등의 시집이 있다.

[불교신문3117호/2015년7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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