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심곡암 주지 원경스님

서울 심곡암 주지 원경스님은 “복지와 문화포교의 활성화로 대중과 함께 동사섭의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원각사 무료급식소 인수해

탑골공원 노인들 매일 공양

‘살아있는’ 복지 실천 귀감

서울 심곡암 주지 원경스님은 올봄 알려진 불교계 미담(美談)의 주인공이다. 재정난으로 폐쇄 위기에 놓인 종로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인수해 화제가 됐다. “원각사 무료급식소가 사라진다는 언론보도를 접한 뒤 고심 끝에 신도들과 마음을 모아” 운영을 결심했다.

4월1일부터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매일 많게는 250여 명의 빈곤층 노인과 노숙자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있다. 달마다 1500만원이 필요하며 365일 살펴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수행은 기본이고 포교는 의무인 불제자에겐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2년간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로 봉직한 선근(善根)을 바탕으로 그야말로 살아있는 복지를 실천하고 있는 스님이다.

지난 18일 탑골공원 뒤편에 위치한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스님을 만났다. 이름은 절이지만 허름한 건물의 셋방살이다. 건물만큼이나 낡은 거리엔 가난하고 늙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장기를 두거나 대낮부터 막걸리를 마셨다. 날씨는 화창했으나 왠지 어두웠고 간혹 보이는 웃음에는 핏기가 없었다. 원경스님의 마음을 붙잡고 결심을 이끈 건 이들의 애잔하고 초췌한 눈빛이었다.

“누구보다도 가족의 돌봄이 필요한 분들이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로 자식들에게마저 내팽개쳐진 분들입니다. 주소지도 종로가 아니어서, 표가 되지 않으니 정치인들에게도 외면받기 일쑤죠. 이들에게 무료급식은 세상을 향한 원망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온정입니다. 따스한 밥 한 끼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스님은 원각사를 인수하면서 ‘진흙 속의 연꽃’으로 회향하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부처님의 품처럼 청정하고 살가운 도량으로 만들기 위해, 들어오자마자 내부공사에 착수했다. 심곡암에서 이운해온 탱화를 장엄하고 낙후됐던 시설을 전면 보수했다.

기존 명칭인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는 ‘원각복지회’로 바꿔서 조계종 포교당과 보건복지부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을 마친 상태다. 무엇보다 원각복지회의 힘은 철저한 자원봉사에서 드러난다. 반포회, 연주회, 봉은회, 연화장, 서초반야회 등 30여 자원봉사팀에서 7~8명의 봉사원들이 한 달에 한번씩 나와 배식봉사를 한다. 자원봉사팀은 10여년이 넘도록 묵묵히 일손을 보탠 ‘터줏대감’들과 새롭게 인연을 맺은 심곡암 신도들이 의기투합해 가동된다.

1998년 개최 심곡암 공연

산사음악회 효시로 알려져

찬불가 작곡 문화포교 ‘눈길’

오는 7월부터는 지정기부금 단체로 등록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단순한 식당을 넘어 대중과 직접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랑방’의 기능을 더하겠다는 것이 스님의 복안이다. 2·3·4층을 임대해 쓰고 있는데, 향후 무료급식과 함께 문화예술인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연습할 수 있는 하는 등의 공간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물질적 곤란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복지라면, 문화는 정신적 상실을 위로할 수 있는 방편입니다. 그늘진 계층에게 밥과 함께 정(情)과 희망을 선물하며 동사섭(同事攝)의 가치를 구현할 것입니다.”

중앙승가대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원경스님은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 소지지다. 특히 2012년 12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로 일하며 종단 산하 복지관 관리감독과 재난구호활동을 총지휘했다. 더구나 원각사 무료급식소 운영까지… 복지전문가로서의 활약이 돋보이는 이력이다.

그러나 원래 당신의 진면목은 문화포교에서 돋보였다. 1998년 심곡암에서 열었던 산사음악회는 오늘날 산사음악회의 효시로 평가된다. 국민대 뒤편 정릉의 작은 절인 심곡암에서 불사를 일으킨 스님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방법으로 음악회를 떠올렸다. 문화계 인맥을 동원한 결과 가수 양희은 씨를 초청해 무대를 꾸몄다. 산사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펼쳐지는 인기가수의 공연은 범패와 트로트에만 익숙한 절 집안 공연문화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스님은 무대를 만드는 것을 넘어 무대에 몸소 서기도 한다. 작곡과 노래에도 능숙해 ‘룸비니동산’ ‘오시리가시리’(작사) 등의 찬불가를 직접 쓰고 불렀다. 박범훈 중앙대 명예교수가 주도한 ‘뭇소리찬불가’ 음반 제작에도 참여하면서 ‘뮤지션’으로서의 면모를 발산하기도 했다.

한국문인협회 시인 회원으로 선(禪)문학회 명예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본지에도 자주 소개된 스님의 문장은 상당히 유려하고 울림이 크다. 국내 최다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과의 친분도 두텁다. 심곡암 신도로서 불교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키워온 김 감독의 사연은 본지의 보도로 유명해졌다.

“출가자에게 전법은 의무”

근면한 일상과 창조적 사유

오늘날 승가에 필요한 덕목

이렇듯 원경스님은 예인(藝人)들의 후견인이자 스스로 예인으로 살아왔다. “이른바 ‘난(亂)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는 수행자 역시 문화를 향유하고 생산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당신에게 “예술을 창작하는 모든 작가는 도인”이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작가정신은 불교사상과 부합하는 점이 많습니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교리는 고정관념을 극복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토양입니다. 무엇보다 누구나 좋아하고 즐기는 문화는 불교가 대중 속으로 좀 더 가까이 파고들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도는 문화콘텐츠에 대한 종단적인 관심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심지어 스님은 중국의 소림무공을 전수한 흑호자(黑虎子) 사범에게서 배운 봉술의 고수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말 그대로 ‘팔방미인’인 셈이다. 이사(理事)의 영역을 활발하게 넘나드는 이유를 묻자 ‘화과동시결(花果同時結)’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꽃과 열매를 동시에 맺는다는 뜻입니다. 출가자라면 깨달은 만큼 실천하고 아는 만큼 포교해야 한다는 교훈을 품고 있는 말입니다. 깨닫고 나서 포교를 하겠다면 너무 늦는 법입니다. 한국불교의 대사회 활동이 침체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견 스님들이 열심히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다양하게 공부하면서 거기서 얻은 경험과 안목을 이웃들에게 전달하며 지혜를 일깨우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스님들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춘화추월(春花秋月). ‘봄날에 꽃. 가을에 달빛’이란 뜻입니다. 우리 인생이 젊은 날에는 꽃이 있고, 늙은 날에는 달빛이 있습니다. 꽃은 한낮에 향기와 빛깔을 품으며 자신의 존재를 뽐냅니다. 달빛은 어두운 밤에 빛의 신비로움을 토해냅니다. 꽃과 달을 보면서 저마다 현존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제 빛깔을 잃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도통 사람이 살 수 없을 무법천지 같은 세상을 보며 춘화추월의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들을 줄 아는 귀가 마냥 그리워집니다.”

원경스님의 법문집 <그대 진실로 행복을 바란다면, 소중한 것부터 하세요>에 나오는 구절이다. 거리의 보살이 되어 중생의 허기와 신음을 달래는 모습은 봄날의 꽃향기 같고, 수행자로서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 모습은 은은한 달빛을 닮았다. 여느 현대인들처럼 분초를 다투는 삶이지만, 그것은 경쟁이 아닌 자비를 위한 삶이어서 정답고 미덥다.

원각사 무료급식소 후원문의 (02)762-4044

후원계좌(예금주:사회복지원각) 국민은행 006001-04-282872, 외환은행 630-009714-407, 하나은행 162-910018-48204, 농협 301-0168-4929-11

■ 원경스님은 …

1983년 현호스님을 은사로 조계총림 송광사에서 출가한 원경(圓鏡)스님은 1984년 부산 범어사에서 일타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87년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미국 LA 고려사 주지, 제15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 심곡암 주지와 서울 종로 탑골공원 무료급식소 원각사 운영을 맡고 있다.

1998년 심곡암 산사음악회로 현대적 개념의 산사음악회를 최초로 시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국문인협회 시인 회원이자 선(禪)문학회 명예회장이며 시집 <그대, 꽃처럼>과 수필집 <그대 진실로 행복을 바란다면, 소중한 것부터 하세요> 등이 있다. 작곡과 노래에도 능숙해 ‘룸비니동산’ ‘그대, 꽃처럼’ ‘오시리가시리’ (작사) 등의 찬불가를 직접 쓰고 불렀다.

[불교신문3116호/2015년6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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