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규내용, 법제화 방안에 대해 이견차 좁히지 못해

교육원 불학연구소장 수경스님의 사회로 진행된 금강, 덕문, 자현, 주경스님과 조성태고려대 교수가 참석했다.

2600년 전 부처님 당시 제정한 율장으로는 변화된 현대생활까지 아우르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종단에서도 그동안 현대사회에 맞는 청규를 제정해 실천하자는 움직임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다양한 의견으로 이렇다 할 결과물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6월2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조계종 교육원 교육위원회(위원장 종호스님)와 중앙종회 교육분과위원회(위원장 심우스님)가 공동으로 주최한 ‘현대사회 승가청규’에 대한 세미나 역시 이런 기류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참가자들은 현대사회에 맞는 청규가 필요하고, 승가교육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지만, 청규 내용과 법제화 방안에 대해서는 이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현대사회 승가청규는 어떤 내용으로 제정되어야 하는가’는 주제로 발제한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교육아사리)은 새로운 청규에서 다뤄야 내용에 대해 살펴봤다. “폭력, 도둑질, 음행, 도박, 난폭운전과 같이 현대사회의 문제는 물론 의식주나 현대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생활방식 등을 다뤄야 한다”고 본 스님은 소재에 따라 가격차이가 큰 옷과 신발, 모자도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또 외출에 따른 육식과 음주, 흡연 외에 호텔 등 대중숙박업소의 출입, 토굴이라는 미명하에 아파트를 소유하는 등에 대해서도 새로운 청규에서 다뤄야 할 대목이다. 재가자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됐던 하대와 반말 등의 태도나 현대사회의 문제인 인터넷 게임, 주식투자, 자동차 문제나 개인의 자산소유 등도 내용에 포함될 수 있다.

첫번째 발제를 한 금강스님.

금강스님은 “율장은 부처님 말씀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지만, 청규는 동아시아 불교에서 선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권위를 획득하는 게 중요하다”며 “청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올바른 인식 확산과 지속적인 율장교육이 반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영축총림 통도사 율학승가대학원장 덕문스님은 “부처님께서 허용하신 범위 내에 이뤄져야 정통성과 권위를 잃지 않을 수 있다”며 새로운 청규는 율장에 근간해 만들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소유와 소비문화 등의 예민한 부분과 승가의 부정적인 면을 외부에 내놓아야 하는 부분에서는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피력했다.

교육아사리 자현스님도 “구체적인 항목제시에서 파생하는 유치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예컨대 ‘술 먹지 마라’나 ‘인터넷 게임을 하지마라’와 같은 조항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얼마나 술을 많이 마시는 집단이면’이나 ‘얼마나 게임을 많이 하는 단체면’이라는 비아냥거림과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자현스님은 “오계 중에 ‘도둑질 하지 마라’는 계목이 있지만 아무도 유치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며 “교주의 권위와 부합시키지 않는다면 제2의 ‘자동차 배기량 논란’만 야기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승려법과 관련해서도 징계가 한계를 보이는 상황에서 도덕과법의 중간영역인 청규를 법제화한다고 해도 과연 징계가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도 제기했다.

두번째 발제를 맡은 주경스님.

중앙종회의원 주경스님(서산 부석사 주지, 불교신문 주간)은 ‘새로운 승가청규, 어떻게 종단에 정착시킬 것인가’를 주제로 발제했다. 스님은 “현대에 맞는 청규를 만들자고 한다면 <선원청규>와 <승가청규> 내용 중에서 규제성 있는 부분만 발췌하고, 종법령 가운데 승려법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며 “다만 스님들마다 폭이 넓고 다양하기 때문에 현대사회와 종단 시각을 새롭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회법의 경우 1752개 제재조항이 있는 것처럼 청규도 구체화된 법이 필요하지만, 승가의 위의를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담배나 도박 관련 청규조항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칫 스님들 담배를 피우거나 도박을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또 청규를 법으로 제정한다면 청규의 틀과 실행의 주요 내용만 담고, 세부내용은 교구나 대중에게 맡기자고 말했다. “교구종회나 임회, 율 전공자가 참여해서 청규 내용을 교구나 당해대중에 맡겨 청규법으로 만드는 게 좋을 것”이라며 “어떤 교구에서 산문출송을 결의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교구에서 문제를 일으킨 스님에 대해 빈척하거나 소임을 주지 않거나 하는 것을 종단이 인정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규를 정착시키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로 스님은 법제화를 제안했다. “법이 아니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중앙종회의 공감을 얻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 방법이 승가교육에 반영하는 것이다. “초발심자경문 안 배우면 조계종 스님이라고 할 수 없듯이, 승가대학에서 시행되는 계율과 불교윤리 과목에서 청규법 교육하면 좋을 것 같다”고 스님은 말했다.

이에 대해 조성택 교수는 청규 법제화에 이견을 제시했다. “청규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받거나 ‘비난’받는 규제와 규율이 주가 돼서는 안된다”며 “난폭운전, 게임, 도박, 사치, 방종 등은 누구나 해서 안될 일인데 이런 내용을 청규에 포함한다면 오히려 승가의 위의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청규를 새로 만든다면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가장 바람직한 스님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교육과 계도의 관점에서 제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종회의원 만당스님도 토론문에서 “청규의 법제화는 자칫 잘못하면 불교와 종단, 승가대중의 신뢰만 추락시키는 부메랑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며 숙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법제화보다 먼저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게 승가대중을 교육시키고, 종도들과 일반사회 대중에게 홍보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필요성을 인식시켜야 한다”며 “종법에 의한 규율은 승려법 정도로 그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신문3117호/2015년7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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