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는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회부장 정문스님이 6월17일 열린 성소수자초청법회에서 환영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정문스님 옆으로 걸린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깃발이 눈에 띤다.

“불교는 일찍이 차별을 넘어 존재의 평등과 고귀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힘들지라도 머지않아 성소수자 여러분들의 가정과 이웃, 직장에서 떳떳하게 성적 권리가 인정되고 보장돼 웃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자비심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종단에서도 관심을 갖고 노력해나가겠습니다.”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정문스님이 오늘(6월17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성소수자초청법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오는 28일 서울광장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 거리행진을 앞두고 차별받는 성소수자들을 감싸안고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기 위해 조계종 노동위원회 초청으로 열린 이날 법회에는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100여명이 참석했다. 

강연과 문화행사 등으로 진행된 이날 법회에 앞서 정문스님은 “불교에서 모든 존재는 소중하기에 서로 존중하며 자비의 마음으로 평온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있다”며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드넓은 마음으로 헤아리길 바라며 세상 또한 여러분들을 하루 빨리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동위원 효록스님이 강연하고 있다.

인사말에 이어 노동위원 효록스님의 강연이 이어졌다. 효록스님은 ‘모든 존재는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친한 친구의 갑작스런 커밍아웃으로 충격을 받았던 이야기, 동성애자들을 위한 법회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안타까움, 소수자들이 사회에서 차별받으며 느꼈을 분노를 다스리는 법, 계급과 성차별이 심했던 시대에 평등을 가르쳤던 석가모니 가르침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참가자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전했다.

스님은 “불가촉천민과 눈이 마주치면 물로 눈을 씻어내야 부정을 타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때, 여성이 남성의 부속품으로 취급받던 시대에 부처님께서 태어나셨다”며 “그러나 창녀가 출가를 한다고 했을 때도 비난 없이 그를 기꺼이 비구니로 받아들였을 만큼 부처님께서는 성(性)과 계급에 있어서 모든 존재를 차별 없이 받아들이셨다”고 말했다.

또 "부처님께서는 출가자에게는 성행위를 하지 말라셨고 재가자에게는 간음하지 말라셨다"며 "그러나 그 대상이 이성인가 동성인가에 대한 말씀은 없으셨다"고 말했다. 이어 "부처님께서는 책임있는 성행위, 도덕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성생활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을 뿐, 동성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판단하지 않으셨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부처님께서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불성이 있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평등한 존재라고 말씀하셨다”며 “<화엄경>에서도 모든 존재는 차이가 있고 다름이 있을지언정 차별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법회에 참석한 정모 씨(대학생,25)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많았는데 오늘 강연이 많은 위로가 됐다”며 "특히 모든 인간은 불성이 있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평등한 존재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고 말했다. 이어 “종교계가 우리 같은 성소수자를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고 한편으론 반갑기도 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교리적으로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타종교인도 참석해 법회를 지켜봤다. 캐나다인 크레이그 바틀렛 열린문 메트로폴리탄 공동체교회 목사는 "차별받는 동성애자들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가슴아픈 일"이라며 "그러나 오늘처럼 이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또 "스님이 직접 나서 동성애를 주제로 강연하는 것이 매우 인상깊었다"며 "같은 종교인으로서 감동받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동주최 측인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이종걸 운영위원은 법회에 앞서 "퀴어문화 축제가 있는 뜻 깊은 달에 불교계가 선뜻 손을 내밀어줘 고맙다"며 "종교가 가진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고 소수자들과 함께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감사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법회는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법회인만큼 무대 한쪽에서는 1명의 청각장애인 참가자를 위한 수화통역도 진행됐다. 

한편 노동위는 지난 2013년부터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초청해 왔다. 지난 25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에는 국내 최초로 동성 간 공개 결혼식을 한 김조광수 영화감독을 초청, 모두가 차별없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길 기원하기도 했다. 

법회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문화공연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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