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꽃피우다

원철스님 외 라이프맵

밝게 웃는 선비같은 외모

해박한 문화유산 지식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감동 주던

 

섭섭할 틈 없이 영영 이별한

성안스님 기리는 마음 담아…

팔만대장경 지기를 서원한 성안스님. 지난해 세상과 이별한 스님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책을 펴냈다.

성안스님이 있었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동국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서울역 앞에서 우연히 동주원명스님을 만나 감화를 받고 그 길로 해인사를 찾았다.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미얀마와 미국에서 불교학을 연구한 스님은 다시 해인사로 와 팔만대장경 연구와 보존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지난 해 봄, 교통사고로 이 세상과 인연을 마쳤다. 20여 년 출가 생활이었지만 스님을 그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사람들이 글을 모아 펴낸 책이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꽃 피우다>다.

“선방이 있는 심심산골의 작은 암자였다. 그 스님은 해제 시기 임에도 불구하고 절을 지키면서 새벽마다 정성스럽게 종송을 읊조렸다. 기교를 부리는 염불은 아니었지만 얼마나 마음에 울림을 주든지 신남신녀들이 그 청아한 음성을 듣기 위해 새벽 법당을 앞다투어 찾아갈 정도였다.”

해인사 승가대학장 원철스님이 기억하는 성안스님의 모습이다. 책은 해인사 아침 예불의 모습과 강원의 생활에 대한 단상에 이어 1996년 성안스님이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로 이어진다.

“가족을 떠나 출가한 저를 늘 가슴에 품고 계실 부모님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편에 바람이 붑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매일 아침 목탁소리에 맞춰 부처님 명호를 부르며 108대참회를 마치고 나면, 어느새 찬바람이 온풍으로 바뀌어 저를 따듯하게 감싸주는 걸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안스님은 대만 서래대학에서 수학하면서 은사인 동주스님에게 자신의 생활을 잔잔한 편지글로 전하기도 한다. 한 농장으로 가서 수행을 체험하고, 대만에 온 유명한 세계의 스님들을 찾아 법을 듣는 과정 등을 적었다.

“인연이란 것이 참 묘한 것 같습니다. 스님을 뵌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8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 인생의 반은 스님의 그늘에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편지를 받아든 동주스님은 답글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 세속으로 보면 대단한 영광이고 큰 일을 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행자는 그것에 만족하고 우쭐해서는 안된다. 그리되면 출가자의 본분사는 망각한 채 오욕락에 떨어져 살게 된다”는 충고와 “특별히 부탁할 것은 건강을 조심하여라”는 은사의 마음도 담았다.

이 책에서 눈길이 가는 점의 하나는 출가해 학업에 정진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성안스님이 부모, 은사, 지인에게 쓴 편지와 생활에 대한 글은 스님들의 하루 일과이며, 수학하는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서 공부를 하던 성안스님은 해인사 장경판 지킴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해인강원 동문인 오성스님에게 편지를 보냈다. “어둠을 밝히는 자신의 달은 장경판인 것 같다”는 편지를 보내고 얼마 후 대장경 국제세미나 참석을 위해 귀국한 스님은 ‘장경각 장주’를 자청했다. 스님을 그리는 사람들은 스님들 뿐이 아니다. 재가자 가운데서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님과 저녁 공양을 하고 다담을 나눈 후, 참으로 교교하게 빛나는 정월대보름 달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절 위의 마애불까지 걷던” 민일영 대법관, “항상 밝게 웃는 선비같은 외모와 유머감각, 지식…팔만대장경을 인경하는 사진을 선물하고 뒷면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을 행복한 날에 드립니다’ 메모를 써 주었던” 스님을 기억하는 김휘 씨 등등.

미국서 귀국해 해인사에 머물던 3년간의 시간에 스님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누구에게든 미소를 보냈고, 격의없이 마주했다. 또 불교와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이해는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곤 했다.

책에서는 팔만대장경 제작의 의미가 무엇이고, 어떤 점에서 우수하다고 평가가 되는 것인지 등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의 제작에서 보존, 현재까지의 내용이 잘 정리돼 담겼다. 팔만대장경 지기를 자청한 성안스님을 기리는 마음이 담긴 편집이다. 또 이 책의 묘미 하나는 불교계 문사라 불리는 원철스님을 비롯해 월간 해인편집장 종현스님, 남해 염불암 주지 성전스님, 대구 불광사 주지 관암스님, 청주 현진스님, 운문사 영덕스님 등의 글을 만날 수 있다는데 있다. 아름다운 글로 성안스님을 추모하고, 인연의 덧없음을 아쉬워하는 글 한편 한편이 저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봄날이 오니 문득문득 성안스님 생각이 난다. 섭섭할 틈도 주지 않고, 영영 이별이라서 매화꽃을 보니 그가 더 그립고 보고싶다. 무엇이든 다 베풀 것 같은 격의 없는 그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상상을 한다. 꿈에서라도 만난다면 이번에는 매화향기를 손수건 가득 담아서 보내고 싶다.” (청주 마야사 주지 현진스님)

성안스님은 대장경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2010년 해인사에서 열린 ‘대장경 축제’와 인연으로 장경각에 머물며 “평생을 대장경과 함께 하고 싶다”던 스님의 삶을 기록한 이 책은 보편적인 출가자의 생활과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다. 그 위에 팔만대장경의 의미와 가치가 덧씌어진 책이다.

[불교신문3109호/2015년5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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