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제 종정예하, 을미년 하안거 결제법어 발표
진제 종정예하는 오늘(5월27일) 발표한 결제법어에서 “모든 결제대중은 부처님께서 사바에 출세하신 뜻을 좇아 일구월심 참나를 밝히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며 “출가하여 먹물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나고죽는 고통을 영구히 여의고자 하는데 있는 것이지 다른 데 있지 않다. 오직 스스로 닦아서 스스로 증득(證得)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종정예하는 “불가(佛家)에는 여러 수행법이 있지만은 다른 여타의 수행법으로는 대오견성(大悟見性)이 불가능하고 오직 간화선 수행만이 이 일을 밝혀줄 수 있는 것”이라며 “이 견성법(見性法)을 만난 김에 이번 생은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수양에 몰두해야 한다”고 간화선 수행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다음은 진제 종정예하 을미년 하안거 결제법어.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太平治業無像<태평치업무상>이요 태평세월에 업을 다스리는 데는 상이 없음이요, 금일은 을미년 夏安居(하안거) 결제일라. 모든 결제대중은 부처님께서 사바에 출세하신 뜻을 좇아 일구월심 참나를 밝히는 일에 몰두해야 함이로다. 우리가 세속의 온갖 부귀영화도 마다하고 일가친족 등 정으로 맺은 인연을 다 끊고 출가하여 먹물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나고죽는 고통을 영구히 여의고자 하는데 있는 것이지 다른 데 있지 아니함이로다. 그런데 이 일은 남이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어디 다른 나라에 가서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아님이라. 오직 스스로 닦아서 스스로 증득(證得)해야 함이로다. 불가(佛家)에는 여러 수행법이 있지만은 다른 여타의 수행법으로는 대오견성(大悟見性)이 불가능하고 오직 간화선 수행만이 이 일을 밝혀줄 수 있는 것이니, 다겁생에 만나기 힘든 이 견성법(見性法)을 만난 김에 이번 생은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수양에 몰두해야 함이로다. 그러면 어떻게 닦아야 참나를 밝혀 생사(生死)를 요달(了達)할 수 있음인고? 이렇게 바른 자세로 뼈골에 사무치는 의심을 짓고 화두를 챙겨갈 거 같으면, 사위의(四威儀) 가운데 눈 앞에 화두가 떠나지 않아 졸리는 바도 없고 망상이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 가 없는 것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부가 무르익어지는 것이로다. 그렇게 혼신의 정력을 쏟아 무한히 노력하다보면 문득 참의심이 발동하여 화두의심 한 생각만이 또렷이 드러나게 되는데,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밥을 지으나 청소를 하나 직장일을 하나 잠을 자나,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 한 생각만 흐르는 냇물처럼 끊어짐 없이 흘러가게 됨이로다. 사물을 봐도 본 줄을 모르고 소리를 들어도 들은 줄을 모르게 됨이니, 다겁다생에 지어온 모든 습기가 다 녹아 없어져 버리게 됨이로다. 이러한 상태로 한 달이고 일 년이고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남과 동시에 자기의 참 모습이 환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로다. 그러면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여래(如來)의 땅에 이르게 되고 천 칠백 공안을 한 꼬챙이에 다 꿰어버리게 되는 것이니, 누가 어떠한 법문을 물어와도 척척 바른 답을 내놓게 되는 것이로다. 이것이 바로 호왈견성(號曰見性)이요, 확철대오(廓徹大悟)라, 반드시 선지식을 친견하여 바르게 점검받아서 인가(印可)를 받아야 함이로다. 왜 그러느냐? 그러니 모든 대중은 이 같은 자세로써 어떻게든 이번 안거 동안에 득력하여 불은(佛恩)과 시은(施恩)을 다 갚고 생사를 요달할 수 있도록 혼신의 정력을 쏟을지어다. 석일에 덕산(德山)선사께서 회상을 열어 대중을 지도하고 계실 때, 참으로 훌륭한 두 분의 눈 밝은 제자를 두었는데, 한 분은 암두(岩頭)선사로 참선하여 깨달은 바도 없이 그대로 생이지지(生而知之)요, 또 한 분은 훗날 천오백 대중을 거느리신 설봉(雪峰)선사였다. 하루는 덕산선사께서 공양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 식당으로 걸어가셨다. 공양주인 설봉스님이 이 모습을 보고 여쭙기를, 자신의 스승이건만 단 번에 이렇게 평가를 하니 법을 논함에 있어서는 스승과 제자를 따지지 않는 법이로다.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가지고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덕산선사께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간 뜻이 무엇이며, 암두스님은 어째서 덕산선사가 말후구 진리를 알지 못했다 했는지 알아야 함이로다. 암두스님의 그 말이 총림에 분분하여 덕산선사의 귀에 들어가니 암두스님을 불러서 물으시기를, 암두스님의 덕산선사의 귀에 대고 은밀히 속삭인 대문을 아시겠습니까? 대체 무어라고 속삭였기에 덕산선사께서 종전과는 판이하게 다르고 당당한 법문을 하신 것입니까? 그러면 금일 모든 결제대중은 아시겠습니까?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산승이 양팔을 걷어붙이고 이 법문을 점검해서 천하에 공개하리니, 어째서 이와 같이 점검하였는지 대중은 잘 살필지어다. 馬駒踏殺天下人<마구답살천하인>하니 한 망아지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니,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
[불교신문3109호/2015년5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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