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학회·백련불교문화재단, 6월5일 춘계학술대회

한국불교학회와 백련불교문화재단은 오는 6월5일 오후1시부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퇴옹 성철의 불교전통 계승과 현대 한국사회’를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근대화 과정에서 불교전통 계승과 근대 불교문헌학의 수용이라는 두 현상이 한국불교계에 어떤 형태로 수용됐는지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현대 한국불교 전통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분으로 언급되고 있는 성철스님을 직접적인 분석과 논의 대상으로 삼고, 이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불교전통 담론을 적용하는 방법론상의 타당성과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할 예정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황순일 동국대 교수가 ‘중도와 한국불교의 근대성’, 최원섭 금강대 HK연구교수가 ‘전통 계승과 근대불교학의 수용-백일법문을 중심으로’, 한국선문화연구원 원장 성본스님이 ‘선승의 역할·본분종사와 세속사회’, 박태원 울산대 교수가 ‘진리담론으로서 퇴옹의 돈오돈수론’, 석길암 금강대 HK연구교수가 ‘깨달음의 사회화, 봉암사 결사정신의 현대적 계승’을 주제로 각각 발표한다.

논평은 안성두 서울대 교수, 서재영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권탄준 금강대 교수, 이덕진 창원문성대 교수, 박재현 동명대 교수가 맡았다.

다음은 발제문 요약본이다. 

전통 계승과 근대 불교학의 수용 최원섭(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HK교수)

이 글은 퇴옹성철의 ‘백일법문’이 어떤 방식으로 불교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근대불교학을 수용했는지를 살펴본 글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불교 전통은 한문문헌 중심의 동아시아불교를 말한다. 선사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면서 설해진 백일법문답게 퇴옹성철은 철저하게 동아시아불교 전통을 ‘진실’로 삼아 상황에 따른 ‘방편’을 도입한다. 근대 과학과 근대 불교학의 성과를 받아들인 일 역시 방편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백일법문의 ‘중도’ 역시 제국주의적인 일본의 근대 불교학의 성과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설명은 비판의 여지가 많다.

중도와 한국불교의 근대성 (황순일, 동국대)
성철스님에 있어서 중도는 서구 불교학전통의 성과를 수용하고 한국적인 해결을 모색한다는 측면에서 한국불교의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조계종의 경우 기원전 600-400년경에 실존했던 샤카모니 붓다를 중앙에 모시면서도, 반야심경을 가장 많이 합송하고 금강경의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다.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붓다에 의해서 쓰여 졌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불교 문헌들에게 대한 근대적 문헌학적 연구 성과의 결과이다.

성철스님은 이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중도를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으로 보고 비록 역사적인 붓다가 직접이야기하지 않았더라도 후대에 발전한 교리가 중도에 부답된다면 불설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 사실상 백일법문은 불교교학 전체를 중도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불설로 확정하려는 하려는 성철스님의 간절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성철스님은 한국불교의 근대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선사이면서도 불교교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중도를 통한 불교사의 재해석을 통해 대승불교 경전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한국적인 해결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성철스님과 선승의 본분사 -悟道頌과 涅槃頌을 중심으로 (한국선문화연구원 성본)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출세한 일대사(一大事) 인연을 선불교에서는 시절인연에 따른 자기 본분사(本分事), 혹은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한다.
즉 제불의 본원(本願)과 일대사 인연처럼 정법의 안목(眼目)을 구족하여 지금, 여기, 시절인연에 따라서 부처의 지혜로 보살도의 삶을 건립하는 것이 선승의 본분사이다.

성철스님의 본분사는 다음과 같은 오도송(悟道頌)을 토대로 한다.

黃河西流崑崙頂 황하의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곤륜산을 뒤덮고,
日月無光大地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대지는 침몰했다.
遽然一笑回首立 갑자기 한 웃음 머리 돌려 본래에 서니,
靑山依舊白雲中 청산은 여전히 본래 그대로 백운과 함께하네.

중생심으로 보면 황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태양과 달이 빛을 비추고 대지가 엄연히 대상 경계로 존재하지만, 진여본심(佛心)은 일체의 대상을 텅 비우고, 법계와 하나 된 경지(一相)이므로 의식의 대상경계를 초월한 일체개공의 경지이다.
제불의 출신처에 대하여 운문선사는 ‘동산이 물위로 걸어간다(東山水上行)’ 라고 하는데,
중생은 東西의 방향과 시간에 맞춘 대상 경계에 속박되어 살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법계에 항상 두루하고 평등, 무애자재하다.
(그래서 청산과 백운, 산과 물, 태양과 달, 일체만물이 서로 서로 무심의 경지에서 걸림 없이 무애자재하게 자기 본분사의 평화로운 삶을 살며, 본래의 특성을 상실하지 않고 지금 여기 시절인연에 따라 만물에게 빛과 공기와 생명수를 제공하는 본분사의 일을 여법하고 한다.)

그래서 성철스님이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寂(부처)과 滅(중생)이 둘이 아니다. --- 산은 산, 물은 물’ 이라고 설했다.

성철스님은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는 열반송(涅槃頌)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生平欺&#35473;男女群 한 평생 선남선녀의 대중들을 기만하여,
彌天罪業過須彌 죄업이 하늘에 가득하고 수미산을 넘었네.
活陷阿鼻恨萬端 산채로 아비지옥에 빠지니 그 한(恨)이 수만 갈래.
一輪吐紅掛碧山 일륜(一輪)이 붉은빛을 토하니 벽산에 걸렸네.

설법은 정법의 안목을 구족한 선승의 원력행이며 본분사이다. 언어 문자로 설할 수 없는 불법(佛法 ; 眞如法)을 한 평생 설법한 것은 선남선녀를 속이는 일이었다고 고백하고, 그 죄업이 많아 산채로 아비지옥에 빠졌으니 한이 만 갈래로 많다고 했다.
성철스님의 위대한 점은 자신의 과오를 정법의 안목으로 판단하고 자각한 사실이다.
중생은 정법의 눈이 없어 자신의 허물을 볼 수가 없어 보살행을 할 수 없지만, 성철스님은 죄업 많은 중생의 세계에서 불법의 지혜(活 ; 산채로)로 동사섭의 보살행을 했다.
(한 많은 중생들의 심병(心病)을 치료하기 위해 수만 갈래로 다양한 방편의 지혜를 제시하는 일이 아비지옥(중생세계)에 빠지는 선승의 본분사였다.)
일륜(一輪)의 태양이 붉은 빛을 토하니 벽산에 걸렸다는 것은, 중생의 무명산(無明山) 위에 부처의 지혜광명을 비추는 선승이었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