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59년 부처님오신날 특집/
노래 그림…언제나 ‘초심’ - 만능 예술인 조영남

재미와 의미가 있다면 무엇이든 붓으로 그리고 기타로 노래하는 조영남. 건강은 부처님께 맡겨두고 오직 열정으로 ‘오늘’을 사는 그다.

노래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70평생 살아보니 덧없어…

자비·사랑 품은 ‘선량한 삶’

부처님 예수님 똑같은 진리

‘초심’이란 최초의 마음 아닌

인간 본연 정신·佛心 아닐까

200평 가까운 대저택에 사는 조영남은 맨발에 물감이 울긋불긋 묻어있는 낡은 작업복 바지를 입고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자기집에 찾아온 기자에게 대뜸 “누구시냐?”고 묻더니, 이내 알아챘다. “아, 오늘이 벌써 그날이군.” 다 늘어진 ‘런닝구’에 야구모자를 삐딱하게 쓴 모습만 봐도 그냥 웃음이 났다. 엄마말 안듣고 짓궂은 장난만 골라 치는 개구쟁이 같다. 어딜 봐도 올해 나이 일흔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군사정권 아래 영호남 갈등 최절정기였던 1980년대 후반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마을 구례사람’이 어우러진 노래 ‘화개장터’를 목놓아 불렀던 그는 그때부터 줄곧 ‘화합’의 아이콘이 됐다. 그보다 20년이나 앞선 1968년 스물세살 서울대 음대생 시절 등록금 벌기 위해 미8군 무대에 선 조영남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서울대를 자퇴하고 ‘세시봉’이라는 음악다방에서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와 더불어 음악에 열정을 불태운 사실도 최근 영화화되면서 잘 알려졌다. 그가 지난해 만든 노래 ‘통일바보’도 남북화합의 꿈을 순수하게 담아낸 조영남표 대중가요다. ‘부산에서 아침 먹고, 서울에서 점심 먹고, 평양에서 냉면 먹고 오는 것이 오늘 나의 스케줄…부산에서 야구 보고…’ 가사만 봐도 유쾌하고 재밌다.

‘화개장터’로 화합아이콘

독실한 기독교 집안, 배천 조씨 가문에서 태어난 조영남은 1970년대 초반 미국 침례교 목사인 빌리 그레이엄 집회 때 성가를 부른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플로리다 트리니티신학대에 들어갔다. 굳이 신학대에 노크한 것은 그가 가진 의문점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기독교 정신이 얼마나 대단한 가르침이라고’ 온가족이 그토록 신봉하는가 의구심이 컸다. 신학공부를 마친 결과, ‘별것 아닌 결론’에 이르렀다.

“사랑을 베풀면서 선량하게 살라는 거야. 이것은 자비심을 갖고 보시하며 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무엇이 다른거지? 아차, 종교도 어쩌면 시대흐름을 타고 발생하는 유행이로구나. 한평생 교회 권사로 살다 가신 내 어머니도 고려시대에 태어났다면 독실한 불자였을 것이고, 조선을 살았다면 철저한 유교주의자가 되지 않았을까. 뒤늦게 모든 종교가 목표하는 지향점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너희가 나를 따르면 진리를 알고,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요한복음 8장 구절을 빗댄 조영남은 “종교의 동일한 지향점을 나름 깨우쳤을 때 비로소 종교로부터 해방됐고 삶과 사랑에서 자유와 평화를 찾았다”고 말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초심 역시 ‘최초의 마음’이 아니라, 이같은 ‘본질적인 본연의 정신’이라고 했다.

1951년 한국전쟁 때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이 중공군을 피해 1·4후퇴를 할 때 온 가족이 미군 군함에 몸을 싣고 당도한 곳은 충남 예산 삽교천. 조영남의 제2고향이다. 삽다리로 불리는 삽교천 일대 이름없는 작은 절을 놀이터 삼아 유년시절을 보냈다. “삽다리 꽃산에 참 아름다운 절이 하나 있었거든. 날이면 날마다 절마당에서 뛰어놀았지. 나처럼 한국인 누구나 고향 언저리에 절 하나쯤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꺼야. 불교는 한국인의 숙명과도 같지.”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불자인데다, 최근 사귄 여친도 불자여서 함께 절에 다니며 데이트를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사찰은 교회나 성당과 다른 느낌이 있잖아. 고향집처럼 아늑하고 엄마품처럼 포근하고….”

요즘은 밤낮없이 ‘부처님’만 그린다.

조영남은 화가(畵家)와 가수(歌手)에서 한 글자씩 따와 자신을 ‘화수’라고 칭한다. 군대에 있을 때부터 취미로 그렸던 그림은 대중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고 특유의 ‘화투그림’이 화제가 되면서 화가반열에 당당하게 올랐다. 자칭 ‘딴짓 예찬가’답다. 이제 조영남의 그림은 가수가 취미삼아 그린 게 아니라 예술성과 사회성을 멋스럽게 갖춘 품격높은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삶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음악과 예술은 어떤 의미로 조영남이라는 인간을 채워줄까.

“노래와 그림은 내가 살아가는 한심한 꼬라지야. 내 꼬라지로 이것밖에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역력하게 보여주는 것이지. 이보다 재밌는게 있으면 그걸 하지.” 듣고보니 조영남은 노래하고 그림 그릴 때 가장 ‘꼬라지’가 멋졌다. 요즘 애들 표현으로 ‘간지’가 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는 말처럼 조영남은 ‘제대로 놀아서 성공한 놈’이다. 노래와 그림, 글과 뒤엉켜 사람들 손잡고 유쾌하고 통쾌하게 놀 줄 아는 남자다.

그가 이번에는 ‘부처님’과 제대로 한번 놀아보기로 했다. 부처님이 모셔진 사찰 법당에서 괴짜화수 조영남이 상상하고, 조영남이 만난 각양각색 부처님들을 선보인다. 숭고한 전통과 예법은 물론 서로다른 종교와 온갖 종교적 사물들이 세워놓은 벽을 과감하게 깨부수고, 우리 마음속에 고집스럽게 뿌리내린 편견을 보기좋게 내던져버린 결과물들이다.

1994년 둥지를 튼 ‘부천 석왕사 외국인노동자의집’ 설립 20주년을 맞아 열리는 다문화축제는 차별과 격식을 깨부순 조영남의 작품 속에서 함께 웃고, 그와 함께 노래부르며 ‘바로 지금’을 즐기자는 취지로 펼쳐진다. 작품 가운데는 석왕사 스님들과 조영남표 화투가 함께 그려져 있기도 하고, 불교를 상징하는 만(卍)자와 십자가(十)를 묘하게 합쳐 종교가 지향하는 동일점을 시사하기도 했다.

상상 이상의 파격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려했더니 돌아온 말. “이런 짓은 지구상에서 세계적으로 처음이지만 재밌는 작업이야. 일부러 파격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 거기에 종교적 심성을 삽입하는 것이 관건이지.” ‘조영남이 만난 부처님展’은 부처님오신날 하루전인 5월24일 봉축 전야제 형식으로 음악회와 함께 오픈하고 오는 6월28일까지 석왕사 천상법당에서 만날 수 있다.

조영남은 전시준비 과정에서 얼마 전 석왕사 주지 영담스님을 만났다. “동시대를 사는 똑같은 남자로서 원 세상에 저토록 확 트일 수 있을까. 바다처럼 트인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내 인생 끝무렵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었으니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이다.” 스님이 확 트였다는 건 어떤 것인가 물었다.

“이 시대 스님들에게 조영남은 누구보다 기피인물 아닌가. 여자문제 복잡하지(웃음) 신학대 나온 크리스찬이지, 그림 그린답시고 화투짝이나 그리고 앉았지. 이런 나를 엄숙하고 존엄한 법당에 불러주고, 내 그림을 법당을 개조해서 장엄해주신다고 하는데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걸림없고 분별없는 스님을 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불교를 얼마나 답답하고 따분하게 바라봤나 크게 뉘우쳤지.”

그는 또 말했다. “내가 기독교인이어도 기독교에선 이런 특별전을 상상도 못하고 시도도 못해. 정말이야. 종교라는 울타리가 무엇을 억압하고 제한하고 구속한다면, 그것은 이율배반이잖아.”

섬세하고 위트있는 조영남도 올해 나이 일흔, 영락없는 할아버지다. “나이가 어찌 숫자에만 불과하겠어? 긴 세월 많은 경험 하면서 무르익어가는 것이지. 나이먹어 늙어가는 것이 거지같고 더럽지만, 마냥 더럽지만은 않다는 것. 그것을 알아야 해. 마냥 더럽지만은 않다는 것!” TV와 라디오를 통해 만나는 그는 언제나 유쾌하고 명쾌하다. 머뭇거리거나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와 안목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그만의 능력이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궁리를 하잖아. 어떻게 살면 잘 살까 하고…. 나도 궁리를 많이 한다고. 책도 보고 온갖 별짓을 다하면서.” “미리 짜여진 각본과 거짓말로 위장한 설정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예능 따위가 너무나 싫어 욕지기가 나온다”는 그는 최근 JTBC예능 ‘학교 다녀오겠습니다-경기예고편’에 출연해 피아노 치면서 노래를 불러 여고생들에게 진한 감동과 “영남오빠 짱”이라는 눈물어린 찬사를 받았다. 누구도 예상못했던 반응이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조영남을 치면 연관검색어로 ‘여성편력’이 따라오지만 그가 사랑하는 건 젊고 아름다운 여성만이 아닌 것 같다. 아름다운 노래와 그림, 오랜 친구와의 의리, 어린 아이들과 한 약속, 라디오에서 만나는 사연, 잘못으로 잃은 소중한 가족, 어린시절 뛰놀던 삽다리 꽃산의 이름모를 절까지…. 이쁜 여자들 만큼이나 조영남에겐 더없이 귀한 보물이다. 가만보면 그는 삶에서 진짜 보물을 식별하는 열정과 안목을 가진 보기드문 진짜 사나이다.

[불교신문3108호/2015년5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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