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두의 부처님 품안에서 ⑬ 울산 청룡암 종선스님

복지 분야 업무만 15년

경봉-벽안-무애스님의

‘청정가풍’ 이어받아

 

“불교의 대(對)사회적 역할은 넓고 큽니다. 부처님 말씀이 크고 넓기가 한량없듯이 그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일 또한 무량무궁 합니다. 현대사회는 헐벗고 가난하고 외롭고 소외되고, 늙고 병들고 힘없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들이 부처님의 품에서 포근하고 따사롭고 평화로운 모습을 갖도록 우리 불자들이 뜻을 모으고 힘을 모아야합니다. 그럼으로써 더불어 사는 공덕을 닦아가야 할 것입니다.”

울산광역시 남구에 있는 ‘선암호수노인복지관’은 사회복지법인 통도사 자비원 산하기관이다. 규모나 시설 면에서 가이 울산 제일의 복지관이라 불리는 이 복지관을 이끌고 있는 종선스님(사진)은 ‘선암호수노인복지관’뿐만 아니라 ‘도솔천노인요양원’, ‘울산광역시노인보호전문기관’, ‘아나율장애인보호작업장’, ‘북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5개 시설을 울산시로부터 위탁 및 지정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 불교계에서 복지분야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종선스님은 1990년 29살의 나이에 통도사에서 무애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지금 통도사 안양암에 주석하고 계신 무애스님은 경봉-벽안-무애스님으로 이어지는 통도사의 어른이시다. 종선스님은 윗대 어른들의 가풍을 이어받았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라.’는 은사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산다는 스님은 ‘중노릇’ 만큼은 어느 출가수행자 못지않게 철저하고 엄격하게 익혔다고 한다.

“대낮인데도 방안이 어둡다고 불을 켰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졌지요. 겨울철 보일러 온도도 23도를 넘지 못합니다. 서울에 일 보러 갈 때에도 KTX가 어딨습니까. 무궁화 열차를 이용해야 했어요. 신도들에게 돈 내라는 소리하면 안 된다 하시면서 당신께서 이를 철저히 지키셨지요. 그럼 불사는 어떻게 하느냐구요? 신도들에게 맞기지요. 불사가 끝나면 공포(公布)를 하십니다. ‘불사에 쓰고 남은 돈 찾아가세요.’ 하고. 공사(公私)에 터럭만큼의 어긋남이 없이 칼같이 분명하시고 시주물 아끼기를 피를 아끼듯 하시는 어른이시지요.” 종선스님은 그런 어른에게 ‘부끄럽지 않은 제자로서의 삶’을 다짐한다. 종선스님은 부산 명지 출신으로 종립학교인 해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불심 깊은 부모님의 영향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익히게 된 스님의 출가는 숙세의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중앙승가대학교에서 복지학을 전공한 스님은 1995년 졸업 후 실상사 화엄학림에서 영관스님을 모시고 경전연찬에 정열을 쏟았다(화엄학림 3기). 통도사 총무국장과 울주군 온양의 내원암 주지를 거쳐 (재)조계종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와 중앙종회의원 소임을 살았으며, 지금은 울산 북구 청룡암 주지로 있다.

종선스님을 신도들이 염불 잘하는 스님이라고 부른다. 대학 재학시절 방학 때 절에 내려오면 염불을 도맡았다. 목탁을 들면 신심이 북받쳐 목탁 채를 잡은 손에 힘이 솟아나 그 목탁 장단에 기도대중의 환희심은 저절로 높아갔다고 한다. “얼마나 목탁을 치셨기에 한 번에 목탁 3개를 부순 스님이라고 소문났어요.” 대학시절의 스님을 아는 신도들의 말이다.

“승복을 입고 살면서 본분에 충실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날이 새기며 삽니다. 출가 수행자에게는 만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수행자가 자기 만족에 빠지게 되면 수행의 길은 거기서 막히고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 힘들지 않고 얻어지는 게 어디 있습니까? 불자들 모두가 제 분수대로 부처님 은혜 갚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해야합니다.”

[불교신문3105호/2015년5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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