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한국정토학회,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생전예수재’ 학술대회

수륙재 영산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불교의례인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에 대해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자리가 열렸다. 생전예수재란 뜻 그대로 ‘생전에 미리(豫) 닦는(修) 재(齋)’ 의식을 말한다. 죽은 뒤에 실천할 불사를 살아 있을 때 미리 닦아 사후 명복을 빌기 위한 불교 의식이다.

서울 조계사(주지 원명스님)와 한국정토학회(회장 신규탁)는 9일 오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생전예수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그동안 개별적으로 연구돼 왔던 생전예수재를 두고 의례의 원형을 밝히는 첫 번째 공론의 자리였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보광스님 “독립된 무형문화재로 가치 충분”

동국대 총장 보광스님은 기조강연을 통해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생전예수재를 조명했다. 스님은 기조강연을 통해 생자와 망자를 동시에 위하는 의례로 대표적인 것이 생전예수재임을 강조하며, 수륙재나 영산재와는 다른 독창적인 특징이 있음을 역설했다.

보광스님에 따르면 먼저 생전예수재는 수륙재나 영산재에 비해 의례의 기간이 길다. 영산재나 수륙재 등은 보통 3일 혹은 일주일 정도지만 생전예수재는 그 기간이 49일이다. 또 의례 대상인 생자와 망자가 함께 공존한다. 스님은 “다른 의례는 대신해 지내주지만, 생전예수재는 본인이 직접 재주가 되어 참여하고 주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누가 대신해 지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돌아가신 조상들과 유주무주고혼들까지 함께 천도를 하는 의례”라고 덧붙였다.

특히 스님은 생전예수재가 수행이 중심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보광스님은 “다른 의례는 대부분 믿음이 중심이지만 생전예수재는 다르다”며 “자신의 왕생극락을 위해 49일 동안 참회하고, 최소 7일마다 한 번씩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스스로 준비하는 웰다잉에 관한 의례라고 설명했다. 보광스님은 “생전예수재는 수륙재나 영산재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한 차별과 특색이 있다”며 “따라서 독립된 무형문화재로 가치가 충분하며, 더 이상 원형이 변형되기 전에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앞서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도 ‘예수재의 의례와 의미’를 주제로 한 기조강연을 통해 “영산재와 수륙재는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지만 예수재는 그 특수성이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어, 체계적이고 연속적인 전승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성운 박사 “한국불교의 가장 의미 있는 전통문화”

이날 발표자로 나선 이성운 동국대 평생교육원 겸임교수는 “16세기 현재 이름으로 행해진 생전예수재는 한국불교의 가장 의미 있는 전통문화의 하나”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한국불교 생전예수재의 특성’에 대해 “사후에 올리는 칠칠재를 대신해 살아생전 본인이 직접 시왕에게 공양 올리고 전생 빚을 갚으며 경전을 보는 생전예수재를 바로 알고 실천하면 더없이 의미 있는 보시행이 된다”며 “교육적으로 활용하면 생전 장례식 체험처럼 더 없는 웰다잉 교육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생전예수재는 윤달에 주로 행해지고 있다고 보이지만 그 의미는 늘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고 밝혔다.

혜일스님 “수 백 년 이어져온 절차 제대로 설행해야”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과거와 달리 변해버린 현행 생전예수재의 설행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발표자도 있었다. 불찬범음연구소장 혜일스님은 ‘생전예수재 발전방향에 대한 제언’을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언제부턴가 생전예수재에 영가 위패가 모셔지기 시작했고 급속도로 확산되는 분위기”라며 “현장 상황에 맞게 의식 절차를 임시로 바꿀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설행목적과 무관한 절차에 휩싸여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예수재에서 망자를 청하는 것이 잘못 됐다는 것이 아니라, 무게 중심이 망자를 청하고 공양을 베푸는 것에 초점을 두다보면 전생의 빚을 갚기 위해 설행하는 생전예수재의 본질을 흩뜨릴 수 있다는 의견이다. 스님에 따르면 예수재 관련 의식집 절차만 확인해도 전생의 빚을 갚기보다 망자를 천도시키려는 목적이 다분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혜일스님은 “언제부턴가 현행 생전예수재는 전생의 빚을 갚은 목적보다 상세선망 부모님과 인연 있는 망자를 청해 공양을 베푸는 천도재 같은 역할로 전환되는 느낌을 들게 한다”며 “명부시왕전에 바칠 금은전과 수생전 수 만큼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설행 시간 가운데 절반 이상 망자를 청하고 모시는 시련(侍輦), 대령(對靈)과 목욕시키는 관욕(灌浴) 그리고 공양을 베푸는 시식(施食)에 할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혜일스님은 “종교적 믿음과 신심이 사라져 가는 지금 생전예수재를 어떻게 올바르게 발전시킬 것인가가 과제”라며 “목적을 상실하면 영산재와 수륙재 등과 별반 차이 없는 이름뿐인 생전예수재만으로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공식적인 학술행사에 앞서 조계종 의례위원장 인묵스님과 작법스님들이 30여분 동안 생전예수재 특징을 잘 담고 있는 ‘화청’ 시연을 했다.

이날 조계사 주지 원명스님은 환영사에서 “불교 유형문화재에 비해 불교 무형문화재의 다양성은 너무나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무형문화유산은 세대 사이에 전승되면서 도태되거나 축소되고 새로운 것이 추가되기 때문에 원형을 유지시키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조계사 생전예수재는 상구보리하화중생의 보살도 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다”며 “예수재를 매개로 불교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보존과 전승방안을 논의하는 담론의 장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신규탁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생전예수재의 교리적 근거와 역사를 규명함으로써 우리시대 바람직한 예수재 규범을 제시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교신문3107호/2015년5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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