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문태준/ 창비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발간한

우리 시대 대표 서정시인 문태준

자연은 순환해 풀이 돋는데

사람은 어디로 가는 걸까…

사라짐과 소멸, 환생 등

성주괴공 원리를 읽다

 

드로잉 기법 문학에 도입

간결하고 선명한 단어로

대상 자체를 읽은 詩作

서정시인을 대표하는 문태준 시인이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발간했다. 매년 20여편, 3년간에 걸쳐 쓴 61편의 시가 담긴 책이다. 지난 20일 서울 마포 불교방송을 찾아 문태준 시인을 만났다.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와 동국대 대학원 국문학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불교방송 PD로 활동하고 있다. 1994년 <문예중앙>에서 등단한 이후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등과 산문집 <느림보 마을> 등을 발간했다.

이번 시집의 특징은 한마디로 ‘드로잉’이다. 간결한 단선으로 그림을 그리는 드로잉 기법처럼 사물과 대상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담겼다. 문태준 시인은 “대상과 세계에게 솔직한 말을 걸고 싶었다. 둘러대지 말고 간결하고 선명한 글로 대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시집 제목으로 쓴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도 임종을 앞둔 분을 보면서 내가 가진 소유와 욕심이 모두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현상 그대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세속적 가치의 중요성이 사라진 얼굴에서 편안함을 본” 시인은 ‘평범해지고 희미해지는’ 모습을 ‘드로잉’하게 기록했다. 

지난 20일 불교방송 제작실에서 만난 문태준 시인은 선한 마음에서 시심이 일어난다고 조언했다.

“시를 지으면서 성주괴공의 원리, 사라짐과 소멸, 그리고 환생 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자연은 순환을 해서 다시 풀이 돋아나는데, 왜 사람은 다시 오지 않을까. 그럼 어디로 가는 것일까 등의 생각을 담았죠. 그런 생각을 표현하는데 꾸밈보다 있는 그대로의 글이 더 어울린다고 할까요?”

사물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이를 글로 옮기는 작업을 통해 완성된 시라서 그럴까. 설명을 듣고 보니 문 시인의 시 한편마다 단어가 갖고 있는 뜻이 새롭게 다가온다.

문 시인이 생각하는 시는 “관계를 맺어주는 매개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비유와 빗대는 방법으로 관계 갖도록 해주는 것이 문학이라는 것이다. “시는 존재와 존재간의 관계를 이해하는데서 시작한다. 관계에 대한 마음에서 시심이 느껴질때 시가 나온다”는 문 시인은 “선한 동기를 지니고 있을 때 선한 마음이 일어나고, 그때서야 시를 지을 수 있다. 악한 마음에서 시가 나오겠느냐”고 반문하고 “불교의 가르침은 이러한 관계와 선함에 대한 길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관통했던 단어는 ‘세월호’였다. 많은 시인들이 세월호에 대해 시를 썼다. 반면 문태준 시인은 세월호에 대한 시가 없다. 이번에 출간된 시집이 망상, 죽음 등을 주요한 주제로 다뤘기 때문에 이유가 더욱 궁금했다. 이에 대해 문 시인은 “너무 큰 슬픔이라 문학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며 “문학이 시대를 이야기 해야 한다는 절대적 명제에도 불구하고 같은 또래의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세월호 사건은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문태준 시인은 서정시의 정통성을 이으면서도 현대적 언어감각과 독특한 시법을 구성하는 시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시의 내면에는 세상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불교의 인드라 사상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누운 소와 깡마른 개와 구걸하는 아이와 부서진 집과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돼지와 낡은 헝겊 같은 그늘과 릭샤와 운구 행렬과 타는 장작불과 탁한 강물과 머리 감는 여인과 과일 노점상과 뱀과 오물과 신과 더불어 나도 구름 많은 세계의 일원(一員).”(일원, 바라나시에서)

3년간의 글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내니 다시 빈털터리가 됐다는 문태준 시인은 “시에게 간소한 옷을 입혀보려는 시도로 이번 시집을 냈다. 그런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당신은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네

요를 깔고 아주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있네

한층의 재가 당신의 몸을 덮은 듯하네

눈도 입도 코도 가늘어지고 작아지고 낮아졌네

당신은 아무런 표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네

서리가 빛에 차차 마르듯이 숨결이 마르고 있네

당신은 평범해지고 희미해지네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의 몸이 된 당신을 보네

오래 잊지 말자는 말은 못하겠네

당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네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네

여시(如是)

백화(百花)가 지는 날 마애불을 보고 왔습니다 마애불은 밝은 곳과 어둔 곳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눈두덩과 눈, 콧부리와 볼, 입술과 인중, 목과 턱선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안면의 윤곽이 얇은 미소처럼 넓적하게 펴져 돌 위에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도객들은 그 마애불에 곡식을 바치고 몇번이고 거듭 절을 올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깊은 밤에 홀로 누워 있을 때 마애불이 떠올랐습니다 내 이마와 눈두덩과 양 볼과 입가에 떠올랐습니다 내 어느 반석에 마애불이 있는지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온데간데없이 다만 내 위로 무엇인가 희미하게 쓸려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불교신문3101호/2015년4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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