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학회 ‘2015 춘계학술세미나’서 주장 제기

토론자 김종인 경희대 교수와 오른쪽은 '간화선의 현실인식과 대응' 주제로 발표한 박희승 실장.
한국 간화선 현실참여
결여됐다는 주장 큰 오해
간화선사들, 각 시대마다
치열한 현실인식으로
대응하며 일관된 삶 살아

근현대 경허ㆍ성철스님
선풍진작 인재양성이
불교와 사회 미래 밝혀나갈
방안이라 확신하고 실천

음악ㆍ글쓰기 명상 등
응용분야 연구도 발표
경영위기 극복대안으로
선 유용하다는 주장도 제기

역대 간화선 선사(禪師)들이 깊은 산속에서 수행에만 전념한 게 아니라 각 시대마다 치열한 현실인식과 대응으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희승 성철선사상연구원 연구실장은 한국선학회가 지난 4월25일 연세대 외솔관에서 연 춘계학술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박 실장은 ‘간화선의 현실 인식과 대응’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최근 ‘간화선에 현실 참여 의식이 결여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는데, 선 실참자의 입장에서 이를 반박하기 위해 나왔다”며 “간화선사들은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면서 선을 통해 불교와 사회개혁을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박 실장은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선사들의 삶을 사례로 들며 ‘선에서 현실 대응 방안이 나올 수 없다’거나 ‘깨달음 지상주의가 현실대응에 장애’라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했다.

박 실장은 평생 수행에 전념했던 성철스님을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철저히 현실정치와 거리를 뒀던 스님을 일부에선 “현실도피자”로 비판하기도 했다. 박 실장은 “성철스님은 조선조 이래 수백 년 동안 산중으로 밀려나 겨우 명맥을 이어온 불교를 살리기 위해 인재양성과 교단 쇄신에 노력했다”며 “전체 승려 중 대처가 80%이상이었던 당시 현실에서 봉암사에서 몇몇 비구승들이 결사한다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도전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성철스님은 독재정치 현실에서 섣부른 사회참여가 아닌, 산중에서의 선풍진작과 불교 본질 회복이 불법(佛法)을 유지하고 미래를 밝혀나갈 방안이라고 확신하고 실천했다는 것이다.

근현대 선불교 중흥조로 꼽히는 경허스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 실장은 1895년 갑오경장기 수 백 년 만에 처음으로 도성출입금지가 해제돼 전국 스님들에게 한양구경이 붐인 시절, ‘경성 땅을 밟지 않겠다’고 말한 선사의 한 마디에 치열한 현실인식이 나타나 있다고 피력했다. 불교의 미래를 도시가 아닌 산중에서 선풍을 재건해 불교의 정체성을 세운 것으로 현실에 대응해 나갔다는 것이다. 박 실장에 따르면 실제 경허스님이 동분서주 하며 일군 영호남 선원 선승(禪僧)들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부 사찰 대표들이 일본 조동종과 연합을 도모할 때 한국불교가 임제종 법통임을 내세워 한국불교의 자존심을 지켰다.

박 실장은 간화선 제창자 대혜종고 스님과 조계종 중흥조 태고보우 선사 또한 시국과 관련해 탄압받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현실정치에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1876년 개항 이후 격변기에는 유대치, 오경석, 이동인 등 불자거사들이 유교의 한계를 느끼고 선(禪) 정신으로 나라 혁신을 도모했음을 밝혔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종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이같은 박 실장의 주장에 동의하며 “일부 학자들이 통속적 윤리관을 갖고 한국 간화선이 현실참여가 결여됐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어리둥절한 느낌이 든다”며 “문제의식 자체가 1980년대에 머물러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간화선의 현실 인식 문제가 불교계 주요 논쟁점이 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다. 이후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의 필요성이 약화된 2000년대 들어 불교학계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하게 되고 최근까지 이를 중요한 논의 주재로 삼고 있다. 김 교수는 “세속인들이 불교의 초세속적 삶의 양식에 위안을 얻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승단은 급속히 세속화 되는 것이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현실임을 생각하면 산중에서 수행하는 활동은 더 귀하게 여겨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간화선의 현실참여 결여를 비판하는 이들은 간화선 사상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통속적 윤리관에 기초해 비판하는데 이는 학술적 비판이 아니라 정치적 선동에 가깝다”며 “간화선사들이 현실 참여를 충분히 했는가 여부를 떠나 현실 참여를 해야 되는, 혹은 하지 않는 이유를 간화선 사상 자체의 입장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이번 한국선학회 춘계학술세미나는 한국 선불교가 역사와 사상 뿐 아니라 명상ㆍ문학ㆍ예술 등 폭넓은 분야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뤄졌다. 특히 전통적인 선(禪)을 넘어 실생활에 적용한 생활명상법과 관련된 논문들도 다수 발표됐다.

이날 동국대 박사과정을 수료한 류상윤 씨는 ‘조사선에서 원용하는 경영의 위기관리’를 주제로 선(禪)과 수행이 경영 일선에 유용한 해법으로 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류 씨는 “선심(禪心)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은 압박감에 매몰될 수 있는 상황에도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는 평상심을 유지케 한다”며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려면 변화에 대한 감지능력, 선제적 대응, 구성원들의 능동적인 대처가 있어야 하는데, 선은 위기를 돌파하는 굳건한 정신적 토대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구태의연한 극단적 성과주의로는 갑을관계논란과 같은 경제적 강자의 수치스런 형태만 불거질 뿐”이라며 “경영에 있어 상생을 도모하고 전체를 살피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성수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강사는 가정폭력피해자쉼터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글쓰기명상의 치유효과에 대해 발표했다. 글쓰기명상은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주시하고 문자로 드러내 확인하는 과정 전반을 일컫는다. 김 강사는 자신이 직접 경기도의 한 쉼터에서 생활 중인 여성 12명을 대상으로 2013년 12월부터 2014년 2월까지 8주 동안 글쓰기명상을 실시한 결과, 마음챙김을 강화시키고 우울반응을 효과적으로 저하시키는데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최현규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강사는 ‘음악명상과 사마타, 위빠사나 수행의 접점’을 주제로 발표했다. 최 강사는 “음악명상은 음악을 들으며 하는 명상이기에 기존 전통명상 방법들 보다 접근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며 “음악명상은 평안함과 행복감을 주는 것은 물론 최적화된 의식 상태로 이끌어주는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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