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선센터 ‘임산부 상담’

“서른아홉에 어렵사리 임신을 했는데, 기형아가 태어날까봐 불안해서 잠도 못자요”, “부부가 함께 태교를 해야 하는데, 날마다 술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원망스러워요”, “대가 끊긴다는 시어머니 등쌀에 셋째를 가졌는데 또 딸일까봐 겁나요”….

옛날 엄마들은 밭일하고 농사짓고 집안일 하면서도 8남매 9남매 잘도 낳아 키웠지만 요즘엔 아이 한 명 온전히 갖고 무탈하게 낳기까지 예비엄마들의 갈등과 불안감은 하늘을 찌른다. 세상이 좋아졌다 해도 열달 되어 아이를 낳기 전까진 태아의 건강을 장담할 수 없는데다, 임산부가 믿고 의지할만한 어른이 가까이 사는 경우도 드물다. 게다가 근거없이 떠도는 인터넷 정보에 필요 이상으로 의존하면서 오히려 불안감만 커진다.

서울 국제선센터는 지난해부터 ‘임산부 템플스테이’를 열어 임산부들이 자애명상을 하고 서로 집단상담을 하면서 불안심리를 치유하는 프로그램 실시하고 있다.

서울 국제선센터에서 ‘임산부를 위한 태교 데일리 템플스테이’를 기획한 비구니 천조스님은 “대가족이 함께 살았던 과거에는 새로운 가족이 태어나기까지 가족 친지들이 마음을 모아서 태아의 건강을 발원하고 임산부에게 여러가지 도움을 줌으로써 가족이 정신적인 의지처가 됐다”며 “핵가족화 되면서 임산부 홀로 모든 것을 감내하다보면 정신력이 약해지면서 불안감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님은 “시설좋은 병원은 우후죽순으로 생기지만 임산부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주고 제대로 치유해주는 병원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천조스님이 기획한 임산부 불안감 치유법의 키워드는 ‘가족’이다. 뱃속 아가의 탄생으로 비로소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고 부모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부모은중경> 봉독은 첫 관문이다. 한량없이 크고 깊은 부모의 은혜를 되새기면서 나의 부모를 이해하고 내가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자문하는 시간이다.

핵가족에 노산…

불안에 떠는 임산부

마음 치유하는 상담

진흙에서도 맑고 향기롭게 피어나는 연꽃을 닮은 아기를 상상하면서 연꽃등을 만들고, 태어날 아기의 동물띠가 그려진 작품을 탁본하면서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축원한다. 아기에게 편지를 쓰면서 엄마의 바람을 전하고 출산예정일이 새겨진 단청도 그려본다.

자비희사(慈悲喜捨), 사무량심을 증장시켜주는 사마타 수행의 일종인 자애명상은 불안에 떠는 임산부에게 최상의 수행법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력하듯 외는 자애명상은 악몽없이 잠을 잘자게 해주고, 개운하게 잠에서 깨어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온갖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다보니 얼굴에서 환한 빛이 발하게 되고 집중력까지 강화시켜 준다. 임산부에겐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다. 집안에서도 뱃속 아가의 태명을 부르며 조용히 걸으면서 손쉽게 자애명상을 할 수 있다.

아이의 탄생으로 새롭게 꾸려진 가족의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도 유의미하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가족 인생그래프도 그린다. 부모 입장으로 돌아가서 시부모님을 이해해보고 아이 때문에 소외된 남편의 일상을 역지사지로 생각하면서 서운하기만 했던 남편을 다시 바라본다.

단청문양을 그려보는 태교의 시간도 있다.

천조스님은 “홀몸이 아닌 자신을 위해 남편이 더욱 희생하길 강요하고 보상받길 바라는 임산부의 심리가 부부간 불화로 치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남편을 측은해하고 남편에 고마워하면서 남편을 이해하다보면 밉고 야속하기만 했던 남편이 다시 사랑스럽게 보일 것”이라고 했다.

또한 집단상담으로 임산부들끼리 둘러앉아 현재의 고민을 털어놓다보면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라는 공감대 형성만으로도 충분한 치유가 된다. 임산부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음식’이다. 입덧이 심해서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하는 임산부도 있고 직접 차려먹기가 쉽지 않아서 바깥음식에만 의존해서 사는 이도 있다.

밥맛 좋기로 유명한 국제선센터는 ‘친정엄마표 밥상’으로 임산부의 건강까지 챙긴다. 특별한 건 없다. 고기도 없다. 제철나물에 담백한 미역국, 명품김치가 전부다. 입덧에 시달리다 이 곳에서 밥맛을 되찾은 임산부도 있다고 한다.

공양시간 전후에 법당에 구비된 임산부 전용쿠션에 몸을 기대고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천조스님은 볼록 나온 임산부의 배를 마사지하듯 쓰다듬어주면서 상담을 시작한다. ‘우리아기 길동아 길동아~ 요즘 엄마가 아빠 때문에 속상한가봐. 어서 빨리 길동이가 태어나서 엄마를 지켜주렴. 엄마는 아빠가 밉다고 난리지만, 사실은 아빠를 사랑한단다. 너무나 사랑하니까 우리 아기 길동이가 생겼지?’….

천조스님은 “태아는 산모에게서 영양분만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까지도 받아들인다”며 “특히 태아에게 해주는 자애명상을 통해 사랑의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마음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함으로써 임신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나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지만 그것만으로도 임산부들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해 준다.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는 연락을 받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이 크다”는 천조스님은 “얼마 전 스님으로부터 태교상담을 받았던 부부들이 100일 된 신생아를 데리고 선센터를 찾아왔을 때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불교신문3100호/2015년4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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