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택 교수 ‘열린논단’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시민단체와 연대하고 실의에 빠진 가족들을 위로하는 것만으로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이웃종교의 사회적 참여형태와는 다른 불교적 세계관이 등장해야 할 때다. 불교만이 할 수 있는 종교의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조성택 교수는 불교평론과 경희대 비폭력연구소가 지난 16일 서울 신사동 불교평론 세미나실에서 ‘사회적 역할, 정말 잘하고 있는가’를 주제로 연 열린논단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날 조 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실천하고 있는 그런 비슷한 행위를 벤치마킹하거나 이웃종교의 사회참여에 숟가락 하나 더 올리는 식의 사회 참여에 대해 불교는 재고해야 할 것”이라며 “특정한 방향이나 행위만을 참여불교나 실천불교라고 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21세기 한국사회가 원하는 다양한 고통에 응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불교는 우리사회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가. 이날 조 교수는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선과 악을 구분 하 돼, 이를 분리해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할 수 없다”며 “이는 또 다른 악으로 대체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종교가 약자 편에 서는 것은 당연한 논리지만 종교는 시민사회단체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조 교수는 세월호 문제를 제기해며 “철저히 선과 악을 구분한 결과 유병언과 이준석이라는 악마와 이에 반대되는 영웅 혹은 영웅적 미담만이 남았다”며 “그런데 이에 대해 종교는 지켜만 보고 있을 뿐 아무런 메시지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기독교의 잘못은 선악을 구분하고 분리한 것”이라며 “하지만 불교의 경우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현실에서 조차 선과 악을 나누지 않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 교수는 “마땅히 가해자와 피해자는 구분해야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난민보트에서 해적에게 강간당해 죽은 베트남 소녀와 그를 강간한 해적 모두를 ‘나’라고 고백한 틱낫한 스님의 시 ‘내 진정한 이름을 불러주오’를 예로 들었다. 조 교수는 “상대를 악마화 하고 틀린 존재로 보는 것은 비불교적인 상황”이라며 “악마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평화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조 교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우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불교 뿐 아니라 대부분 종교의 사회참여는 전형적으로 시민단체들에서 하고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의 의견에 일부분은 동의하면서도, 이런 대안을 제시하기에 앞서 과연 불교가 얼마만큼 사회 참여에 적극적이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도 주를 이뤘다.

한 참가자는 “불교의 사회 참여는 아직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며 “사회참여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현재 복지만 활발할 뿐, 나머지는 굉장히 미약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참가자는 “사회참여라고 하는 분야는 사회의 부정의를 얼마나 개선시키는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라며 “개인의 신앙이나 수양, 자비 이런 것과 연결시키면 초점이 흐려지게 된다”고 비판했다.

[불교신문3100호/2015년4월25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