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우 불교사진작가 영정사진 촬영봉사 현장

“아이고 보살님~ 목에 두른 머플러는 갑갑해 보잉께 풀어부러. 여름에 떠나면 더워보이지 않겄어?. 하하하.” 지난 12일 일요일 불교텔레비전 무상사 법당에서 펼쳐진 영정사진 촬영현장은 상상이상 화기애애했다.

먼훗날 자신의 빈소에 올리게 될 영정사진을 찍는 순간이지만, 의연한 표정의 보살님들은 꽃단장에 여념이 없었다. 졸업사진을 찍는 여대생 같기도 하고 신부화장 곱게 하고 시집가는 새 신부처럼, 연세 지긋한 노보살들 얼굴엔 저마다 설렘과 떨림이 묻어 있었다.

머리를 차분하게 손질하고 옅은 화장을 곱게 한 뒤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을 차려입은 어르신들은 촬영순서를 기다리면서 줄지어 섰다.

평생 불교사진 외길을 걸어온 전제우 한국불교사진협회장. 올해 처음 자신이 가진 최신장비를 동원해서 영정사진 촬영봉사에 나섰다.

가장 젊어 보이는 점길순(73) 어르신은 빨간색 자켓으로 스마트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너무 빠르지 않나 물었더니 유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여보시오, 감나무에서 익은 감만 떨어지남? 쌩감도 가끔 떨어지는 법이여. 허허”

“내가 한 살 더 어리다”며 등장한 김정순(72)님은 무채색 계량한복으로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멋을 냈다. 그녀는 “부처님법에 의지해서 평생을 살았으니 마지막 가는 길도 차분하게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며느리가 팔순 기념으로 맞춰준 한복을 차려입은 정호진(83) 여사는 “내가 죽고 많은 이들이 나를 찾아와 보게 될 사진인데, 이왕이면 이쁘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왜 벌써 영정사진을 찍느냐며 막무가내로 화를 냈던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보살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병상에 누워있으면 영정사진 찍을 여유도 없고, 자식들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도 참 불편해 하지. 내가 건강할 때 잘 찍어서 직접 챙겨두면 좋지 좋아.”

이 날 영정사진 촬영은 무료다. 평생 불교사진 외길을 걸었던 전제우(53, 법명 송담) 한국불교사진협회장이 마음을 냈다. 재능보시다. 지난 3월에는 무상사 신도 가운데 18명의 거사님들에게 영정사진을 선사했고, 이 날 32명의 노보살님들을 촬영했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받아든 거사님들은 대만족이었고, 입소문이 나면서 신청이 몰렸다. 일부는 다음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영정사진을 찍는 어르신들을 뵈면서 죽음을 거부하거나 인식하는 것을 꺼려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전 회장은 “생사일여와 같은 불교공부를 하고 수행을 한 불자들은 역시나 죽음관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라도 내가 겪어야 할 과정이고 날마다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며 “나 역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정성껏 촬영하고 있다”고 했다.

전 회장은 대형 스트로보를 양쪽에 펼쳐놓는 등 최신장비를 두루 갖춰서 촬영에 임한다. 청아한 가을하늘빛을 담은 배경지도 구입해서 펼쳐놓으니 사진 뒷배경도 말끔하다. 사진을 찍자마자 곧장 인화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른바 ‘포토샵’을 해서 좀더 맑고 산뜻하게 얼굴을 ‘성형’한다. “하하하, 성형이라기 보다는…. 나이들어 약간 처진 눈매를 어르신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약간 올려준다거나…뭐 그런 작업입니다.”

무료봉사 차원이라 더 손이 가고 신경이 쓰인다는 그다. “자식들이 보더라도, ‘공짜라더니 역시나’라고 한다면, 이런 봉사하는 것이 아무 의미 없잖아요. 공짜니까 더욱 더 신경을 씁니다. 한 분 한 분 이번 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일 수 있도록 공을 들입니다.”

영정사진에 팁이 있다면? 전 회장에 따르면 꼿꼿한 자세가 관건이다. 자세가 바르면 미소 띤 표정이 편안하게 나오기 마련. 세상을 떠난 뒤 함께 한 사람들이 영정사진을 바라보면서 ‘부처님법 믿더니 편안하게 가셨구나’라고 느낄 수만 있다면 최상의 영정사진이다.

“불교사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생계의 어려움이었다”는 그는 여전히 ‘생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만 찾아 하고 있다. 숭산스님과 법정스님 등 ‘큰스님 전문작가’로서 큰스님들의 영정에도 그의 작품이 자주 등장하고 선운사와 송광사의 사계를 담은 ‘전제우표 고급달력’도 잘 알려져 있다.

“평생 불교와 사진공부하느라 다 보냈는데, 여건만 맞는다면 많은 불자님들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리고 싶다”는 전제우 회장은 곁에서 능수능란하게 촬영장비를 정리정돈하는 이에게 말을 건넸다. “여보, 배고프지 않어? 어디 가서 국밥이라도 먹자구~.” 사람들이 돌아가고 텅빈 법당의 시계는 오후 3시가 다돼가고 있었다.

[불교신문3098호/2015년4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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