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노인복지, 에너지절약봉사단 활약

백발의 최남순(82) 여사는 환갑이 다돼가는 아들딸로부터 요즘 ‘짱’이라는 말을 듣는다. 눈깜짝할사이 은빛물결로 수놓아진 노모의 백발이 마냥 가슴 아팠던 자식들은, 언제부턴가 새하얀 목련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한 엄마를 ‘발견’했다.

엄마의 회춘(回春)은 편히 놀고 쉬는 것에서 꽃핀 게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신경을 쓰고 마음을 쓰고 몸을 쓰는, 이른바 봉사활동이란 것이 늙어가는 가녀린 엄마를 ‘짱’으로 만들었다. 엄마가 자청한 봉사는 독특하다. 복지관 에너지절약봉사단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2~3명이 한 조가 되어 복지관 곳곳에 켜진 채 놓여있는 전기기구들과 전등을 소등하는 일이다.

누가 이들을 평균나이 78세 어르신들이라 하겠는가. 종로노인복지관장 정관스님(가운데)은 “활력 넘치는 복지관 에너자이저”라며 복지관 에너지절약봉사단을 소개했다.

일단 이른 아침 복지관에 들어서면 어깨에 띠를 두르고 복지관 이용객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면서 에너지절약을 외친다. 박혜복(73) 여사는 “화장까지 하고 어깨띠를 두르면 기분이 날아갈듯 좋아져 미스코리아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 나이에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신명이 난다”면서 “일주일에 단 한번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어찌 빼먹을 수 있겠느냐”며 생활 속 모든 약속을 봉삿날을 비켜 잡는다고 했다. 에너지절약 봉사는 매일 정오부터 본격 움직임이 시작된다.

복지관 곳곳 비어있는 강의실에 버젓이 켜져 있는 히터나 에어컨을 끄는 일은 물론, 대낮에도 여기저기 켜져 있는 전등을 소등한다. 비어있는 공간에 혼자서 돌아가는 에너지를 오프한 뒤, 주변 쓰레기와 집기정리, 책걸상 정돈까지 지나치는 법이 없다. 학창시절 당번이나 선도부의 역할처럼 나름 사명감이 생기게 된다.

1주일마다 2인조 어르신

복지관 곳곳 전등 소등

효녀노릇 선도부 역할

2014년 360만원 절감

김재춘(80) 어르신은 “에너지봉사를 하러 복지관에 갈때마다 학교가는 것처럼 설렌다”며 “특히 복지사 선생님들이 상냥하고 자세하게 안내해주고 이끌어주셔서 얼마나 편안하고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 어르신이 “우리들이 나서지 않으면 불을 안끄는 습관은 여전하다”고 하자, 복지관 관장 정관스님은 기다렸다는듯이, “복지관 직원들도 벌벌 떨 정도로 어르신들의 봉사열은 뜨겁다”고 전했다.

이렇게 해서 종로노인복지관이 연간 절감한 전기요금은 엄청나다. 지난 2014년 통계를 보면 연간 360여만원에 달한다. 월평균 30만원이 넘는 액수다. 박혜복 씨는 “복지관 에너지봉사 습관으로 집에서도 쓸데없는 전기낭비를 최소화하는 게 몸에 배었다”면서 “한달에 5~6만원 나왔던 전기요금이 2~3만원대로 확 줄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문정대(77) 거사님은 “연로한 노인들이 이렇게 웃으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은 도반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나온다”며 “서로 버팀목이 돼주니까 나이 들어도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유독 말이 없는 김순덕(82) 어르신도 ‘도반’들의 신명나는 이야기를 유심히 듣더니, “복지관 덕분에, 함께 일하는 친구들 덕분에 늙어도 행복하다”는 짧은 말을 남겼다.

지난 7일 종로노인복지관은 에너지봉사단과 같은 300여명의 실버봉사단 어르신들 대상 강원도 춘천 남이섬으로 봄나들이를 떠났다. 버스를 타고 배를 타고 섬 곳곳을 누비면서 도시락을 까먹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어르신들은 같은날 소풍 온 어떤 청소년들보다 훨씬 젊고 생기가 넘쳐 보였다.

[불교신문3098호/2015년4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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