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표명에서도 비난 왜곡 일색

정봉주 전의원이 조계사 옆 우정공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봉주 전 국회의원이 조계사에 왔다. 지난해 10월부터 팟캐스트 ‘전국구’ ‘생선향기’ 편을 통해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을 ‘맑고 향기로운 곳’에서 ‘생선 썩은 비린내 진동하는 곳’으로 매도하며 자극적 언행을 서슴지 않았던 그다.

인터넷상에서만 떠들던 그가 지난 3월31일 바른불교재가모임 창립법회에 모습을 드러내 “조계종은 김정은 집단” “세월호 사건 때 스님은 어디있었냐” 등의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고, 지난 12일 다시 한국 불교 1번지에 나타났다. 

정봉주 전 의원은 이날 지난번 자신이 한 발언들이 ‘거두절미’ ‘왜곡일색’ 됐다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그의 발언은 또 다시 세월호에 대한 조계종의 활동을 부정하고 종단을 여전히 ‘김정은 집단’에 빗대 매도했던 이전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봉주 전 의원은 “지난번 발언은 조계종을 전면 부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족과 국민의 마음을 달래 줄 때 왜 우리나라 종교인은 그러지 못했냐고 반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정은과 똑같다고 하지 않았다”라며 도정스님이 징계에 회부된 사안을 두고 “헌법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김정은 집단과 다를 바 없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불성설이자 세속과 종단의 차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데서 나온 ‘막말’이었다.

달라진 점은 있었다. 지난번 법회 때 맵시 있게 손질했던 머리를 볼 수 없었다. 열흘 전 세월호 가족들의 삭발식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날 삭발한 모습으로 나타난 정봉주 전 의원은 지난해 단식을 벌이던 유민아빠의 손을 잡아준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을 향해 “뭐하고 있었냐” 외쳤다.

'거두절미’ ‘왜곡일색’은 정봉주 전 의원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다. 정봉주 전 의원의 말대로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지난해 8월21일 광화문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당시 39일째 단식을 하고 있던 김영오 씨, 유민아빠를 직접 만났다. 그리고 “잘 이겨내달라” “끝까지 함께 하겠다” 다독였다. 열흘 뒤 자승스님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호소문'을 발표했다.

호소문에는 “진실규명과 국가혁신을 통해 안전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과제이며 그 첫걸음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라는 것과 “세월호 특별법이 정쟁으로 변질돼선 안되며 장외가 아닌 국회에서 대화와 협상을 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조계사 신도들과 대치하고 있는 이재화 변호사(사진 오른쪽), 정봉주 전 의원(오른쪽 두번째), 도정스님(오른쪽 세번째).

그럼에도 정봉주 전의원은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단식을 하던 유민아빠의 손을 잡고 곧 해결해 줄 것처럼 하다가 며칠 뒤 ‘특별법은 국회에서 해결하라’ ‘진상규명보다 민생이 우선이다’ 하지 않았냐”며 “과연 세월호 가족들이 이 말에 위로를 받았거나 도움을 받았겠냐”고 매도했다.

나아가 “자승스님이 원장으로 있는 은정불교문화진흥원”을 강조하며 “본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곳에 대해 책임지라”고 재차 주장했다. 이어 “이것이 가장 청정해야 할 종교집단, 원장이 책임자로 있는 집단의 부끄러운 모습”이라며 “세속보다 더 못하다”고 비난했다.

지난해 5월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종단 중진 스님 40여명과 서울 조계사에서 7시간을 달려 진도 팽목항을 방문했다. 참사 다음날인 17일부터는 자승스님이 이사장으로 있는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긴급구호봉사단을 파견해 임시법당을 차려 227일 장기간 팽목항을 지켰다.

특별법 제정을 위해 32일간 단식을 했던 것에 이어 두 번째 단식에 들어간 조계종 사회부 노동위원회 소속 노동위원 도철스님을 비롯해 조계종 종무원들과 불교계 단체들도 오체투지와 도보행진을 해왔다.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스님은 생명평화정진단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1000일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이사장 혹은 책임자로 있는 조계종 소속 스님과 재가불자들의 발자취는 명명백백하다.

이날 정봉주 전 의원은 입장문 서두와 말미에서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프란치스코 교황을 끊임없이 관련짓기도 했다. 시복미사 집전과 아시아청년대회 참석 차 방한한 교황은 4박5일, 100시간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선교활동을 위해 왔지만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을 위해 종교인으로서의 헌신적 모습을 보여주며 “불행과 고통 앞에 중립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남겨 감화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정봉주 전 의원은 이를 비교하며 조계종이 ‘중립의 자세’를 지키고 있는 비겁한 집단이라 매도하는 듯한 비방을 이어갔다. ‘다름’과 ‘틀림’의 차이, 그가 알고 있는 ‘중립’과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이의 모습이었다.

이날 정봉주 전 의원에게는 말을 번복하는 정치인 특유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전 만남에서 그는 자신을 ‘기불릭’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날 정봉주는 “나는 ‘만운’이라는 법명을 받고 30여년을 불교신자로 생활하고 있다”며 “이런 나를 두고 ‘이단’ ‘이교도’라고 모함하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언행불일치도 여지없이 보여줬다. 정봉주 전 의원은 “조계종에서 아무 대응도 하고 있지 않고 있다가 종무원 조합에서 고소를 했기에 대화의 신호탄이라고 생각해서 왔다”며 “서로 문제제기를 했을 때 바른길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그는 법보신문과 본지의 인터뷰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의 말마따나, 불교는 2000만이 믿는 종교다. 정봉주 전 의원 스스로도 “제일 좋아하는 종교는 불교”라고 말했다. 친한 스님도 여럿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교를 도박과 폭력이 난무하는 “타락한 종교” “썩었다” 매도하며 그간의 행보를 ‘청정불교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문제제기’라고 포장했다.

정 전 의원은 “헌법을 따르지 않는 조계종은 김정은 집단”이라 주장하며 정치인 특유의 시각을 종교에 무리하게 대입시키면서도 “청정 불교를 만들겠다” 외치고 있다. 헌법 제20조, 정치인은 특유의 이익을 위해 신성한 종교의 영역은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정교분리의 원칙조차 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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