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스님 페이스북에 심경글 올려

금강스님 페이스북 캡쳐.

정봉주 전 국회의원이 지난 3월31일 바른불교재가모임 창립법회에서 "세월호 당시 스님들은 어디있었냐"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진도 팽목항에서 30일기도를 이어가고 있는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이 지난 6일 오후 페이스북에 심경글을 올렸다. 금강스님은 “정봉주는 어리석고 나쁜 사람이다”로 글을 시작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만을 가지고 막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금강스님은 “위로 받아야할 세월호 가족들이 발에 피멍이 들도록 걷고 삭발하는 때에 아무것도 못하고 1년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팽목항을 오간 것이 내세울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입다물고 있었다”며 그러나 “언론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자마자 현장에 달려갔던 당시 상황부터 현재 끝까지 남아 기도를 이어가고 있는 현지 소식들을 상세히 전했다.

금강스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팽목항스님들의 모습.

금강스님은 “중노릇하면서 이렇게 뜨거운 희망을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감사해 눈물 날 지경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어 참사 당시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식음을 전폐한 실종자 가족 한사람 한사람 손에 떡과 과일을 제일 먼저 손에 쥐어 줬던 일, 잣죽이며 땅콩죽이며 날마다 1000여명의 죽을 쑤고 따로 포장했던 일, 세탁차량을 이용해 수백벌의 옷과 이불을 세탁했던 일, 시신확인소에서 가족들의 오열을 받아주며 손을 잡아줬던 일, 잠수부들이 철수하는 날까지 음식을 제공해주고 물에 들어가기 무서워하는 잠수부들 한명 한명에게 염주를 채워줬던 일, 결재에 들어가기 직전 기도해주겠다며 빗속을 뚫고 찾아왔던 스님과 강원도 경상북도 등 산골짜기까지에서 찾아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스님들 등을 언급했다. 또 12명의 실종자 가족만이 남았을 때 조계종 아름다운동행에서 보내왔던 30벌의 겨울 파카,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생계비를 비공식적으로 지급했던 기억 등을 떠올리며 “팽목항에서 관심이 멀어질 때 실제적인 구호활동으로 끝까지 남은 것은 불교계뿐”이라고 말했다.

금강스님은 “지금도 팽목항이 잊혀질까봐 차가운 비바람 맞으며 하루 두 번씩 법당에서 스님들이 기도하고 있다”며 정봉주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막무가내 떠드는 나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세월호 진실도 자신의 인기몰이나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면 가족들을 오해받게 하고 두 번 억울함을 당하게 하는 고통을 주는 것”이라며 불교계의 세월호 활동이 없었다고 비판한 정봉주는 “공식으로 사과하지 않는다면 입으로만 정의와 세월호를 들먹거리는 영원히 나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금강스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

정봉주는 어리석고 나쁜사람이다.

어쩌면 세월호를 침몰시킨 사람들 보다 더 못된 사람이라 평가해야겠다.

자신이 하는일이나
자신이 알고있는 정보만을 가지고 막말을 하는것은 
공적인사람이 해서는 안된다.

다른사람의 말이나 행동은 비판하면서
자신이 그렇게 한다면 파렴치한이다.

아직도 
저 진도 맹골수도 차가운 바다에는 
아홉명의 실종자들이 갇혀있는데

세월호가 침몰하는데도 아무도 붙잡지 않고 보고만 있었던 것 처럼
세월호를 인양할수 있은데도 바다속에
그냥 묻어두고 보고만 있는 가슴아픈 상황에 ᆢ
슬퍼하고 가슴아파 통곡하는 가족들ᆢ
위로 받아야할 가족들이
발에 피멍이 들게 걷고
삭발하는 때에 ᆢ

아무것도 못하고
1년을 맞이하는 상황 앞에

그동안 팽목항 왔다갔다한것이 무슨 내세울일 아니여서
입다물고 있었습니다.

혹여 나 말고
정성을 다해 애쓴분들에게 누가 될까하여 몇자 적습니다.

지난해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자마자
진도로 달려갔습니다.
이미 진도실내체육관 실내에는 천여명 실종자가족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망연히 있었지요.
밖에는 봉사자들이 천여명이 넘게 있었고 
한국에서 나오는 일회용식품들은 넘쳐나게 쌓여있었고요.

그때
식음을 전폐한 가족들 한사람 한사람손에 죽과 떡과 과일을 제일먼저 손에 쥐어 준것도 스님들이었고요.

잣죽이며 땅꽁죽이며 호박죽이며 날마다 땀방울 흘리며 천여명의 죽을 쑤고 한사람이 먹을수 있도록 따로 포장하고. 유가족들의 받는손을 고마워하며 보람을 느끼던 때가 엇그제 같습니다.

수백벌의 옷과 이불도 날마다 세탁차량을 이용해서 세탁해준곳도 불교단체였습니다.

구호물품이 끊겼어도
자체적으로 구입하여
이백일 넘게 꾸꿋하게 먹을것,마실것 제공을 한곳도 법당이었습니다.

팽목항에서는 바닷바람과 태풍을 이기며. 
가족들만큼 간절하게 기도하자며
하루 열세시간씩 끊임없이 이백일이 넘도록 기도하였지요.

팽목항과 체육관법당에 찾아와
가족들이 직접쓴 기도문 이백여장과 
찾아온 사람들이 쓴 기도문 오백여장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팽목항 싸늘한 시신확인소에서는 
가족들이 오열하고 실신하는데 손을 잡아준 종교인은 스님들 뿐이었습니다.
하루 열시간 넘게 비구니스님들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오죽했으면 시신확인소 봉사자들이 
스님들 없으면 무섭다고 자리를 지켜달라고 했겠습니까
이웃종교인들이 자기 종교인만 챙기고 갈때는 서운한기분도 들었지요 ᆢ

침몰지역에 다녀온 가족들이
잠수부들이 잘 먹어야 아이들을 찾는데 기운을 낸다며 스님들께 음식요구를 해와 
잠수부들이 철수하는 날까지 
과일,떡은 물론이고 수육, 통닭까지 바리바리 오일에 한번씩 이백만원 정도의 비용을 드려 제공했습니다.
잠수부들이 물에 들어가기 무섭다며 스님들 염주를 달라고하여 무수히 손목에 채워드리고요

종정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스님들과 불자들이 한시간이라도 기도를 해야겠다며 찾아 왔으며,
저 강원도, 경상북도 산꼴짝 스님들까지 찾아왔습니다.

결제철 수행들어 가기전 팽목항에서 기도하고 공부시작하겠다고 빗속에 찾아온 스님들 ᆢ
통도사, 해인사,운문사,동학사,선운사, 금산사. 송광사,화엄사,백양사,대흥사,수덕사. 동국대, 중앙승가대.청암사 ㆍㆍㆍ
이루 다 기억할수없는 공부하는 수천명의 산중스님들이 찾아왔지요
제 중노릇하면서
이렇게 뜨겁게 희망을 느껴본적이 없을정도로 ᆢ

감사해서 눈물날 지경이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수많은 구호물품들까지 ᆢ

12명의 실종자가족들이 남아있을때 가을이 깊어질때쯤 쓸쓸하고 추위가 뼈속을 스치듯 할때 두꺼운파커가 팽목항에 도착했습니다.
조계종 아름다운동행에서 30여벌 보내오셨지요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생계비도 각각 백만원씩 지급도하고 ᆢ

팽목항에서 관심이 멀어질때 
실재적인 구호활동으로
끝까지 남은것은 불교계 구호활동뿐이었습니다.

천주교는 
교황방한이후부터 적극적참여가 시작되었습니다.

언론에
드러나지않는 활동들이었다고 
활동을 하지 않은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팽목항이 잊혀질까봐
차거운 비바람 맞으며
하루 두번씩 팽목항법당에서는 스님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정봉주는 팽목항에서 불교활동이 없었다고 비판한 내용이 전해와서 긴 이야기를 적습니다.

더 많은 내용들이 많지만 기억이 나는데로 적습니다.

그런면에서
정봉주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하지않고 
막무가내로 떠드는 나쁜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진실을 반쪽짜리로 만들어버리던지
진실을 쓰레기통에 버리게도 만드는 사람입니다.

세월호의 진실도
자신의 인기몰이나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희생자가족들을 오해 받게하고 
두번의 억울함을 당하는 고통을 주는것입니다.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는다면
입으로만 정의와 세월호를 들먹거리는
영원히 나쁜사람이 될것입니다.

4월 16일. 오후1시
팽목항 법당에서 1주기 추모법회를 합니다.

4월 16일. 
점심 짜장밥(12시)과 저녁 떡국(5시)을 
각 1,500명분씩 준비하였습니다.
팽목항에 오시는분은 누구나 먹을수 있습니다.

지난달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도보순례한 가족들을 위해 3,000명분. 4끼니를 보시했던
남원 선원사주지 착한짜장 운천스님이 또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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