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제법원 종정예하가 걸어온 길

종단 신성(神聖) 상징하는

우리 사회의 고귀한 스승

‘일면불 월면불’ 화두 타파

향곡스님에게서 ‘견성’ 인가

 

해운정사 창건·참선 대중화

‘대선사’로서의 위상 확립

동양정신문화 정수 ‘간화선’

지구촌 누비며 설파 ‘귀감’ 

“종정(宗正)은 본종의 신성(神聖)을 상징하며 종통(宗統)을 승계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갖는다.” 조계종 종헌 제19조에 명시된 종정의 정의다. 곧 종정은 올곧고 뛰어난 수행자의 표본이자 우리 사회의 고귀한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극진한 예우의 표현으로 ‘스님’이란 호칭 대신 ‘예하(猊下)’를 붙이는 까닭도 이러한 맥락이다. 지난 2012년 3월 제13대 조계종 종정에 추대된 진제법원(眞際法遠) 대선사 역시 일찍이 도(道)를 이뤄 평생을 수행과 교화에 매진한 이 시대의 대종장(大宗匠)이다.

진제 종정예하는 193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다.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석우스님과의 인연으로 약관의 나이에 산문에 들었다. “세상의 생활도 좋지만 그보다 더 값진 삶이 있으니, 네가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석우스님의 권유에 곧장 해인사로 출가했다. 이때가 1953년. 같은 해 해인사에서 석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58년 해인사에서 혜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이로부터 10여 년간 용맹정진에 몰입하던 종정예하는 향곡스님 문하에서 깨달음을 성취했다. 1967년 중국 당나라 마조도일 선사의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 화두를 타파한 것이다. ‘북전강 남향곡’이란 말이 회자되던 즈음이었고 향곡스님은 한반도 남쪽에서 후학을 길러내던 도인이었다. 종정예하는 향곡스님 앞에서 “一棒打倒毘盧頂(일봉타도비로정) 一喝抹却千萬則(일할말각천만칙) 二間茅庵伸脚臥(이간모암신각와) 海上淸風萬古新(해상청풍만고신)”이란 오도송으로 자신의 법기(法器)를 드러내보였다.

“한 몽둥이 휘둘러 비로정상을 거꾸러뜨리고/벽력같은 일할로써 천만 갈등을 문대버림이로다./두 칸 띠암자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 이에 향곡스님은 “부처님의 마음법을 전해받은 육조, 마조, 임제의 가풍이 이 글 속에 다 있구나. 너의 대(代)에 선풍이 만방에 드날리리라”고 극찬하며 진제(眞際)라는 법호와 함께 전법게를 내렸다. 경허 혜월 운봉 향곡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하며, 세랍 34세의 젊은 선사가 탄생하던 순간이다.

견성(見性) 이후 진제 종정예하는 당신이 얻은 부처님의 미묘법(微妙法)을 만인과 나누기 위해 간화선의 대중화와 생활화에 나섰다. 1971년 부산 해운대에 해운정사를 창건하고 선원을 개원해 승속을 막론하고 모든 불제자들에게 참선법을 직접 지도했다. “모든 번뇌와 온갖 시비분별을 끊어 참나를 온전히 깨달으면 남이 없는 영원한 대안락에 머물며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대자유인이 된다”는 게 종정예하의 한결같은 당부다.

대선사로서 종단 내에서도 위상을 확고히 했다. 선원의 스님들을 비롯해 수많은 재가불자들이 종정예하의 말씀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고 있다. 1994년 팔공총림 동화사 조실(현 방장)로 추대돼 지금까지 동안거 하안거 결제 때마다 납자들에게 참선의 바른 길을 제시하며 분발을 독려하는 중이다. 이와 더불어 1996년 조계종립 기본선원 조실과 2000년 문경 봉암사 종립특별선원의 조실을 맡아 종단의 선풍(禪風)을 진작하는 데 힘썼다.

무엇보다 간화선의 세계화를 원력으로 지구촌을 무대로 활약하고 있는 점이, 이전 종정 스님들에게선 보기 어려웠던 면모다. 1998년과 2000년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두 차례 거행된 무차선대법회에 법주로 초청돼 5대 종정 서옹스님과 함께 법을 내렸다. 2002년에는 주석하던 부산 해운정사에서 중국과 일본의 고승을 초청해 국제무차선대법회를 직접 개최하며 한국 간화선의 진수를 세계에 알렸다. 2010년 세계적인 신학자 폴 니터 교수와 종교 화합을 주제로 한 대담을 가져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국제포교의 백미는 2011년 9월 미국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봉행한 간화선세계평화대법회였다. 세계 초강대국의 최대 도시 한복판, 거대한 십자가 아래서 외친 ‘참나’를 향한 사자후는 경이적이었다. 종정예하는 “모든 종교는 인간 내면세계의 정화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협력하는 우애로운 형제가 되어야 한다”며 종교간 화합을 강조했다. 아울러 “동양정신문화의 정수인 간화선은 모든 종교와 사상을 초월해 참나를 깨달음으로써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훌륭한 수행법”이라는 법문도 미국인들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종정예하의 가르침은 영문법어집 <Finding the True Self>으로 출간돼 전 세계인들에게 읽히고 있다.

뉴욕에서 법문 … 세월호 위문 … 적극적인 보살행

종정 취임 이후 행보

“다투면 부족, 양보하면 남아”

국민들에 화합과 배려 당부

 

미국 종교지도자들에 설법

‘광도중생’ 향한 원력 밝혀

 

매년 자비나눔기금 보시

무차대회는 원력의 ‘백미’ 

조계종 제13대 종정추대식이 2012년 3월28일 서울 조계사에서 사부대중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봉행됐다. 법좌에 오른 진제법원 종정예하는 “쟁즉부족(爭卽不足) 양즉유여(讓卽有餘). 만냥의 황금이라도 다투면 부족함이나, 서푼의 황금이라도 사양하면 남음이로다”라며 국민들에게 배려와 화합의 메시지를 던졌다. 추대식에는 당시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해 축하를 전했다.

추대식 직전 종정예하는 교시(敎示)를 내려 종단의 최고 어른으로서 종도들의 책무를 천명했다. ‘持戒淸淨(지계청정)’, ‘精進和合(정진화합)’, ‘廣度衆生(광도중생).’ 각각 ‘계율을 받들어 청정히 하고’, ‘끊임없이 정진하고 화합하며’, ‘중생에게 널리 법을 펼치라’는 의미다. 특히 광도(廣度)라는 표현으로 중생구제의 대상과 영역을 대폭 넓힌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이는 국제무차선대법회를 열고 미국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법문하는 등 한국불교 수행의 정수인 간화선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기여해 온 행보와 무관치 않았다.

‘광도’를 향한 원력은 머지않아 가시화됐다. 진제 종정예하는 2012년 10월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현지 종교지도자들에게 한국불교 정통수행법인 간화선을 소개했다.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유엔(UN) 플라자(Plaza) 처치(Church)센터에서 열린 세계종교지도자모임에서 “간화선을 통해 ‘참나’를 찾아야 한다”며 인류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종교인들의 연대를 당부했다. 종정예하의 법문은 UN산하 종교기구인 뉴욕 종교간 대화 센터(New York Interfaith Center), 이해의 전당(The Temple of Under standing)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지구촌의 평화와 화목과 평등, 건강한 생태환경은 인류 개개인이 마음을 닦는 수행을 통해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이룩할 수 있다”며 “인간과 자연은 서로 상생의 관계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온 지구촌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법어는 선불교가 낯선 서양인들을 일순 감화시켰다. 아울러 종정예하는 오랫동안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조찬기도회를 주관해온 더글러스 코우(Douglas Coe) 목사를 비롯한 현지 종교계 유력인사들과 대담을 나누며 한국불교의 위상을 높였다.

진제 종정예하는 평생을 수행으로 일관한 산승(山僧)이지만, 보살행에도 어둡지 않았다. 지난해 전 국민을 충격에 몰아넣은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앞장서 보듬으며 솔선수범한 점이 비근한 예다. 종정예하는 사건 발생 사흘째인 4월19일 진도로 달려가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계종 긴급구호봉사대를 격려했다. 또한 침몰 현장인 팽목항을 둘러본 뒤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르던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아 위로하면서 ‘큰스님’으로서의 의무를 다 했다. 이밖에 매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자비나눔기금 1000만원을 종단에 기탁하면서 귀감이 되고 있다.

세계평화 간화선 무차대회는 진제 종정예하의 적극적인 제안과 지원으로 성사됐다. 종정예하는 추대식 법어에서 ‘참나’를 깨우치는 방법으로 참선을 제시하며 “마음의 가지가지 갈등과 잡념을 없애고 진리에 이르는 가장 지름길은 오직 참선”이라고 명시했다. 이와 함께 “참나 가운데 대안락(大安樂)과 평화가 갖추어져 있고, 만 가지 형상이 나와 둘이 아니며 온 세계가 한집”이라며 “산과 물과 같은 덕행을 행하여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앞당기자”고 역설했다. 오는 5월 열리는 세계평화 간화선 무차대회를 이미 이때부터 구상하고 있었던 셈이다.

곧 무차대회는 종정예하가 오랫동안 품었던 원력의 결정판이라고 갈음할 수 있다. 모든 인류가 참선을 통해 ‘참나’를 깨달으면 가아(假我)에 갇힌 편협한 사고를 극복하고 종국엔 남북통일과 세계평화가 달성된다는 확신이다. “외려 서양에선 모든 지식인들이 선에 눈을 떴는데 막상 선의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선 관심이 미미한 현실”을 아쉬워하면서 내린 결단이기도 하다. 신록의 5월 청명한 서울 하늘에 울릴 종정예하의 사자후가 기대된다.


■ 종정예하 수행이력

 

1934년 경남 남해 출생

∙1953년 해인사에서 석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8년 혜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1967년 향곡스님으로부터 인가(認可)

경허-혜월-운봉-향곡스님으로

이어지는 법맥 계승

∙1971년 부산 해운정사 창건

∙1994년 팔공산 동화사 조실(현 방장)

∙2000년 조계종립 봉암사 태고선원 조실

∙2002년 해운정사

국제무차선대법회 법주

∙2003년 조계종 원로의원 추대

∙2004년 조계종 대종사 법계 품수

∙2011년 미국 뉴욕 리버사이드교회

간화선대법회 법주

∙2012년 조계종 제13대 종정 추대

 

 

 

■ 오도송

 

진제법원 종정예하는 “간화선은 모든 종교와 사상을 초월해 참나를 깨달음으로써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훌룡한 수행법”이라고 역설했다.

[불교신문3095호/2015년4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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