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삼 소설가 ‘솔거’ 출판

솔거

민병삼 지음/ 선

영화 ‘취화선’에서 시작해

화가에 대한 애정을 소설로…

 

‘삼국사기’ 기록이 전부

신라 최고의 화가 솔거는

그림에 대한 욕망을

수행을 통해 완성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 솔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 진흥왕 때 화가였는데, 그가 황룡사의 노송도를 그렸다. 그런데 이 벽화의 노송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보니 새들이 나무로 착각해 날아들다가 벽에 부딪히곤 했다는 기록이다. 솔거는 또 분황사의 관음보살도와 진주 단속사의 유마상, 단군초상, 진흥왕대렵도팔폭을 그렸으며, 관세음보살 삼상(三像)을 조각했다고 기록돼 있다. 다른 문헌에서는 미천한 출신의 화가인 솔거가 단군으로부터 신필을 받은 이후 10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는 기록도 보인다.

당시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의 불화를 그릴만큼 실력이 뛰어났던 솔거지만, 자세한 기록이 남겨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솔거의 출신이 매우 낮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솔거는 솔거노비에서 유래한 말로, 노비출신이라는 주장도 있다.

민병삼 작가는 솔거를 스님으로 추정했다. 백제의 노비출신으로, 백제를 탈출해 신라에서 승려가 돼 화가의 꿈을 펼친 스님이라는 상상력이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을 소설로 엮은 민병삼 작가를 지난 3월20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70대 중반의 전업작가라며 자신을 소개한 민 작가는 “조그만 단서지만, 자료에 충실하고자 했다. 여러 정황으로 볼때 솔거는 출가 수행자라는 생각이 든다”며 말문을 열었다.

민병삼 작가의 <오원 장승업>은 1997년 영화로 제작됐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다. 이후 민 작가는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칠칠 최복, 표암 강세황 등 조선시대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번에는 천년 전, 솔거에 대한 역사소설을 썼다.

“안휘준 교수의 논문 한국미술사연구에서 솔거란 인물을 만났어요. 회화를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화가들의 삶과 예술세계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솔거로 옮겨 왔어요.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렸으면 새들이 벽에 날아와 부딪쳤을까 상상해 봐요. 누군지 궁금해지지 않겠어요?”

민병삼 작가는 솔거에 대한 기록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삼국사기> 권 48 열전의 기록이 전부였다. 이를 기초로 미술사학자들이 몇몇 언급을 했지만 모두가 추정이었다. 솔거가 벽화를 남겼다는 황룡사와 분황사, 단속사의 그림도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민 작가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당대의 훌륭한 화가와 건축가는 스님이었다”는 사실에 착안해 솔거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들어 배불정책의 영향으로 화승(畵僧)이란 것이 알려지지 못했지만, 불화를 통해 습득한 지식이 상당했음을 쉽게 추정할 수 있었단다.

소설 <솔거>에서 솔거는 백제 땅을 등진 솔거노비 출신으로 기록했다. 신분의 굴레서 벗어나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솔거는 신라에 발을 디딘 후 무진스님을 만나 자양사라는 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스승 도암을 만나 그림을 배우게 된다. 소설은 솔거의 삶을 “그림에 대한 욕망에서 시작했지만, 수행을 통해 자신의 그림세계를 완성해 가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옹주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옹주마저 출가해 비구니가 되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그림에 대한 솔거의 열망을 그려내고 있다.

이같은 구성에 대해 민병삼 작가는 “소설은 역사적인 사실을 재미있게 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완성된다. 결국 픽션이 없이는 소설이 나올 수 없다”며 “솔거가 어떤 모양의 노송도와 관세음보살상을 그렸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수행자로써 신심을 담았기에 삼국사기 기록에 남을 정도의 작품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병삼 작가가 역사속 화가들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70년 <현대문학>지로 등단한 이후 <고양이털> <가시나무집> <서울 피에로> 등 현대소설을 다수 저술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역사 속 화가들을 그리는데 집중해 왔다. 민 작가는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예술가들의 삶과 철학을 통해 당시 국가의 통치이념과 사회를 배울 수 있다. 이 깨달음의 작업은 오늘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고 답했다.

민 작가는 “<솔거>에 이어 조선시대 화가인 <공재 윤두서>를 끝으로 다시 현대소설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역사소설이 주는 재미와 교훈적인 내용이 많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보니 작가의 창작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밖에 없다”는 이유다.

“수 십년 사이, 화승 등 기능을 가진 스님들이 오히려 줄어들었어요. 그림이나 건축, 조각 등을 이제는 거의 일반인이 합니다. 어떤 측면에서 안타까움이 있어요. 수행의 향기가 예술로 묻어날 때 진정한 종교예술품이 탄생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2의 솔거 같은 스님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민병삼 작가는…

 

충남 대전서 출생해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중편소설 <고양이털> <가시나무집> <다시 밟는 땅> <터널과 술잔>, 장편소설 <그 여름 날개 내리다> <임의 향> <피어라 금잔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칠칠 최북> <표암 강세황> 등을 펴냈으며 한국소설문학상과 동서문학상, 유주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소설 <솔거>를 펴낸 민병삼 작가를 지난 3월20일 만났다. 민 작가는 “역사 속 예술인을 통해 당시의 문화와 서민의 삶을 그려보는 작업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불교신문3093호/2015년4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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