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 온

올해의 봄은

저 활짝 핀 꽃들은

어떤 기억 속에서

설레고 있을까?

 

그리고

삶에서 죽음으로

이사 가게 될 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며칠 전에 친구가 전화를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팔려 내가 사는 동네 가까이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며 가끔 북한산 산행을 같이 하자는 얘기였다. 몇 년 전부터 집을 옮기려 하는데 매매가 안 돼 꼼짝을 못한다고 걱정을 하더니 마침내 계약을 하게 된 모양이었다. 강남에서 강북으로, 그리고 집을 줄여 이사를 하게 됐는데도 한 시름 덜었다는 듯 밝은 목소리였다.

아닌 게 아니라 봄이 되니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또 오가는 길에서도 심심찮게 이삿짐 트럭을 마주치곤 한다. 얼마 전엔 무슨 급한 사정이 있는지 아침부터 빗줄기 속에 짐을 옮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문득 우리들 삶이 이사의 연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셋방에서 살림을 시작해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허리띠를 졸라매 어엿한 집을 가지게 되는 과정에서 (요즘은 이런 일이 거의 불가능한 것 같기도 하지만) 우리는 여러 차례 이삿짐을 묶고 풀게 된다. 또 어렵사리 집을 가지게 된 후에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집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훌쩍 커 있고 머리는 희끗해지는 게 삶의 한 모습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생활의 편익을 위해 집을 옮기는 일 뿐 아니라 봄이 온 것, 마른 가지에 새 잎이 나고 꽃이 피는 것도 겨울이 봄으로, 지난겨울의 차디 찬 바람과 눈송이가 푸른 이파리와 꽃의 집으로 이사를 한 게 아닌가 싶다. 또 봄은 여름이 되고 여름은 가을이 되고 눈부신 벚꽃 잎이 검은 버찌가 되는 것, 잎이 지면 열매가 익고 여름의 소낙비가 겨울의 눈보라가 되는 것… 이런 자연의 변화들을 끊임없는 이사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일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경이에 찬 눈길로 주위의 사물들을 만지고 느끼면서 더듬더듬 말을 배우던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친구를 만나고 고통과 기쁨 속에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일, 그 모습을 때로는 가슴 졸이며 때로는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는 눈 밑에 하나 둘 주름이 생겨나는 일, 그리하여 어느 겨울의 빈 마당에서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우리는 ‘존재의 이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사를 하게 되면 그동안 쌓였던 묵은 잡동사니며 쓰레기들을 말끔히 정리하게 마련이다. 또 새로 살 집에서는 가구며 생활도구들을 반듯하게 정리하고 방과 거실, 부엌을 반들반들 윤이 나게 청소하게 마련이다. 지금은 별 소용이 없어졌으나 애틋한 기억이 깃든 물건을 손에 들고서는 한참동안 상념에 잠기게 된다. 또 꼭 필요한 것을 새로 마련해 방에 들여놓고서는 가슴 설레기도 한다.

그렇다면 새로 이사 온 올해의 봄은, 저 활짝 핀 꽃들은 어떤 기억 속에서 설레고 있을까?

그리고 마침내 삶에서 죽음으로 이사를 가게 될 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마치 그 대답인양 한 시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 생을 쏟아서/ 몇 푼의 돈을 모으고/ 몇 다발의 사랑을 하고/ 새끼와 사랑과 꿈과 죄를 두고/ 적막에 스밀 때// 얼룩이 남지 않도록/ 맑게/ 울어 얼굴에 얼룩을 만드는 이 없도록/ 맑게/ 노래를 부르다 가야 하리// (장석남 시 ‘얼룩에 대하여’)

[불교신문3093호/2015년4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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