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방곡곡 가득 찬 보물찾기(上) 강원 충청 전라 편

조선후기 대표 조각승의

작품 특성 잘 드러나는

현존 최고의 대작부터

임진왜란 이후 전쟁 종식

기원하며 조성한 불상까지

 

당시 시대상 보여주는

다양한 성보들 ‘눈길’

 

“수 백 년 지나도 온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는 것은

역대 주지 스님들 노고 덕분”

여수 흥국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

올 봄 숨겨진 보물을 찾아 사찰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 3월 초 보물로 지정된 전국 20여 곳의 성보들을 두 차례로 나눠 소개한다. 소중한 성보에는 옛 스님들이 남긴 사상과 철학, 전통적인 삶의 방식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있다. 수백 년은 훨씬 넘은 문화재가 우리 곁에 온전히 남아있을 수 있도록 애쓴 스님들의 이야기도 싣는다.

전남 여수 흥국사에 가면 꼭 친견해야 할 벽화 한 점이 있다. 대웅전 법당 불단 뒷벽에 가로 2m 세로 3m가 넘는 거대한 크기로 조성한 관음보살님이다. 보통 사찰 벽화는 흙벽이나 나무 판벽에 그려지는데 흥국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종이 바탕에 그려 흙벽에다 붙여 만든 첩부(貼付)벽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게다가 후불벽 전면에 예경의 대상으로 그려진 것은 흥국사가 유일하다. 2006년부터 ‘사찰건축물 벽화조사’ 사업을 진행한 성보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가로 4장, 세로 4장씩 16장의 한지를 붙이고 다시 얼굴부분에 1장의 종이를 덧붙여 총 17장의 종이로 바탕을 마련한 뒤 그림을 그려 붙였다.

벽화 속 관음보살은 바다 가운데에서 솟아난 대좌 위에 반가부좌를 하고 있다. 보살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아 올린 선재동자를 만날 수 있다. 까치발을 들고 합장한 선재동자를 보고 있으면 미소가 절로 번진다. 그림 하단 오른쪽에는 ‘시주(施主) 육순비구(六淳比丘)’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이 스님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관음보살도를 후원한 인물로 추정된다.

1693년경에 제작된 이 벽화는 300살을 훌쩍 넘겼다. 일반적인 벽화와 양식을 달리하다보니 보존 역시 중요한 과제다. 행여 건물 벽체에 금이 가면 그 위에 붙인 첩부벽화도 함께 찢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지 명선스님은 “성보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파손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을 여러 번 투입해 보수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보성 대원사 극락전 달마대사 벽화.
달마대사 앞에서 팔을 잘라 제자 되기를 간청한 혜가스님의 단비구법(斷臂求法)의 현장도 한 폭의 벽화로 탄생했다. 보성 대원사 극락전 동쪽 벽에는 달마대사와 그의 첫 제자이자 훗날 중국 선종의 제2조가 되는 혜가스님의 만남을 표현한 그림이 있다. 구도 열정이 강했던 혜가스님은 눈이 내려 무릎까지 쌓여도 꼼짝하지 않고 동굴 앞에 앉아 법을 구했다. 제자로 받아줄 것을 간청하는데도 달마대사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왼쪽 팔을 잘라 마침내 마음을 얻게 된다. 대원사 벽화는 바로 이 장면을 옮겨다 놓았다.

전신을 주황색 옷으로 감싸듯이 두르고 있는 달마대사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앉아있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달마대사와 달리 혜가스님은 담당한 표정으로 서 있어 대조를 이룬다. 혜가스님의 머리 뒤 쪽에 ‘신광선사단비(神光禪師斷臂)’라고 적은 흰색 글씨가 있다. 이를 통해 이 그림이 혜가스님의 구도의 길을 표현한 성보임을 알게 해 준다. 맞은편 벽에는 흰 옷을 입고 보타락가산 해변 바위에 걸터앉은 관음보살이 큼직하게 그려져 있다. 지난해 3월 보물로 지정된 운문사 벽화의 경우 달마와 관음보살을 한 벽면에 나란히 배치했는데, 이곳은 관음보살과 달마대사를 서로 다른 벽면에 대칭으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해남 대흥사 석가여래삼불좌상.
전남 지역 대표사찰인 대흥사에서도 보물이 탄생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일으켜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던 서산대사의 자취가 깃든 곳으로 유명하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석가여래삼불좌상은 임진왜란의 아픔을 극복하고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며 조성한 기념비적인 성보이다. 서산대사의 가사와 바리때가 1606년 사찰에 봉안되고, 6년 뒤에 제작된 불상이다.

삼불상은 2013년 개금불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원문과 함께 다량의 복장유물이 나오면서 구체적인 면모가 드러났다. 조사과정에서 좌우 협시불상에서 나온 ‘두륜산대둔사법당당주석가약사미타삼존소성복장기’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처참하게 변한 국토의 실상과 피폐해진 백성들의 생활, 소실된 사찰을 복구해가는 고난의 과정이 담겨져 있다. 이 복장기는 당시 시대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주지 범각스님은 “대흥사는 암울했던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의 불교를 있게 한 원동력을 제공했다”며 “400년 이상의 성보가 제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역대 주지 스님들의 노고 덕분”이라고 말했다.

남원 선원사 명부전의 소조시왕상.
남원 선원사 명부전의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소조시왕상도 임진왜란(1592~1598)과 연관 있는 문화재다. 전쟁이 끝나고 나라 안팎은 후유증 치료에 정신이 없었다. 명부전은 백성들이 필요로 하는 신앙을 받아들여 조성된 공간으로 망자를 추모하기 위해 지장보살과 시왕상을 봉안했다. 선원사 지장보살은 임난 이후 조성된 지장보살상 가운데 연대가 가장 빠른 성보이다. 1610년과 1646년 두 시기로 나눠져 제작된 것으로 조선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2010년 충북대 목재연륜소재은행과 함께 불상을 조사한 최선일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자문위원은 “지장보살상은 얼굴과 신체비례가 인체에 가깝고, 완만한 어깨에 무릎 높이가 낮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고 밝혔다. 주지 운천스님은 “전쟁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끊임없이 기도한 선대 스님들의 공덕에 힘입어 보물로 지정될 수 있었다”며 “선배 스님들의 무량한 공덕을 세상의 평화를 위해 회향하라는 뜻으로 알고 정진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불교 성보들은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가 2002년부터 실시한 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를 통해 가치를 평가받은 것들이다. 특히 문화재적 가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주목받지 못했던 불교 목공예 분야를 새롭게 부각시켰다. 불교 공예는 도량이나 불단을 장엄하고 법회나 의식 등에 쓰이는 도구를 뜻한다.

부여 무량사 삼전패(三殿牌)는 17세기 불교목공예품의 대표작이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용 조각과 황금색과 홍색 위주의 단청 등 공예성도 뛰어나다. 현존하는 전패의 경우 높이가 50~60cm인데 무량사 전패들은 150cm가 넘는 대형작품이다. 다만 지금은 수장고에 있어 직접 볼 수 없지만 조만간 일반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주지 제민스님은 “체계적인 보존과 전시를 위해 성보박물관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며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이와 더불어 원주 구룡사 삼장보살도, 보은 법주사 동종과 논산 쌍계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완주 정수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도 보물로 지정됐다.

이 가운데 완주 정수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순치 9년(1652)에 무염스님이 수조각승을 맡아 완성한 작품이다. 무염스님이 수조각승을 담당한 작품들은 불갑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35년)을 포함, 여러 지역에 존상들이 전하고 있지만, 정수사 아미타삼존상은 조형적인 면에서나 규모 면에서도 무염스님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논산 쌍계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1605년에 조성된 석가여래삼불좌상으로, 조선 후기 대표적인 조각승 원오(元悟)스님의 작품 특성이 잘 드러나는 현존 최고의 대작이다. 삼불좌상은 석가, 아미타, 약사로 구성돼 있는데 삼불상의 어깨가 넓고 허리가 긴 장대한 체구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로 이어진 불교조각의 전통을 잇고 있다.

원주 구룡사 삼장보살도는 18세기 전반 영가천도와 수륙재 의식 때 봉안됐던 성보이다. 이 불화는 수륙재 의식집에 근거해 천장보살, 지지보살, 지장보살 등 세 보살의 회상을 묘사한 것으로 18세기 전반 불화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현재 월정사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향후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은 법주사 동종은 1636년이라는 분명한 제작연대가 나타나있다. 특히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 꽃잎무늬를 입체적으로 세워 장식한 문양띠)를 비롯한 섬세한 세부 문양과 더불어 17세기 전반에서 중반까지 활약한 죽창과 정우계 범종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조선 후기 동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부여 부량사 삼전패.

 

보은 법주사 동종.

완주 정수사 목조 아미타삼존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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