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염원 담긴 탑”

해방의 기쁨을

새로운 양식으로 표현

건국기원탑비 모습. 사진제공=불교문화재연구소

 

광복을 경축하는 기념비가 독립기념관이 아닌 사찰에 새워져 있다면? 경북 청도 원리라는 마을에 위치한 적천사에 가면 광복을 주제로 한 건국기원탑비와 오층석탑이 있다. 이 탑과 탑비는 당시 주지 스님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모은 불사금으로 1947년 2월에 세운 기념비적인 성보이다. 1945년 8월15일, 꿈에 그리던 해방을 맞은 사람들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청도 적천사에서도 광복을 기뻐하고 나라의 밝은 미래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탑과 기념비를 만든 것이다.

청도 적천사 주지 정광스님에 따르면 과거 이곳은 독립운동과 관련이 있었던 역사적인 장소였다. 정광스님은 “지역 독립 운동가들을 돕고 자금을 마련해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며 “나라의 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상징적인 이곳에 지역 주민들이 힘을 모아 세운 것”이라고 밝혔다.

오층석탑 기단부 상층 기단에 새겨진 초화무늬. 사진제공=불교문화재연구소

청도 적천사의 건국기원탑비와 오층석탑은 해방의 기쁨을 새로운 시대의 양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높이 851cm의 오층석탑은 전통양식을 따르면서도 근현대 양식이 가미된 성보다. 기단부의 경우 측면에 연꽃과 초화(草花)무늬를 각각 돋을새김 했다. 이 무늬가 무궁화라는 의견도 있는데, 중요한 점은 기단부에 이런 무늬를 넣은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전 시대에는 볼 수 없는 적천사 탑만의 특징이다. 해방 직후 만들어진 탑이어서 왜색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었지만 이는 명백하게 잘못된 의견이다. 상륜부는 불국사 다보탑과 비슷해 전통양식을 모방하고 있다. 석탑은 2단의 기단부, 5층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돼 있으며 전체적으로 길쭉한 느낌을 준다.

건국기원탑비는 2기로 이뤄져 있다. 한 쪽 탑에는 탑을 세울 당시 보시금을 낸 수백 여명의 이름이 질서 정연하게 새겨져 있다. 보시를 많이 낸 순으로 출신지와 함께 기록하고 있어 이채롭다. 다른 한쪽에는 탑의 조성배경과 시기 등을 새긴 ‘적천사건국기원탑조성비명병서(磧川寺建國祈願塔造成碑銘幷序)’라는 명문이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탑과 관련된 기록물에 ‘설계(設計)’라는 근대적 용어가 등장한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근대 건축기술이 도입됨에 따라 시대적 흐름이 반영된 새로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절과 불상을 만드는데 경비를 후원했던 화주(化主)나 총책임자 등만 기록했다. 탑을 제작한 사람을 가리켜 ‘설계’라고 한 것은 근대적인 개념이 탑에 녹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이 탑과 탑비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시기의 석탑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경식 단국대 교수는 “오층석탑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양식을 갖다 쓰지 않고 전통을 지키려고 애쓴 흔적이 보여 귀감이 된다”며 “해방 이후 조성된 근현대 문화유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불교신문3091호/2015년3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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