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ㆍ자중ㆍ석광스님이 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길위의 64일

보광스님/ 맑은소리맑은나라


 

“나는 왜 이 길에 엎드려 있나”

뭇 생명 위한 천도재 지내며

부산서 통일전망대까지 순례

 

국민들에게 희망 주고 싶어

807km 길, 십보일배하며

5대 적멸보궁 찾은 기록

지난해 11월, 10보1배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로 향하는 보광스님. 불교신문 자료사진

부산에서, 남한 땅 맨끝 통일전망대까지 64일이 걸렸다. 열 번 걷고 한번 절하며 5대 적멸보궁을 순회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부산 불광사 주지 보광스님이 지난해 9월1일부터 ‘경제난 극복기원과 남북통일 및 상생을 위한 십보일배 대순례 기도’를 나섰다. 구미 관음정사 주지 자중스님과 부산 우리선원 주지 석광스님, 김동현 불광사 봉사회 총무가 대장정을 함께 했다. 순례를 나선 이유는 “사회적 분위기도 침체돼 있고,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한다. 국민들에게 작은 희망을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세월호 사건, 지방선거 휴우증 등 각종 사회적 악재를 쓸어 앉고 길로 나섰던 행보가 책으로 엮어졌다. 보광스님이 최근 펴낸 <길위의 64일> 내용을 일기식으로 재구성해 소개한다.

신도들의 격려를 뒤로하고 떨리는 몸과 벅찬 가슴으로 순례의 첫발을 힘차게 내디뎠다. 30도가 넘는 더위 탓에 온몸이 마치 한증막에 있는 것 같았다. 따가운 햇볕을 피해 손바닥만한 그늘이라도 있으면 찾아서 쉬려고 했다. 그런데 여의치 않다. 우리 뒤를 따르는 불자님들이 절을 하며 힘차게 추격해 오는 것이 아닌가. 나를 응원하고 있는 불자님들의 신심과 마음을 모아 70일간 계속될 이번 순례에서 태양보다 뜨거운 열정을 만들어 낼 것이다.

나와 맺어진 인연은 모두 소중하다지만, 지금 이 순간 거룩한 기도를 함께 하는 이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눈앞에서 다시한번 확인한다. 아침을 대신해서 군에서 먹는 전투식량을 먹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먹는 모습이 영락없는 거지 모양새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행복한 거지다!

어떤 분은 차를 세우고 다가와서 대단하신 분들이라며 얇은 지갑속에서 어렵게 만원을 내놓으며 우리를 응원해 준다. 감사한 마음으로 단주를 손목에 걸어주니 무척 기뻐하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

통도사 매표소에 도착하니 뜻밖에 은사 스님과 도문스님께서 내 옆으로 다가오셨다. 연로하신데다 당뇨까지 앓고 계신데도 먼 길 떠나는 상좌가 걱정돼 몸소 나오셨으니 목안에 울음이 소용돌이친다. 우거진 소나무 숲길을 따라 석가모니불 정근소리가 울려 퍼진다. 꿈속 같은 숲길에서 지나온 나의 삶을 참회하며 절을 해나간다. 이미 온몸이 흠뻑 젖어버린 은사 스님이 숨을 거칠게 내쉬며 우리를 뒤따르고 있다. 그 순간 표현할 수 없는 죄스러움에 그만 쓰러져 울고 싶었다.

 

# 힘차게 시작된 순례길이지만 첫날부터 녹녹치 않았다. 아스팔트는 뜨거웠고, 갑작스런 고행에 몸은 요동을 쳤다. 순례 5일째 스님 일행은 첫 번째 적멸보궁인 통도사에 도착했다. 은사 스님에 대한 보광스님의 마음에서 불교의 사제간 정이 무엇인지 엿보게 한다. 스님 일행은 다시 순례에 박차를 가했다.

 

오늘은 한가위. 목숨 걸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의 사연과 새터민의 이야기, 임진각에서 명절합동차례를 보내는 실향민의 눈물어린 이야기. 하지만 정작 우리는 통일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산다.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여기고, 오히려 국내 경제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며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까지 있다. 그릇된 생각이 두려운 일로 변해간다. 참 슬픈 일이다.

신라 의상대사는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서라벌에서 양양 낙산사 홍련암까지 삼보일배 수행길에 올랐다. 그리하여 맹수와 독충, 도적들이 위협하는 험난한 여정 끝에 홍련암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고 한다.

첫날부터 느낀 것이지만 갓길 옆은 그야말로 쓰레기장이 따로 없다. 심지어 절을 하는 우리들을 향해 온갖 쓰레기를 투척하며 낄낄거리며 사라지는 이들도 있다. 저렇게 상식과 도덕성을 잃어버린 이들이 오히려 남을 비하하고 겉으로는 착하고 깨끗한 척 스스로 포장할 것이다. 오늘따라 온갖 망상들이 내 머릿속을 휘몰아치고 어지럽게 만든다. 아득히 먼 옛날의 티끝 같은 실수까지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감추고 살았던 것이다. 결국 절을 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흐느껴 울었다. 눈물이 내 무릎과 발밑으로 뚝뚝 떨어진다.

14일째, 출발한지 한 시간이 지날 무렵, 자중스님이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던 석광스님도 피부가 벗겨져 상처가 난 무릎이 다 아물기도 전에 절을 계속하니 물집과 상처가 덧났다. 나는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다그쳐 묻는 것 밖에 할 것이 없었다. 내가 무엇을 찾아 이 길 위에 엎드려 있나? 이미 보현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같이 자고, 함께 밥 먹고, 고행을 나누고 있는데. 나는 어리석게도 탱화 속 화려한 모습을 갖춘 보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 하루 하루 이어지는 순례에서 다가오는 감정을 보광스님은 잔잔히 기술했다. 무리한 행군을 이어가다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도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경북 칠곡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한 가족을 위해 천도재를 기꺼이 봉행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고민의 시간도 가졌다.

 

오늘따라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가 유난히 많다.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뭇 생명을 배려하며 더불어 살지 못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화가 난다. 야생동물이 지나는 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인간의 욕망에 죽은 동물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법성게를 읽어주며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설렘과 아쉬움을 가슴에 담아 마지막 절을 해나갔다. 도착하면 눈물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담담하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온다.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 도착하며 64일간 807km 대장정을 끝냈다. 북쪽을 향해 묵묵히 서 계시는 부처님께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천도재를 지내고 통일을 염원하는 불공을 드렸다.

오늘은 회향이지만, 내일은 다시 입재다. 두려움과 의심없는 마음으로 수행과 포교의 현장에 있을 것이다.

 

# 하루하루 일기처럼 써 내려간 글에서 강한 감동을 느끼는 것은 ‘진솔함’이 그대로 배어나는 까닭이다. 스님의 글을 읽으면 마치 스스로가 순례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스님은 독자들에게 ‘신념’ ‘용서’ ‘수행’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당신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이다.

[불교신문3091호/2015년3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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