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압사 거사림회, 일요일마다 ‘국수 배식’
“공양간에 남자들 북적북적…행복한 콧노래”

호압사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행복한 머슴’을 자처하는 거사림회 회원들. 표정마다 행복이 넘쳐난다.

일요일마다 몸가짐을 정제하고 사찰 공양간으로 달려가는 남자들이 있다. 피곤에 절어 늦잠 자느라 부인이 차려준 아침밥도 제 때 못먹는 아빠? 건강 챙긴다고 가족들 두고 새벽부터 홀로 등산길에 나서는 아빠? ‘공양간 남자’들은 그런 부류의 아빠와는 다르다.

‘내가 없으면 1500인분 국수를 누가 삶아 나르고 설거지를 할꼬?’ 이런 걱정만으로 일요일마다 즐거운 봉사길에 오르는 호압사 거사림회 소속 30여명 아빠들을 만났다.

지난 15일 오전 9시. 아직 점심은 멀었지만 거사들의 손길은 바쁘다. 표고버섯과 온갖 야채로 채수를 맛나게 우려냈으니 일단 한시름 덜었다. 국수삶기는 ‘달인’의 경지가 돼야 제대로 삶는다.

팔팔 끓는 물에 국수를 삭삭삭 밀어내어 잠시 잠깐 삶았다가 뜨거운 국숫발을 쏜살같이 건져내야 한다. 찬물에 국수를 씻어낼 때는 그야말로 면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이 빠르다. 일반에 판매하는 흔한 밀가루 국수가 아니어서 더욱 조심스럽다. 콩이 많이 들어 있는 국수는 척척 재빨리 손을 놀리지 않으면 퍼지거나 끊어지기 십상이다. 국수를 삶고 남은 물은 그냥 버리지 않는다. 신속하게 설거지 부스로 옮겨진다.

콩국물은 식기를 닦을 때 세제없이도 더 깨끗하게 닦인다. 소임자들이 나눠져 있어 국수준비는 일사분란하게 이뤄진다. “자~ 1시간 전입니다. 우리 마음을 다잡고 즐겁게 봉사합시다!” 국수배식 시간을 1시간 앞두고 누군가 소리치자, 국수를 젓던 또 다른 거사는 “기자님이 취재왔다고 너무 카메라를 인식하지 맙시다”라고 해서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호압사 거사림회는 3년 전 결성됐다. 절에서 공부도 하고 수행도 하던 남성불자들이 하나둘 마음을 모아 거사림회를 만들어 사찰의 ‘머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머슴이라고 하기엔 표정들이 너무나 밝고 활기차다.

“우리들에게 우리절 봉사활동은 1순위도 아니고 0순위입니다. 정말 개인적인 중대한 일이 없다면 열일 제끼고 일요일마다 절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피곤하긴 하지요. 그러나 뿌듯한 피곤함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십니까?” 이상규(68) 거사림회장은 조금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국수를 씻어내는 손길이 바쁘다.

이 회장은 호압사 거사림회 맏형이다. 조용한 성격이지만 묵직한 존재감으로 거사림회의 중추가 되어준다. 최기찬(57) 거사는 이 회장의 역할이 호압사 거사림회를 든든하게 지탱해준다고 귀띔했다.

그는 “신행모임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표가 사심(私心)이 없어야 한다. 사심이 발동하면 봉사모임은 순신간에 깨어진다”며 “우리 거사림회 회장님은 언제나 솔선수범하고 특히 회원들간에 경조사를 꼼꼼하게 챙기는 등 맏형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거사림회는 지역사회에서도 자비의 쌀 나눔 등 다양한 신행활동에 앞장서면서 호압사 신도로서의 긍지를 갖고 있다. 방생행사가 열리면 교통봉사도 마다하지 않고 부처님오신날에는 등을 걸고 떼는 거친 일도 손수 맡는 거사림회다.

‘인문학적’ 소양이 높은 거사들은 사찰 홈페이지 지대방에 ‘마음으로 읽는 경전’ 등의 글귀를 옮겨 적으면서 전법포교에도 관심을 쏟는다. 최근 호압사가 수탁받은 요양원 사랑채에서 빚어지는 크고작은 일거리도 거사림회가 직접 나서 여러모로 일손을 돕고 있다.

이 날 국수봉사가 끝나고 대형 솥단지와 수천 그릇의 설거지를 다 마친 뒤에야 비로소 거사들과 공양간 보살들은 한자리에 둘러앉아 남은 국수를 고추장 넣고 양푼에 비벼 오순도순 웃음꽃을 피우며 나눠 먹었다.

거사림회 감사이자 올해 포교사가 된 박호규(54)씨는 말했다. “우리절 국수 한그릇 드시겠다고 멀리서 작정하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관악산 등반하면서 잠시 스친 인연으로 우리절 국수맛을 보고 가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어찌됐든 우리들은 우리절에서 이처럼 맛난 국수를 수많은 분들에게 무주상보시로 대접해 드린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합니다. 밥안먹어도 배부릅니다. 하하하.”

너도나도 똑같은 말을 하는 이들은 함께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어깨를 다독이면서 후루룩 후루룩 비빔국수를 먹었다.

[불교신문3092호/2015년3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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