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수행이 덜 되어 욱 하는가

 

화를 내는 모습을, 화를 안 내는 모습으로 바꾸고 싶으시군요. 그런데 화를 안 내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 남자친구에게는 특히나 화를 잘 내고 있으신 것 같고요. 화를 안 내는 모습이 되고 싶으시면서, 화를 안 내는 모습에는 화를 내고 계신다니, 재밌는 역설이죠?

모든 관계 속에서 알려지는 마음은 상호적입니다. 가장 쉽게 얘기하자면, 누군가가 지금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화를 내고 있다면, 그 화는 우리의 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라는 마음작용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은 그 화가 우리의 화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의 원인을 지금 화를 드러내고 있는 이에게 모두 전가해버리죠. “저 사람은 자기 조절도 못하고 아직 수행이 덜 되었네.” 마치 이런 식으로요. 이는, 그에게 지금 덤터기를 씌우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소외시킨 불편한 마음을 그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에요. 이와 같은 일이 질문자님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실입니다.

본인이 한번 확인해보세요. 늘 화를 내는지,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유난히 화를 내게 되는지를요. 그러면 알게 되실 거예요. 이 화가 어쩌면 본인의 화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넘겨받은 화일 수 있다는 사실을요. 남자친구와 얘기를 할 때면 특히나 답답해지고 화가 난다고 하셨죠.

여기에서 우리가 명료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남자친구가 화에 대해서는 늘 이를 통제하는 자리에 가고자 한다는 사실입니다. 화는 남자친구에게 가볍고 온전한 대상이 아니라, 통제를 필요로 하는 버겁고 불편한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남자친구는 이미 화가 나있어요. 그 화를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기가 싫어서 질문자님에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화를 넘겨주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자신은 화와 분리된 입장으로 가려고만 하고요. 맞는 얘기만 하는 사람은 ‘맞는’ 얘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는 화의 힘으로 때리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얘기를 들으며, 영문도 모르고 맞는 사람은 또 화가 날 수밖에 없죠. 그게 화가 은밀하게 다른 대상에게 넘겨지는 방식입니다.

남자친구와 얘기를 하며 답답하고 화가 날 때, 이 화가 남자친구의 것이라고 느껴보세요. 그리고 물어보세요. “얘기를 들으니까 뭔가 답답하고 화가 나는데, 혹시 뭐 안 좋은 일 있어? 당신을 위협하거나,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어?” 거기에서 입장은 바로 반전됩니다.

애초 본인은 화를 잘 내는 분이 아니라, 버겁고 불편해서 아무도 안 받아주던 화를 유일하게 본인의 몸으로 받아주는 보살행을 하고 계시던 분이세요. 화가 크면 클수록, 그 화를 담아내고 있는 그릇이 대체 얼마나 큰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남자친구조차 스스로 소외시킬 정도로 커다란 이 화를, 본인은 지금 이미 담아내고 있다는 그 사실을 잊지 마세요.

[불교신문3092호/2015년3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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