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공인박물관 소장본, ‘목판본’ 해석 박상국 원장 오류검증
경남 양산시 공인박물관 소장으로 지난 2012년 '보물 제758-2호'로 지정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는 목판본이 아니라 금속활자본이란 새 학설이 제기됐다.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오는 21일 보조사상연구원 학술대회 발표 논문으로 이를 공식 제기했다. 발표에 앞서 기자에게 18일 이를 설명한 서지학자인 박 원장은 “활자 농박도(濃薄度)조사에서 금속확자의 특징인 같은 면과 같은 글자에서도 농박의 차이가 심하다”며 “금속활자이므로 활자마다 높낮이가 조금씩 차이가 나기 때문이며 목판본은 판면이 고르고 글자의 높낮이가 동일하므로 농담의 차이가 없이 골고루 인쇄된 상태로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박 원장은 활자의 보사자(補寫字) 문제와 관련 “조사본에서는 목판본과 달리 활자가 내려앉아 인쇄되지 않아 보사로 채운 것이 많이 있고 글자마다 농담의 차이가 크고 한 개의 글자에서도 농담의 차이가 커 금속활자 인쇄의 특징이 확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사에 대해 “금속활자는 초기 주조과정에서 미숙함으로 인해 글자의 획이 아래로 쳐진 것이나 높낮이가 한쪽으로 기울어 골고루 먹이 묻어나지 않는 경우에 일부의 획에 가필한다”면서 “조사본에서는 보사한 부분을 다른 목판본과 비교했을 때 먹이 묻어있지 않으므로 아예 새기지 않거나 흉내만 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활자 제조 과정에서 생긴 철편이 찍히는 이른바 ‘쇠똥 자국’과 관련 일부에서 목판 인쇄에서 먹물이 튄 흔적이거나 먹을 칠한 붓솔의 부스러기라는 반대론이 제기된 것과 관련, “쇠 똥 자국이 상당히 많이 붙어있어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에게 새로 조사를 의뢰했던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이하 증도가) 원 소장자 울산 대성암 주지 원진스님은 “쇠똥 자국이 너무 많고 철편에서 나타나는 탈락자가 많이 나와 처음부터 금속활자본으로 볼 수 있었다”면서 “목판이 송연묵인 반면 활자본은 기름기가 있는 유연묵으로 써 다른 목판본과의 차이가 나타나 지난 40여년간 금속활자본임을 주장했으나 국내 서지학계에서 목판본으로 인식하는 관행에 의존해 와 이번에 본격 조사를 시작했다”고 지난 17일 말했다. 원진스님은 개인 박물관으로 공인박물관을 건립해 운영하다 휴관 중이며, '증도가'는 공인박물관에 기증했다.
공인박물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내 4종의 ‘증도가’ 소장 중 나머지 3곳은 목판이고 이를 근거로 이번 조사본도 목판본으로 오인해 왔다”면서 “나머지 3종류를 대비해 조사하면 더 명확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증도가’의 조상은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과 대구에 개인 소장본 및 개인 사찰 소장본 등으로 알려져왔다.
이번 조사 결과를 도출한 박상국 원장은 지난 1984년 삼성출판박물관 소장 ‘남명천화상송증도가’ 조사 당시 문화재전문위원으로 보물 758호로 지정한 당사자이며, 문화재청에서 국보 보물 전적지정조사를 통해 500여건의 목판본과 금속활자본에 대한 지정 보고서를 담당했었다. 또 10여년 동안 전국사찰 소장의 목판조사 경험도 갖고 있다.
박 원장은 발표 논문에서 활자본의 근거로 6가지를 요약했다. 근거로 그는 “각 면의 테두리 인쇄 상태가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목판본)은 깨져서 틈이 많은데 같은 부분에서 이 판본은 틈 없이 멀쩡하고, 판본 활자마다 높낮이가 달라서 같은 글자에도 농담(濃淡) 차이가 심해 금속활자본 특징을 보이며, 조판 기술이 미숙해 활자가 밀려 움직인 흔적이 선명하고, 쇠똥 자국이 뭉쳐 나타나 있고, 쇠가 녹으면서 쇳조각이 붙은 철편이 보이며, 일부 글자는 먹이 찍히지 않아 보사(補寫·새로 칠한 것)한 글자가 많고 한 개의 활자에서도 높낮이가 달라 먹이 묻어나지 않아 획에 가필한 흔적이 많은 점 등 6가지다”면서 "목판본은 평평해서 먹이 골고루 찍히고, 활자가 밀리거나 철편 현상은 생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박 원장은 "1984년 '증도가' 보물 지정 당시 최이의 발문을 잘못 해석됐다"면서, 발문 중 '於是募工 重彫鑄字本 以壽其傳焉(어시모공 중조주자본 이수기전언)'에 대해, "그래서 각공(刻工)을 모집해 '주자본을 바탕으로 다시 판각해서' 길이 전하게 한다"라고 해석해 온 것이 오류라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이를 "이에 공인(工人·각수)을 모아 '주자(鑄字·금속활자)로 다시 새겨(重彫)' 책을 만들어 오래도록 전해지게 하고자 한다"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오류를 바로잡으면, 최이의 발문이 남긴 내용은 "주자본을 목판본으로 다시 새겼다"는 뜻이 아니라 "'주자본 증도가'로 다시 새겨 오래 전하게 하고자 한다"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번 보조사상연구원 학술대회 발표에서 박 원장의 새 학설이 검증 과정을 거치면, 그간 통설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 직지심체요절(1377년 간행)’보다 138년이나 앞서는 13세기 초 금속활자본이 발견됐다는 학설이 공인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약칭 증도가)는 당나라 승려 현각(玄覺·665~713)이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한 증도가(證道歌)의 구절 끝에 송나라 남명(南明) 법천선사(法泉禪師)가 계송(繼頌·증도가에 덧붙여 노래한 시)을 붙인 책으로, 고려 고종26년(1239년) 당시 무신 정권 권력자 최이의 발문이 써져 있다. 학계에서는 그동안 이 발문을 "이전에 주자본(鑄字本·금속활자본)으로 간행한 증도가가 있었지만 전해지지 않아 각공(刻工)을 모집해 목판본으로 복각하게 했다"라고 해석해왔다.
양산=김종찬 기자
kimjc00@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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