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택 교수, ‘깨달음 지상주의’ 제1회 종교포럼서 제기

지식인들 종단 권력 비판하면서
깨달음에 대한 의심 스스로 삼가

‘깨닫지 못했는데 뭘 할 수 있겠냐’
재가자들 낮은 자존감이 가장 큰 문제

한국 불교계에서 중요시하는 ‘깨달음’이 오히려 대중 간의 원활한 소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깨달음이 소수 선택된 자들만 체험할 수 있는 영역으로 특권화 되다보니 불교인들 스스로 ‘금기의 영역’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조성택 고려대 교수는 화쟁문화아카데미가 지난 2월28일 ‘종교를 걱정하는 불교도와 그리스도인의 대화, 한국불교의 깨달음 지상주의’를 주제로 연 제1회 종교포럼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조 교수는 이날 “이 특권화 된 영역을 거론하는 것은 한국불교계에서 금기시하고 있다”며 “재가지식인이나 활동가들조차 종단의 ‘권력’과 ‘금력’에 대한 비판은 서슴지 않으면서 깨달음의 영역에 대한 의심은 스스로 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특히 이같은 폐해가 출가스님보다 재가자 사이에서 더욱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가장 큰 문제는 ‘깨닫지 못한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선방에서 수행해도 깨달을까 말까인데 세속에 사는 내가 뭘 할 수 있겠나’라고 하는 낮은 자존감이라는 것. 이는 결국 수행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고, 수행의 주체가 아니라 출가자들의 수행을 지켜보고 관전평을 하는 ‘관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이런 과정에서 깨달음은 신비한 ‘무엇’, 일상적 체험으로 가늠할 수 없는 신비의 경지로 여겨지게 됐다”며 “재가신자들은 스님의 말씀을 지상의 언어가 아니라 깨달음의 초월적 언어로 받아들이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이어 “소위 큰스님의 말씀일수록 기대감이 두드러지는데, 일상적 소통과 대화가 불가능한 지경”이라며 “‘알쏭달쏭’한 법문이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고, 못 알아듣는 것은 듣는 이의 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또 “한국불교는 불통의 상황을 적절히 신비화해 자신을 숨기는 은폐물로 활용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깨달음은 어떻게 신비화, 특권화 된 것일까. 조 교수에 따르면 특수한 심적 ‘체험’으로 환원한 서구적 관점으로부터 온 영향이다. 선불교 전통을 초문화적인 ‘체험’ 혹은 ‘순수경험’으로 서양에 소개한 스즈키 다이세츠의 해석 또한 한국 선불교에 영향을 끼쳤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불교 전통에서 깨달음은 어떤 경지에서 경험하게 되는 특수 체험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수행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것”이라며 “깨달음을 체험이라고 하거나 체험된 깨달음만이 유효하다고 한다면 불교라는 종교는 개인화, 밀실화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종교에 있어 체험은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특권화해서는 안 된다”며 “체험만이 진리를 판별하는 최고 기준이라고 하는 것은 독단적 오만이며 수행의 일상성과 사회성을 도외시하는 편견”이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조 교수의 주장에 포럼 참가자들과 이웃종교인들은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서재영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재 한국불교에 ‘깨달음 지상주의’라고 할 만큼 신행현장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스님이나 불자가 있느냐”며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불교계의 위기가 아닌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줄곧 ‘깨달은 자’만을 하나의 모델로 삼고 있는 한국불교를 지적한 것”이라며 “누구나 이런 사람의 출현만 기다리고 있고 늘 그림자처럼 작동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라고 답변했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깨달음의 ‘특권화’가 위계질서를 만들어내는 ‘장치’일 수 있다고 분석하며, “개신교 도그마(교리)도 위계질서나 권위를 만들어내고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무감각하게 한다”며 “개신교에서 ‘믿음이 뭐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신도가 다수인데, 이런 모호함이 묘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는 ‘깨달음’을 신비화하고 특권화해선 안 된다는데 동의하면서도 “깨달음의 대중화가 필요하며, 진정한 의미의 깨달음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덕목”이라고 반박했다. 오 교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사에서 깨달음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그동안 몰랐던 무지의 세계가 좁혀지고 앎이 더 깊어지는 깨달음을 위한 불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여전히 체험된 깨달음만이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깨달음은 체험을 강조하지만 이 부분이 종교의 사회성을 약화시킨다”며 “체험한 것만 중요하게 여기면 체험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체험하지 않았어도 이것을 믿음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일생일대의 확철대오 아니라
하루하루 작은 깨달음으로 봐야

우리사회 화쟁 북돋으려면
종교 표층에 머물러선 안 돼

이날 토론에 앞서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사진>는 ‘화쟁을 저해하는 종교, 화쟁을 북돋아주는 종교’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오 교수는 “깨달음이라는 것은 일생일대의 확철대오 같은 경천동지할 무엇이기보다 하루하루 작은 깨달음이라 보아야 할 것”이라며 “더 평범한 말로 하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어 자유를 누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특히 “한국 종교인 절대다수가 ‘나 중심’ 혹은 ‘우리 중심’의 표층 신앙에 머물고 있다”며 “표층 신앙 때문에 현재 종교계에 배타주의를 비롯한 여러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심층 종교는 선입견과 편견, 고정관념으로 찌든 지금의 내가 죽고 새롭게 태어날 때 필연적으로 얻어지는 눈 뜸, 더 깊은 깨달음을 중요시한다”며 “화쟁을 북돋으려면 종교가 표층에 머물지 않고 심층으로 심화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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