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현 한국표준협회장

명성황후의 시해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경복궁 내 건청전(乾淸殿)은 1887년 3월6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기등을 점등함으로써 이 땅에 비로소 문명의 빛을 밝힌 유서 깊은 곳이다. 특히 일본과 중국보다도 2년 앞서 전기를 받아들인 것이다.

현대사회에서의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산소처럼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에너지다. 전기 분야의 대표적 석학이자 기술표준 분야 전문가인 백수현 동국대 석좌교수는 37년간의 정든 교단을 떠나 한국표준협회장으로서 제2의 인생을 펼쳐 나가고 있다.

지난 12일 한국표준협회장 집무실에서 백수현 회장을 만나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삶을 엿봤다.

지난 12일 만난 백수현 한국표준협회장은 “사찰 내 전기시설 표준화 등 불교계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각 나라마다 전기콘센트의 모양은 왜 다를까요?”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자 백수현 회장이 제일 먼저 던진 질문이다. 백 회장은 오랫동안 강단에 선 석좌교수답게 국제표준을 알기 쉽게 설명해 나갔다.

전기콘센트의 모양이 나라별로 다른 것 또한 나름대로 표준이라고 강조했다. 각 나라가 전기콘센트를 선택한 뒤 관습적으로 오랫동안 써 온 것으로, 표준이 하나만 존재하는 게 아니며 강제적으로 단일화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아이폰과 갤럭시의 충전잭은 왜 다를까요?” 백 회장이 이어 던진 질문은, 스마트폰을 쓰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만한 이야기다. 이에 대해 불편을 느끼는 수많은 소비자들의 요구를 통해 시간이 흐르면 시장점유율이 높은 제품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통일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 회장은 37년 5개월 동안 재직한 동국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에서 퇴임한 뒤 2014년 9월부터 한국표준협회 회장 소임을 맡으며 교육자에서 기관장으로 변신해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한국표준협회는 기업경영 및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경영기법과 품질관리기법, 인적자원 개발, 산업표준 보급 등 다양한 지식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또한 국민이 필요로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는데 기준이 될 수 있는 인증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특히 1998년부터 정부로부터 KS(한국산업표준)인증 심사에 대한 권한을 위탁받아 국내기업의 품질경영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세계 3대 인명사전 하나

미국인명정보기관(ABI)

‘2009년 올해의 인물’

자신의 법명 딴

‘농현공학상’ 제정

후배 교수들 연구기금 지원

‘모교사랑’ 남달라

백 회장은 세계적인 전기전자 분야 표준화 기구인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적합성평가위원회(CAB) 이사 소임을 맡고 있는 만큼 한국표준협회장 소임도 빠른 속도로 적응해 나가고 있다. IEC는 모든 국가의 전기, 전자제품을 규격에 맞게 표준화함으로써 전기, 전자제품에 대한 품질과 안전성을 확보하고 국제적 유통을 원활히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국제기구다.

우리나라는 지난 1962년 공업표준화법을 제정하며 뒤늦게 국가적인 표준화활동을 시작했지만 정보통신강국으로서 글로벌 표준강국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 특히 백 회장은 세계 정상의 표준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젊은 인재 양성과 표준에 대한 연구와 정책개발 활동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2013년 말 기준, 2만482종의 KS가 제정돼 있으며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등 국제표준화기구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지속적인 표준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젊은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해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 노력할 사람을 육성할 뿐만 아니라 표준에 대한 연구와 정책개발을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출신인 백 회장은 전기전력 분야의 국제적 권위자다. ‘국제 전기기기 및 시스템 학술대회(ICEMS)’의 창립을 주도하며 의장을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미국인명정보기관(ABI)의 ‘2009년 올해의 인물’로도 선정되는 등 그동안 전기전력분야에서 탁월한 연구능력을 발휘했다.

이를 통해 국내의 적지 않은 학자들이 세계 최대의 전기전자통신컴퓨터분야 전문가 단체인 ‘미국 전기전자엔지니어협회(IEEE)’ 석학회원(Fellow)으로 승급하기 위해 백 회장의 추천서를 받아갈 만큼 국내외적으로 연구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백 회장은 이같은 연구성과의 원천은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강조했다. 우주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등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창의적인 연구가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융복합시대를 맞아 공대 교수에게 부족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도 불교를 통해 끊임없이 제공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국대에 공과대학이 설립된 뒤 얼마 되지 않아 교수로 부임함으로써 별다른 지원도 없이 힘든 시기를 겪었어요. 악조건 속에서도 연구에 매진하다보니 연구성과가 하나, 둘씩 생겨나더군요. 특히 제행무상 등 다양한 불교적 가르침을 통해 창의적이며 융복합적 사고를 함으로써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성과를 내게 됐습니다.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제 인생에 큰 도움이 준 게 바로 불교이지요.”

“제행무상 등 가르침

창의적 연구 가능케 해…

융복합시대 부족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도

불교에서 끊임없이 제공받아

불자들에게

뭔가 해주기 위해

변화하겠다는 원력과

이에 맞는 시스템 갖춰야

한국불교 미래도 밝아질 것”

지난 2014년 8월 퇴임한 백 회장은 같은 달 석좌교수로 재임명돼 강의와 연구를 이어가며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특히 백 회장은 퇴임 교수 가운데 2%정도만이 임명되는 석좌교수를 퇴임 이전에 임명을 받는 영광을 차지한 것이다.

모교사랑이 남다른 백 회장은 동국대 공과대학의 후배 교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자신의 법명인 ‘농현’을 딴 ‘농현공학상’을 제정해 올해부터 해마다 연구기금을 지원한다. 4000~5000만원의 기금을 출연해 해마다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공대 교수를 선발한 뒤 해마다 개교기념일 기념식에서 상패와 상금을 전할 계획이다.

또한 백 회장은 각종 연구프로젝트마다 ‘인력양성’을 위해 장학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후학들의 안정적인 공부와 연구도 지원하고 있다. 퇴직 이후에도 연구프로젝트를 통해 최소한 2주에 1번은 동국대 연구실을 찾아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공대 발전과 후배 교수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공학상을 제정하게 됐습니다. 제 뜻에 공감하는 다른 교수님들도 후원해 주신다면 금상첨화이겠지요. 아직도 교수인 만큼 학교와 후학, 후배 교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해 나갈 것입니다.”

백 회장은 사찰에도 표준화와 경영기법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며 불교계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돕겠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의 눈높이와 욕구가 높아지는 만큼 사찰 운영과 시설의 선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백 회장은 전통사찰과 맞지 않는 사찰 내 전기시설을 지적하며 전통사찰에 걸맞게 독창적인 전기시설의 표준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용카드 사용과 영수증 발급 등 우리 사회의 눈높이에 맞춘 시스템을 사찰에서도 갖춰야 할 뿐만 아니라 미래불교를 위한 사찰경영기법도 도입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를 위해 백 회장은 불교계가 요청한다면 한국표준협회가 갖고 있는 경영기법 노하우를 전수해 줄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제가 맡고 있는 단체와 불교계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엄청 많을 것 같습니다. 일례로 저희가 갖추고 있는 경영기법을 사찰운영에 접목한다던지, 사찰 내 전기시설의 표준화를 추진하는 일을 추진할 수 있겠지요. 불자들에게 뭔가를 해주기 위해 변화하겠다는 원력과 이에 맞는 시스템을 갖춰야만 한국불교의 미래도 밝아질 것입니다.”

■ 백수현 회장은 …

1949년 5월 인천에서 태어난 백수현(법명 농현) 한국표준협회장은 인천 제물포고와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7년 3월부터 2014년 8월까지 37년5개월 동안 불교종립 동국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한 전기분야 석학이다.

정년퇴임과 함께 동국대 석좌교수로 임용됐을 뿐만 아니라 2014년 9월 한국표준협회 총회에서 임기 3년의 제23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한국표준협회가 2004년 상근 회장 체제로 바뀐 이후 비(非)관료 출신 회장은 백 회장이 처음이다.

또한 국제 전기기기 및 시스템 학술대회(ICEMS) 의장, 대한전기학회장, 대한전기협회 부회장, 외교통상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자문위원 및 전기전자산업분과 위원장, 신기술(NET) 인증 심의위원장 등을 지냈다.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적합성평가위원회(CAB) 이사,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산업기술표준위원, 대한전기학회 윤리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불교신문3084호/2015년2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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