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인 대중공사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전통 훌륭히 살려낸다면

종단 미래 원동력 될 것 ‌ 

갈 때까지만 해도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총무원장, 교구본사 주지 등 종단의 주요 소임자들에서부터 대학생 재가불자까지 함께 하는 자리인데 과연 토론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을까? 아마 많은 이들이 비슷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려는 모둠 회의를 진행하며 금세 사라졌다.

내가 속한 2모둠에는 호계원장과 총무부장을 비롯해 제주 관음사, 조계사, 진관사 주지 등 쟁쟁한 스님들이 속해 있었는데, 모두들 권위를 벗어던지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성숙한 태도로 토론에 임했다. 포스트잇 작성 등 익숙하지 않은 현대적 기법도 잘 수용해 주었다. 재가자들의 변화에 대한 큰 열망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체발표 때 보니 우리 모둠만이 아니라 다른 모둠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모두들 기뻐했다.

사실 지난 몇 년 간 결사추진본부 등에서 대중공사를 20여 차례 열었지만, 참가자 대부분은 재가자였다. 당연히 주목도 덜 받았고, 책임있는 집행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종단의 입법 사법 행정 책임자들부터 솔선하여 참여하고 있다. 제도권 밖의 참가가 조금 저조하다지만, 재가자들까지 평등하게 참여하고 있으니 한국불교 현대사에서 사부대중이 명실상부하게 참여하는 최초의 대중공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공동체 내부의 문제를 이렇게 공화적 방식으로 다루는 것은 불교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나 1962년 통합종단 출범이후 종단운영에 세간의 대의민주주의제가 도입되면서 이 전통은 급속히 쇠퇴했다. 선거로 뽑힌 기관의 장에게 권한이 집중됐고, 생활과 수행, 공동체 운영을 관통하던 공화주의는 크게 약화됐다. 세간과 비슷한 제도를 택하였기에 세간과 비슷한 문제가 생겨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 흐름을 바꿔낼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대중공사의 의미는 남다르다.

물론 상황이 녹록치만은 않다. 올해 의제만 봐도 재정투명화, 수행풍토 진작, 미래사회 사찰 역할 모색 등 어느 하나 쉬운 의제가 없다. 그렇다고 해결하지 못할 문제도 아니다. 우리가 이번 기회에 대중공사의 전통을 훌륭히 살려낸다면, 나아가 이러한 풍토가 교구, 단위사찰로 확산된다면 나는 그것이야말로 종단의 미래를 대비하는 원동력이자 사부대중 공동체의 초석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반대로 이번 기회마저 놓친다면 종단 내 불신과 좌절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것이 불러 올 갈등과 불신 혼돈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불교에서 수행자 개인은 나무에, 공동체는 숲에 종종 비유된다. 공동체라는 숲이 사라지면 나무인 수행자도 살아남을 수 없고, 나무인 수행자 개인이 성성하게 살지 못하면 종단이라는 숲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개인과 공동체를 연기적으로 성찰하고, 함께 탁마해 온 대중공의의 전통이야말로 2600년간 불교공동체가 이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여러 문제가 되풀이되면서 우리는 이제 빛바랜 전통을 되살릴 좋은 기회를 맞았다.

그것은 세상을 위해서도 좋은 소식이다. 세계는 지금 한계에 봉착한 대의민주주의의 활로를 모색하는데 한창이다. 얼마 전 삼척에서는 핵발전소유치에 대한 찬반투표가 실시됐다. 원전을 유치하려던 시장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큰 표 차로 낙선한 데 이어 주민의 의사를 직접 묻는 투표에 65% 주민이 참여해 이 가운데 85%가 핵발전소를 반대했다. 이래저래 선거로 뽑힌 기관장들이 전횡을 일삼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최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시민의회’ 결성, 직접민주주의 확대 등 새로운 민주주의 방식이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엘리트들의 권력 독과점에 맞선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곧 세계 전체로, 한국사회로 확산될 것이다. 종단의 대중공사가 성공하여 이러한 사회흐름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번 대중공사에 많은 언론매체들이 관심을 가졌고, 그 가운데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누구는 종단 수장이 하기엔 부적절한 말이었다지만, 나는 이런 뼈저린 성찰과 고백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대중공사에서 각자의 허물, 공동체의 허물을 진실되게 드러낼 수 있다면, 곰팡이가 햇볕을 만나 사라지듯이 과거는 깨끗이 씻기고, 미래를 위한 연대와 책임감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불교신문3081호/2015년2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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