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 올랐다고

등산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지점부터 새로운 길

시작되는 것과 같이

깨달음은 다른 생각의

길을 열어나가는 것

 

지은이 자명스님/ 민족사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선사들의 선문답은 어떤 내용을 담아 진리를 제시하고 있는가. 수많은 스님과 불자들이 그 답을 찾아 화두 참선을 하고 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의 저자 자명스님은 중국 선사들의 선문답 분석을 통해 깨달음이 일상의 장을 떠난 특별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선사들에게 깨달음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닌 일상의 매순간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승들이 이용한 수단은 ‘언어’였다. 언어는 질문자의 알음알이를 깨부수고, 질문자의 의도를 해체하는 무명을 지적하는 수단이었다. 책에서 스님은 깨달음이란 새로운 지식이나 체험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새롭게 아는 것임을 지적한다. 이를 통해 일상을 깨달음의 장으로 변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기의 편견을 부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갈 지혜를 길어 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스님은 간화선 수행에 대한 바른 이해가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삶의 지침을 마련해 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산의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등산이 끝나는 게 아니고 그 지점부터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것처럼 깨달음은 다른 삶, 다른 생각의 길을 열어가는 것이다.

스님은 책에서 선문답의 세계가 인간의 경험이나 범속한 언어를 뛰어넘는 신성한 언어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선문답이 언어적 관례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특정한 존재나 언어에 권위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님은 언어의 연기법적 원리를 강조하는데 이는 언어가 연기적 조건의 산물이라는 의미이다. 선사들은 언제나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데없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독단을 경계했다.

또한 간화선 수행이 일상 속에서 누구나 행할 수 있는 보편적 수행임을 강조한다. 이로써 깨달음의 내용이 기존의 자기 생각을 완전히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다만 ‘바르게’ 이해하는 것임을 말한다.

“선문답의 원리를 분석함으로써 선문답이 우리의 평범한 심리적 구조를 분석한 것 외에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을 묘사했다. 예를 들어 ‘평상심시도’라는 말은 평상심이 되자는 말이 아니라 일상적인 마음의 구조가 그대로 법이며 도라는 뜻이다. 또 ‘응무소주 이생기심’은 머물지 않는 마음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마음은 원래 다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책은 총 2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에서는 선문답의 원리를 분석함으로써 간화에 필요한 의정의 발생 기제를 분석한다. 선문답의 원리에 의거해 누구에게나 쉽게 의정(문제의식)을 만들어 주는 것이 현대적 의미의 선문답 적용이며 대중적 수행법의 기초가 된다. 선문답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의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자신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것이 곧 선문답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제2부에서는 간화선의 핵심주제들을 살핀다. 우선 화두의 ‘모름(不會)’에 대해 분석함으로써 알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은 화두를 통한 논리적 충돌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됨을 보이고자 했다. 화두를 알 수 없는 것은 수행자에게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존에 자신이 갖고 있는 관념과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하고, “개에게는 불성이 없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하는 조주선사의 화두만 보더라도 그렇다. 화두를 통해 의정이 발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충돌되는 언어를 통해 대화 상대자에게 의문을 발생시키고 그가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발생한다.

깨달음은 이런 논리적 충돌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분법적 논리 구조가 잘못됐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저자 자명스님은 “불교와 선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과학적 언어와 보편적 개념으로 모든 것을 풀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며 “다음에는 보다 세밀하게 과거와 현재, 깨달음의 추상성과 당장의 현실을 소통시킬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큰 원력을 세우고자 한다”고 밝혔다.

1979년 해인사로 출가한 스님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벽송사, 봉암사, 공림사, 성전암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1996년 서울 마하보리사를 창건했으며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대, 이화여대, 포항공대, 경희대에서 불교학생회 지도법사로 활동했다. 2011년에는 동국대에서 불교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는 <선문답을 통한 수행법연구>, <벽관에 대한 분석적 연구>, <알음알이의 분석적 연구>, <몽산간화의 문제점> 등이 있다.

[불교신문3077호/2015년1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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