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노인복지센터에 신설한 범어강좌 ‘인기’

지난 21일 오후 1시 서울노인복지센터 2층 내일행복교실에 백발이 성성한 서형석(72)씨가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인도 힌디어의 알파벳인 데바나가리(Devanagari) 교본을 꺼내 한글자씩 써내려갔다. 지난 수업에 배운 글자를 복습하는 중이다.

그림에 가까운 글자를 순서대로 획을 그으며 어렵사리 한글자를 완성한 그는 “남들 하지 않는 귀한 학문에 입문하고 싶어서 올해 산스크리트어 수업을 선택했다”며 “아직까지는 할만한데, 앞으로가 걱정”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매주 수요일 1시10분부터 70분간 진행되는 산스크리트어 강좌는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올해 처음 개설한 교육프로그램. 영어, 일본어, 중국어와 같은 외국어 강좌야 배울만 하지만 70~80대 어르신들이 과연 산스크리트어 범어강좌를 선택할까 했지만 예상외로 인기다. 10여명의 수강생들이 ‘부처님 나라’ 인도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노익장을 과시하고 나섰다.

“어르신들 오늘은 모음 ‘아’가 수반된 자음형태를 익히겠습니다. 따라해 보셔요. ‘가, 카, 가, 그하, 응아…’ 그럼 써볼까요? क ख ग घ ङ… 다시한번 제가 천천히 써볼테니 획순을 눈여겨 보시고 댁에 가셔서 큼직하게 쓰면서 자꾸 연습해 보세요.” “선생님, 마지막 맨 위 획은 대들보처럼 덮는 거네요.” “네 맞습니다. 하하하.”

산스크리트어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는 동국대서 범어 문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현덕씨다. 현재 동국대서 재학생들 대상으로 산스크리트어 강의를 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국내에 많지 않다.

그는 “처음에는 노인복지센터에서 어르신들에게 과연 범어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지만, 대학생들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이셔서 깜짝 놀랐다”며 “수강자가 나이가 많다거나 전공자가 아니라고 해서 너무 축약하거나 알기쉽게 가르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기초회화하듯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수업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날이 세 번째 수업이라 아직 ‘알파벳 단계’지만 김현덕 강사는 수업 내내 한글자 한글자 정성을 다해 발음하고 판서하면서 “처음부터 확실하게 해놓아야 나중에 문장을 잘 소화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손가락을 허공에 대고 글자를 따라가는가 하면 큼직한 노트를 펼쳐놓고 그림 그리듯이 글자연습에 여념이 없는 노인도 있다.

평생 불자로 살아왔다는 이근호(75)씨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들기 위해서는 부처님이 탄생한 인도의 언어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흥미롭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불교를 더욱 잘 이해하고 부처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고 했다.

획수를 기억하면서 입으로 발음을 연습하는 산스크리트어 학습이 어쩌면 노인 치매예방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김 강사에 물었다. “글쎄요, 의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지만 언어를 공부하는 것 자체가 어르신들 건강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산스크리트어 강좌는 일부 사찰 불교교양대학 등에서 간혹 열리기도 하지만 이 계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전공자가 직접 강의하는 사례는 드물다. 김현덕 강사는 복지관의 열악한 대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스크리트어를 전파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태세다. 누구나 산스크리트어는 너무나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는 선입견을 지우고 싶은 생각에서다.

산스크리트어가 얼마나 완벽하고 정교하고 세련된 언어인지 일반에 알리기 위해 그는 ‘범어 입문 문법책’도 구상하고 있다. 올 연말 쯤 되면 김 강사의 최고령 제자들이 산스크리트어 원전을 줄줄 읽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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