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한민고 이사장(전 국방부장관)

국회 인사청문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있다. 부동산 투기와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병역 비리, 세금탈루 등 각종 개인 비리문제들이다. 지난 2009년 9월18일 열린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당시 화제가 됐다. 주인공은 바로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청문회 때마다 단골로 터져 나오는 개인비리에 대한 질의가 단 한건도 없었기 때문이다.

군에서도 청렴성으로 유명했던 김태영 전 장관에 대해 당시 서종표 전 민주당 국회의원도 “능력과 인품이 훌륭하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간접적인 찬사마저 전달했다. 2010년 천암함 사고와 연평도 포격사건의 책임을 떠안고 장관에서 사임한 김태영 전 장관은 최초의 군자녀 기숙형 사립학교인 한민고등학교 이사장을 맡아 교육자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결혼생활 35년 동안 29번 이사를 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학이 잦으니까 나중에는 아이들도 꾀가 생겨서 또 전학 가겠지 하면서 겨울방학 숙제를 아예 하지 않더군요. 한민고등학교는 직업군인들의 빈번한 근무지 변경으로 인한 군인자녀들의 어려운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경기도 자녀들에게는 보다 나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기숙형 고등학교로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한민고등학교 홈페이지에 나온 김태영 이사장의 인사말 첫 부분이다.

김태영 이사장은 장교 임관에서부터 장관 임명 전까지 37년 동안의 군생활 중 9년은 가족과 따로 살았다. 최근 들어서는 ‘아버지의 무관심’이 자녀교육의 필수조건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김 이사장은 시대에 앞서, 자녀에 대해 무관심한 아버지 가운데 한명이었다. 자녀가 어디 학교를 다니는지, 몇 학년인지 조차 몰랐다.

여·야 없이 칭찬했던

‘청렴’ 전 국방장관

후배 군자녀 위한

기숙형 학교 설립

당연히 입학식과 졸업식에도 가지 못했다. 이는 김 이사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통계적으로도 20년 이상 군인생활을 하면 평균 17회 이상 이사를 한다. 자녀교육문제로 인해 부모와 자녀가 떨어져 두 집 살림을 하는 군인가족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김 이사장은 군인에게 가장 필요한 복지가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교육복지’라고 결론을 내렸다.

영국에서 한민고의 모델을 찾았다. 대령 시절인 1994년, 1년간 영국 왕립국방대학원으로 연수를 가게 된 김 이사장은 영국군 공동주택 내 바로 앞집에 살던 영국군 중령의 초대로 그 가정을 방문하게 됐다. 그로부터 “군자녀 기숙형 중고등학교를 정부가 운영함으로써 영국군은 자녀교육 걱정 없이 군복무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김 이사장은 부러움과 함께 군자녀 기숙형 학교 건립을 서원하게 됐다.

“영국군 공동주택 단지에는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만 있고 중고생은 타 지역의 군자녀 기숙형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더군요. 우리나라 역시 기숙형 학교가 있긴 하지만 군인 봉급으로 감당하기에는 비용부담이 컸던 만큼 영국의 기숙형 학교가 너무나 부러웠지요. 선배로서 후배들이 군복무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물려줘야겠다는 서원이 현재 한민고등학교의 첫 역사인 셈이지요.”

국방부 장관 취임 후 김 이사장은 TFT를 결성해 군자녀 기숙형 고등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본인과 자녀들의 교육만 생각하며 학교 설립과 운영을 너무 쉽게 봤던 김 이사장은 곧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과학과 국악 등 특정분야의 인력양성을 목적으로 한 ‘국립학교’와 특정 지역의 학생만을 대상으로 한 ‘공립학교’를 설립할 수 없어 결국 ‘사립학교’로 설립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또한 기획재정부가 특정 직업군을 위한 학교에 대해 재정 지원을 해줄 수 없다고 난색을 표명하자 군인복지기본법 개정을 통해 정부예산 350억원, 국방부의 군인자녀 장학기금인 호국장학기금 200억원을 투입해 학교를 설립했다.

한민고는 지난 2014년 3월3일 군인 자녀 70%, 경기도민 30% 등 412명의 학생으로 개교했다. 군인 자녀 가운데 중3학생은 해마다 5000여 명이며 이 가운데 약5%만이 한민고에 들어갈 수 있는 셈이다. 김 이사장은 자신부터 전국의 내놓으라는 학교는 다 찾아다니며 학교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축해 나갔다.

또한 홍두승 교수 등 서울대 교수 20여 명으로 이뤄진 ‘한민고 서울대 멘토단’도 한민고의 교육프로그램 구축에 발 벗고 뛰어들었다. 이들 대다수가 군인가정 출신으로서 누구보다 자녀교육문제로 힘들어하는 군인들의 고충을 알기에 흔쾌히 나선 것이다.

“‘대한민고’ 교정서

뛰어 다니며

웃는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 공자학당에서 중국 원어민교사를 파견해주는 등 재능기부도 잇따를 뿐만 아니라 후원회인 ‘군인자녀교육진흥원’을 설립했다. 2015년에도 기숙사비 포함한 연간 학비를 1200만원대로 책정할 예정이다.

한민고는 계열별 영재반 운영과 인증제, 경시대회 등을 통해 학업에 매진하는 것은 기본으로 한 뒤 애국심과 인성, 체력을 함양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1기 입학생은 경기도교육청 내신산출 200점 만점 기준으로, 군자녀 신입생은 평균 192점, 경기지역 신입생은 평균 197.5점이며 2기 입학생의 수준은 이보다 더 높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부모의 계급 차이로 인한 위화감 조성을 막기 위해 학생은 물론 교사들에게까지 교내에서 학생 부모의 계급을 알려고도 하지 말고 발설하지도 못하도록 했으며 매달 1차례 있는 면회시간에도 군복을 입고 오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매달 2박3일간의 외출만 허용되는 학생들의 종교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매주 일요일 오전마다 불교와 개신교, 가톨릭 별로 종교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불교는 고양 여래사에서 지원하고 있다.

“저도 공직에 있었지만 학교를 건립해 운영하다보니 각종 규정과 제도로 인해 제 생각처럼 쉽게 되는 게 별로 없더군요. 하지만 제 개인의 안위를 위한 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일인 만큼 깡통 차고 구걸하듯이 후원을 부탁하며 다닐 뿐만 아니라 관계기관과도 협의해 나가면서 하나, 둘 문제를 풀어 나간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몇 년 후에는 경북 영천지역에 제2의 한민고도 설립할 계획입니다.”

매주 2, 3차례씩 한민고를 찾고 있는 김 이사장은 최근에는 방학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신규 교원 채용문제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 이사장의 부인은 “자기 자식은 신경도 안 쓰더니, 봉급도 없는 학교 이사장을 맡아 남의 자식 교육에는 왜 그리도 열성이냐”며 종종 남편에게 핀잔을 주기도 한다.

또한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김 이사장의 아들도 “아버지가 장군(준장)인데도 훈련소에서는 10원조차 쓸 수 없다는 잘못된 정보를 줘서 아들이 거지처럼 훈련소 동기들한테 과자와 음료수를 얻어먹기만 했다”며 자녀에게 무관심했던 아버지에게 서운함을 비추기도 했다.

“자녀교육에 너무 무관심했던 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했으니깐 청문회 때도 조용히 넘어갔겠지요(웃음). 그때 아들, 딸에게 못했던 것이 미안해 후배 군인가족들을 위해 나이 먹고 이제야 일하는 겁니다. 뛰어 다니며 웃는 아이들이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를 가졌던 김 이사장은 독실한 불자인 장모를 사찰로 모시다가 불교에 귀의했다. 스스로 ‘무늬만 불자’라고 밝히지만 국군불교총신도회장을 두 차례 역임했으며 2008년 부처님오신날 법요식 때는 불자대상도 수상할 만큼 불교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집 인근의 용인 법륜사를 주로 다닌다는 김 이사장은 안보강연을 10년 동안 하겠다고 주지 현암스님과 약속한 뒤 이미 3년 연속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군불총 회장 소임을 두 차례 역임하고 불자대상도 수상했지만 아직도 불교에 대해 제대로 몰라 부끄러울 뿐입니다. 한민고가 어느 정도 궤도에 진입하고 한가해지면 불교공부를 할 생각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불교계도 신세대 군장병에게 맞는 포교프로그램을 펼쳐 군불교가 더욱 발전하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군포교, 청년포교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지난 7일 파주 한민고 교정에서 만난 김태영 이사장은 교육자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 김태영 이사장은 …

1949년 1월 서울에서 태어난 김태영 한민고 이사장은 경기고와 육군사관학교, 서강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육사 29기로 입학해 생도 1명에게 주어지는 독일 육사로 유학을 다녀왔다.

서울대 ROTC 학군단장과 육사 독일어 교수, 육군 23사단장, 수도방위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제1야전군사령관, 합참의장 등을 거쳐 국방부 장관에 이르기 까지 40년 넘게 군인의 길을 걸으며 문무를 겸비한 외유내강형 장수로 평가받았다.

국방부 장관 청문회 당시 여·야 가리지 않고 장관 임명에 동의할 만큼 철저한 청렴성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관 퇴임 후 2011년부터 최초의 군인자녀 기숙형 사립학교인 한민고등학교(한민학원)의 무보수 이사장 소임을 맡아 교육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제5대, 7대 국군불교총신도회장을 역임하며 군불교 발전에 이바지했으며 불교포럼 공동대표와 조계종 중앙신도회 고문을 맡고 있다. 지난 2008년 불자대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보국훈장 천수장과 보국훈장 통일장, 대통령 표창 등도 수상했다.

[불교신문3076호/2015년1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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