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조혈모세포 기증 김성미ㆍ김성지 씨 자매
“우리 아픔은 잠시…수혜자가 부디 잘 적응하길”

“야야, 나 로또 맞았데이!” 작년 10월, 재활병원서 정신보건전문요원으로 일하는 언니는 격앙된 목소리로 동생에게 ‘로또’를 외쳤다.

언니가 말한 로또란 지난 2008년 조혈모세포 기증자로 등록한지 꼬박 6년만에 자신의 유전자 조직, 조직적합성항원(HLA)과 딱 맞는 사람을 만났다는 뜻이다. HLA이 일치할 확률은 부모자식간 5%, 형제자매간 25% 정도, 타인의 경우 2만분의 1에 불과하다.

생판 모르는 타인의 꺼져가는 생명을 위해 나흘간 주사를 맞고 백혈구 수치를 높인 뒤, 300cc에 달하는 피를 채취하는 ‘조혈모세포 기증’을 ‘로또’라고 말하는 이 여자.

두 아들에게 멋진 부모가 돼주고 싶다는 생각에 아직 엄마손이 절실한 여덟살 다섯살배기 아이들을 남편과 여동생에게 맡기고 기꺼이 기증자를 자처한 서른여덟 젊은 엄마를 만나기 위해 지난 2일 안동 복주병원을 찾아갔다. 12월30일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고 겨우 3일만이다.

‘피를 만드는 엄마세포’(조혈모세포)를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떼어주고 나서, 더욱 행복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성미(왼쪽)씨와 성지씨 자매. 이들의 생명나눔이 바로 무주상보시다.

마른 체형이지만 청바지 청남방에 흰 가운을 걸친 김성미(38)씨는 여고생처럼 생기발랄했다. 두 팔을 치켜세우면서 “이봐요, 멀쩡합니다요!”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심지어 그 복장으로 운전대를 잡고 안동터미널까지 기자를 마중나온 그녀다.

2003년 간호원으로 의료계에 몸담고 정신보건계통에서 꾸준히 자리를 굳혀오다 최근 국가에서 인증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이 됐다. 정신분열, 우울증, 알콜성정신장애, 치매 등을 앓고 있는 환우들에게 다양한 집단교육 프로그램을 지도하고 있다. 업무량이 만만치 않은데다 환자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도 엄청나다. 크게 웃으며 그녀가 말하길, “한번씩 욱하지만 순간 날려버리는 게 습이 됐습니다. 하하하.”

“니 내가 반대해도 할꺼잖아!” 조혈모세포 적합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동의를 구해야 하기에 남편에게 먼저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아내의 성향을 너무나 잘 아는 남편은 저체력에 과로로 힘겨워하는 아내를 만류하기보다, 곁에서 지켜주고 일손을 돕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남편과 아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결단을 내렸다. “나는 조금 귀찮고 잠시 아프면 되지만, 백혈병의 병마와 씨름하는 그 누군가에게 저의 결정은 죽고 사는 문제잖아요. 어떻게 그 문제를 외면할 수 있나요?”

조혈모세포 기증을 결심한 그날부터 모세포를 채취하기까지 두달여 시간동안 김성미씨의 생활은 조금 달라졌다. 일단 친구들 가족들과 즐겼던 술자리를 끊었다. 연말까지 해야 하는 각종 보고서 작성과 업무정리, 당직일까지 미리 하는 대신 틈틈이 휴식을 취하면서 건강을 챙겼다. 조혈모세포 기증에 앞서 각종 건강검진을 통해 몸상태를 확인하지만, 그녀 나름대로 자신의 몸을 아꼈다.

“내가 아프고 피곤하면 나의 모세포를 전해받는 사람에게 염치없는 일 아닙니까? 그분에겐 생사가 걸린 문제인데다, 이왕 제가 보시하는 것인데 좋은 셀(세포) 행복한 셀을 전해주고 싶은 건 당연한 이치지요.”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도 “옥체보존 하시라”는 우스개 소리를 섞어가며 그녀를 응원했다.

병원일 집안일을 빈틈없이 해놓고야 비로소 대구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한 그녀는 ‘금욕(?)’과 ‘휴식’으로 보낸 시간 덕분에 남들보다 백혈구 수치가 무려 4배나 높아 ‘양질의 모세포’를 기증할 수 있게 됐다. 빈혈과 주사액으로 인해 두통이 왔고 팔다리가 뻐근했지만 생각보다 회복속도가 빨랐다.

“저의 고통은 끝이 있잖아요. 주사기운이 떨어지면 어지럼증도 사라질테고, 모세포는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완벽하게 재생하잖아요. 세상에 기약없는 병마와 씨름하면서 평생 신음하는 환자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 생각하면 저의 고통은 고통도 아니죠.”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모세포를 받은 그 누군가의 건강을 더 걱정했다.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다 해도 편대숙주병에 시달리다 재발하게 되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혈액모세포를 이식받아 평생 약에 의존해서 노심초사하며 살아야 하는 삶이란 얼마나 고단할까.

김성미씨는 채취한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그날 즉시 이송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내 수혜자의 편안한 이식만을 기도했다. 그 이상 바라는 바 없었다. 두 아이를 낳았지만 자식을 낳을 때와 또다른 간절함이다.

‘로또’를 맞은 김성미씨에게 로또용지를 사다준 이는 다름아닌 여동생 성지(36)씨다. 6년 전 생명나눔실천본부에서 상담팀장으로 일했던 성지씨는 당시 조혈모세포기증 관련 업무를 맡았고 캠페인 차원에서 가장 ‘만만한’ 언니와 형부의 기증서약을 받아냈다.

실력파 간호사인 언니를 믿고 ‘형부의 혈액까지 직접 채취해서 제출하라’는 명령을 내린 동생이다. 동생 역시 2011년 4월 골수채취를 통한 조혈모세포 기증으로 재생불량성빈혈을 앓고 있는 10살 남자 어린이를 살려냈다.

평상시에도 허리가 아프고 알레르기성 천식이 있어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800cc나 되는 혈액으로 골수를 기증한 김성지씨 역시 유쾌한 성격이 언니와 다르지 않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미혼여성이 결단을 내리기란 결코 쉽지 않았겠지만, 부분마취를 한 시술중에도 18번 애창곡을 흥얼거리면서 두려움을 극복한 그녀다. 언니 김성미씨의 마지막 한마디 역시 큰웃음을 전해줬다.

“조혈모세포 기증? 그거 별꺼 아닙니더! 아픈 사람 위해서 내 것 미리 땡겨주는 것, 그뿐입니다.”

[불교신문3072호/2015년1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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