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잇따른 천주교 성지화 사업을 바라보며

역사와 문화, 종교 관련 정책 시 신중해야…국유지 성지화는 종교간 갈등 조장

오늘날 세계를 테러와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는 원인의 하나가 예루살렘이다.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637년 이후 이 지역에서 살아온 팔레스타인 국민을 강제로 내몰면서 시작된 비극이다. 개신교도는 구약성경에 명시된 이 땅의 역사성을 주장하지만, 1400년 넘게 그 땅에서 살아온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역사와 문화가 왜 그곳에 없겠는가.

세계대전 당시 유럽 국가들이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준 이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난민 생활은 이어지고 있으며, 중동 이슬람 국가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국가에서 정책을 시행하는데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특히 역사와 문화, 종교 관련한 정책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함이 필요하다. 한 부분만 강조할 경우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집단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정부에서 513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서울 서소문 일대에서 천주교 성지사업을 펼친다고 한다. 또 서산 해미읍성 일대를 성지로 만들기 위한 대대적인 사업이 추진 중에 있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안 된다. 또 양식있는 천주교도라면 이를 적극 만류해야 옳다. 천주교에서 서소문 성지화를 주장하는 근거로 황사영을 비롯해 44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곳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런데 되짚어 생각할 부분이 있다.

황사영은 천주교 탄압이 일어나자 프랑스에 함대를 파견해 달라는 비밀 편지를 보내려다 발각돼 처형된 자다. 당시 채 1%도 안되는 천주교도의 입장이 아닌, 99%가 넘는 비 천주교도의 입장에서 볼 때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우리나라 백성을 공격하라”는 반민족적인 시도를 한 것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것이 아닌데, 양식 있는 가톨릭인이라면 그를 성인으로 추앙하는 문제에 침묵하는 것이 옳은가.

제천 정방사 주지 상인스님은 천주교의 서소문 성지사업과 관련 “다종교를 인정하는 우리나라에서 국유지에 특정종교 성지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일반 국민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은 서울 서소문공원 내 순교자 현양탑. 불교신문 자료사진

다종교를 인정하는 우리나라에서 그를 성인으로 인정하고,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국유지에 특정종교 성지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일반 국민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종교간 갈등을 조장하고, 민족 정서에 반하는 행위다.

서소문은 조선시대 죄인의 사형장이었다. 성삼문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마감했다. 1811년 민중봉기를 일으켰던 홍경래가 이곳에서 참수당했고, 민족 자각 운동이었던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한 전봉준과 천도교 2대 교주 최시형 등 많은 선조들이 처형당한 곳이 서소문이다.

1907년 일제의 군대해산에 맞서 대한제국 군인들이 봉기를 일으키고 의병으로 활동을 시작한 곳도 서소문이다. 서소문에서 대대장 박승호가 자결을 하면서 시작된 군인들의 봉기는 의병 활동으로 이어졌고, 독립무장투쟁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서소문을 역사적으로 기념하려고 하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던진 이들을 먼저 선양해야 한다. 하지만 서소문에 그런 흔적은 없다. 천주교 순교자 현양탑만 위치해 있다. 이에 더해 국가 예산으로 성당을 짓고 천주교 성지를 만든다는 것은 민족정신과 역사에 대한 부정행위다.

또한 황사영이 숨어살았던 충북 제천 배론지역을 천주교에서 이미 성지로 조성해 놨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성한 성지가 이미 있음에도 또 다시 그를 기리고자 성지를 조성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종교간 평화와 교류는 바른 종교적 가치를 가진 집단간에 이뤄지는 것이지, 비상식적이고 독선적인 집단과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기성종교라 하더라도 잘못된 집단 이익을 추구한다면 이는 비판받고, 수정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회정의다.

불교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 등 기성종교에서 이 문제를 침묵해서는 안된다. 천주교의 눈치를 본 침묵은 민족과 역사에 죄를 짓는 행위다. 천주교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불교신문3068호/2014년12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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