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대불련 출신 진모영 감독

얼어버린 연말을 뜨겁게 달구는 영화 한 편이 있다. 다큐멘터리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그것이다.

독립영화라는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어 12월14일 현재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독립영화 관객 100만명은 상업영화 1000만명과 맞먹는다는 것이 영화계의 전언이라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같은 대단한 영화를 만든 이가 바로 불자라는 것이다. 진모영(44)감독은 대학시절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에 몸담아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불자다. 

진모영 감독은 영화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사회적 담론으로 끌어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아내면서 흥행으로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감독으로서 촬영에는 능숙하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진 감독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불자”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는 “독실하지는 않지만 분명 불자”라며 “이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전남대 재학시절 대불련과 인연을 맺은 진 감독은 대불련 광주지부장으로 활동했고 이곳에서 현재의 부인을 만나 인생의 도반이 됐다.

그는 이번 영화가 불교적 세계관이 내재돼 있음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진 감독은 “이 영화는 불자 감독이 만든 불교영화는 아니다”라면서도 “영화를 관통하는 죽음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대학시절 공부한 부처님 가르침과 시골에서 자란 ‘촌놈’ 기질 등이 결합해 영화 곳곳에 은연중에 묻어났다고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인터뷰 / 영화 ‘님아…’의 진모영 감독

“위대하고 진정한 사랑은 습관입니다”

다큐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영화다. 지난 11월27일 개봉한 ‘님아…’는 불과 18일 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영화를 거는 스크린 수도 개봉 첫 날 186개에 불과했지만 현재 806개로 4배 이상 가파르게 증가했다.

‘배트맨’ 시리즈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엑소더스’ 등 쟁쟁한 영화들을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을 독립영화가 해냈다는 것에 한국영화계는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영화 ‘님아…’는 15일 현재 누적관객수 120만명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독립영화로 보면 2위에 해당하는 스코어다. 지난 2008년 293만명의 관객이 들면서 돌풍을 일으킨 ‘워낭소리’만이 유일한 비교대상이다.

44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2위를 기록하고 있던 ‘울지마, 톤즈’는 지난 12일 이미 넘어섰다. ‘님아…’의 관객 100만명 돌파는 ‘워낭소리’보다 19일이나 빠른 기록이어서 독립영화 최고 흥행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포스터.

독립영화이자 극영화가 아닌 다큐영화로서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질 것이 당연해 보이는 ‘님아…’가 한국영화의 중심에 선 이유는 무엇일까. 12월11일 서울 서교동 모 카페에서 진모영 감독을 만나 들어봤다.

언론에서는 ‘님아…’의 흥행코드를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다. 초반에는 비구니 스님의 이야기를 다뤄 관심을 모았던 이창재 감독의 신작 ‘목숨’과 비교하면서 ‘죽음’이라는 공통분모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이같은 기사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영화 ‘죽음’은 사라지고 ‘님아…’만이 중심축으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죽음으로 향했던 포커스는 ‘향수’와 ‘추억’ 등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전체 관객의 50% 이상이 20대라는 사실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진모영 감독은 ‘사랑’에 방점을 찍었다. 이 영화의 키워드는 부부 혹은 연인의 사랑이다. 사랑이 거래되는 세상, 돈이 있어야 사랑도 성사되는 사회라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지고지순한 사랑에 목마른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이 아닐까.

90대 백발 노부부의 알콩달콩한 사랑은 ‘위대한 사랑’이다. 하지만 위대한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고 그리고 오래 지속돼야 한다는 것이 진 감독의 사랑론이다.

“벗어놓은 신발을 바르게 돌려놓고, 머리에 핀을 꽂아주고, 서로 고맙다고 말하고, 강아지를 예뻐하는, 작은 것들을 평생을 통해 끝까지 하는 것이 위대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습관일 수 있다.”

영화 속 90대 백발 노부부의 사랑은 70년 세월을 무색케 한다.

감독은 예를 들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천 송이 꽃으로 프러포즈를 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한 송이 꽃을 1000일 동안 연인에게 바치는 것은 더욱 위대하다는 것이다.

“서로 배려하고 챙기는 작은 행동을 습관처럼 하는 것. 좋은 습관을 오래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부분이자 100만이 넘는 관객들이 찾은 이유다.

진 감독에게 영화는 첫 경험이다. 1997년부터 독립프로덕션 PD로서 방송활동을 해온 그는 2013년 독립다큐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 프로듀서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영화 첫 작품부터 대박을 터뜨렸으니 흥행코드를 잘 알고 있지 않을까. 흥행할 수 있다는 상상은 했다는 것이 답변이다.

“이번 영화는 관객과 접점이 맞아 흥행까지 갔지만 원래 만듦새가 흥행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워낭소리’가 이미 증명하지 않았나. 그렇다고 거기까지(293만명) 갈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뚜렷한 목표의식을 밝혔다. 독립영화도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진 감독은 ‘최고, 최다, 최초, 최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는 목표가 있다. 내가 최고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독립영화도 재밌고 흥행이 되므로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해보이겠다는 사자후다. 그래서 “앞으로도 독립영화만 하겠다”고 말한다. “다른 것은 할 생각이 없다. 극영화는 잘 만들지도 못한다. 실제와 진실한 이야기가 갖는 힘이 분명 있다.”

진 감독은 ‘불자’ 감독으로서 ‘불교영화’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판타지 소설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 예를 들어 청도 운문사의 거대한 공양간을 배경으로 도력 높은 공양주 보살과 이제 갓 출가한 사미니가 벌이는 좌충우돌 이야기다. ‘버디 무비’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대불련 출신이라는 인연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전남 해남이 고향인 관계로 미황사는 그에게 원찰과 같은 곳이다. 그곳을 일군 금강스님과의 인연도 진중하다. 영화 개봉 전 VIP시사회에 스님을 초청했다. 금강스님은 영화를 본 후 한 마디를 남겼다. “법문 잘 듣고 간다”고.

대불련 시절 지도법사로 가르침을 배웠던 지선스님(고불총림 방장)은 그의 은사와 같은 존재다. ‘지안(智眼)’이라는 법명은 서울 법련사 주지 보경스님(조계종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에게 받은 것이다.

진 감독은 이미 차기작 촬영을 마쳤다. 후반작업이 한창이다. 그는 “탈북한 잠수부 이야기”라고 귀띔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의 소중함을 영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진모영 감독.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부처님 가르침을 어떻게 영화에서 녹여낼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진모영 감독은 영화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사회적 담론으로 끌어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아내면서 흥행으로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감독으로서 촬영에는 능숙하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 아래는 영화 ‘님아…’의 포스터.

■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76년 함께 살아온 노부부의

진정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

“우리는 76년째 연인입니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98세 로맨티스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소녀감성 강계열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어디를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는다. 봄에는 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고, 여름에는 개울가에서 물장구 치고, 가을에는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하는, 매일이 신혼 같은 백발의 노부부다.

장성한 자녀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던 강아지 ‘꼬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꼬마를 묻고 집으로 돌아온 후, 할아버지의 기력을 점점 약해져만 간다.

비가 내리는 마당, 점점 더 잦아지는 할아버지의 기침소리를 듣던 할머니는 친구를 잃고 홀로 남은 강아지를 바라보며 머지않아 다가올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한다.

90대 노부부의 장난에 미소 짓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손 맞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에 가슴 따뜻함을 느끼는 영화는 이별과 죽음 앞에 놓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에 한숨을 쉬면서 눈시울을 적신다.

사랑을 쉽게 저버리고 죽음을 장난처럼 다루는 일부 ‘막장’ 드라마에 비판을 하면서도 TV 앞을 떠날 줄 몰랐던 우리들에게 이 영화는 사랑과 죽음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진지하지 않게 그러나 가볍지 않게.

‘다큐멘터리 영화는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웃음과 감동을 함께 전해주는 영화는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독립영화의 한계를 깨고 스크린 수를 대폭 늘리기에 이르렀다.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옛 추억과 같은 장면이 느리게 전개되지만 20대 관객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모든 것이 빠르고 바쁘게 진행되는 삭막한 현대문명에 대한 ‘저항’이자 따뜻한 감성에 대한 ‘갈증’으로 여겨진다.

연말을 맞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대작 영화들의 개봉이 즐비하지만, 여전히 롱런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