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 말고 ‘회향’하는 법 가르쳐야

불교에서는 흔히 ‘회향(廻向)한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회향’은 스스로 선행이나 수행으로 쌓은 공덕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 자타(自他)가 함께 불도를 성취한다는 의미다. 이는 일체의 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 깨달음을 이루게 한다는 이타(利他) 없이는 자신도 깨달음을 이루는 자리(自利)가 없다는 사상, 즉 이타가 곧 자리라는 대승불교의 근본정신에 기인한다. 불교에서는 나의 이익을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행이 결국 자신에게 더 크게 돌아온다고 믿는다.

물질만능주의로 멍든 지금의 사회에서 불교가 현대적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돈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생각하는 이 시대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쉽게 망각한다.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한 사회가 마치 당연한 듯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재가치는 물질적 잣대로 양극화 되고 계층별로 구분된다. 적자논리,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란 결국 내 손해와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은 이같은 전근대적 사고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5일 뉴욕(JFK)공항에서 기내서비스를 문제 삼아 인천행 항공기를 ‘램프리턴’시켜 ‘월권’ 행사 논란을 일으켰다. ‘램프리턴’은 비행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는 일로 항공기 정비나 승객의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하는 조치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은 여 승무원이 땅콩을 봉지 째 제공하자 안전 문제와 직결된 사안이 아님에도 항공기를 회항시키고 해당 규정을 숙지하지 못한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 이 때문에 비행기 출발이 16분 늦어졌고 도착도 11분 지체됐다. 항공사무장은 뉴욕공항에서 홀로 12시간을 기다린 뒤 귀국했다.

사건 3일 뒤 조 전 부사장이 250여명을 태운 항공기를 다시 출발한 사유가 ‘땅콩봉지’ 때문이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대한항공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사측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조 전 부사장이 임원직 사퇴를 표명했지만 비난은 더욱 거셌다. 참여연대가 조 전 부사장을 항공법과 항공보안법 위반으로 검찰 고발하며 국토교통부가 수사에 착수했고 급기야 대한항공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실시했다. 지난 12일에는 조 전 부사장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는 사무장의 증언과 탑승자의 목격담까지 이어지면서 여론은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아버지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까지 나서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들의 재벌가에 대한 불신과 공분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재벌 3세의 안하무인격 태도는 개인행위에 대한 질타를 넘어서 법적공방과 국토교통부의 공정성 문제, 폭언과 폭력의 개입 여부, 사건 조사과정에서 직원개인의 SNS 검열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외신들은 앞다퉈 ‘땅콩 리턴’을 화제거리로 보도했다. 지난 8일 영국 BBC방송은 “땅콩으로 인한 분노로 한국 항공기가 지연됐다”는 제목으로 관련 내용을 전했다. 다음 날 미국 뉴욕타임스는 조 전 부사장의 사진을 홈페이지 메인에 띄우고 “한국 사람들은 대한항공에 대해 ‘땅콩항공’이라 부르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국내 굴지의 항공사가 해외 언론의 풍자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국내 언론과 인터넷 네티즌들도 조 전 부사장을 겨냥해 “현대판 공주의 도 넘은 갑질” “땅콩 매뉴얼이 항공법에 앞서나” “우리나라 재벌이 이정도 수준밖에 안되다니. 아니 대체 땅콩 하나에...” 등의 날선 비난을 퍼부었다. 한 인터넷 쇼핑몰은 “긴 말은 않겠다. 그 땅콩(사실은 마카다미아넛)”라는 문구를 띄워 상품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는 우스우면서도 씁쓸한 상황도 연출됐다.

일각에서는 재벌3세에 대한 오너리스크까지 거론됐다.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국회의원은 “이번 횡포는 이 비행기는 내 것이며 모든 직원이 내 소유물이라고 착각하는 전근대적 천민주의 사고방식이 불러온 제왕적 경영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마치 제 것처럼 부리는 재벌2,3세들의 횡포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2007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아들 김동원 씨가 단란주점 종업원들에게 폭행을 당하자 종업원들을 청계산으로 끌고 가 보복 폭행했다. 2010년에는 SK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 최철원 전 M&M대표가 SK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유모씨를 한 대당 100만원씩 계산해 현금 2000만원을 건네주고 야구방망이로 ‘맷값’ 폭행해 물의를 빚었다.

재벌과 그 후손들의 이른바 ‘갑질’ 행사의 저변에는 특권의식이 자리한다. 태생부터 ‘남과 다르다’는 몰지각한 우월주의는 돈과 권력이면 사람의 인격까지 짓밟을 수 있다고 인식하게 만든다. 이런 인식은 결국 기업 오너와 그 일가가 기업과 직원들을 마치 자신들의 사유물로 생각하고 몰상식한 행태를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자행하게끔 만든다.

부처님은 타고난 종족, 신분, 가진 재산이나 지식과 능력으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불교의 가르침은 누군가가 어떤 신분을 타고 났고 과거에 무엇을 했기보다 현재 그 사람이 어떤 사고를 하는가를 가장 중시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니디가 부처님의 제자가 된 사연은 불교의 인본주의 사상을 잘 보여준다.

사왓티 거리에서 변소를 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던 니디라는 사람이 있었다. 더벅머리에 낡고 해진 옷을 걸치고 온몸에서 악취를 풍기는 그를 사람들은 손이 닿는 것조차 싫어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아난다와 함께 걸식하고 있을 때였다. 다가오는 부처님을 뒤늦게 발견한 니디는 발을 헛디뎌 똥통을 박살내고 만다. 부처님과 아난다의 가사에 오물이 묻었지만 부처님께서는 어쩔 줄 몰라하는 니디를 강가로 데려가 손수 씻긴다. 니디는 그 뒤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제자가 된다. 변소나 치던 니디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자 비난을 퍼붓는 사왓티 사람들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다.

“누린내 나는 아주까리를 마찰시켜 불을 피우듯, 더러운 진흙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종족과 신분과 직업으로 비구의 값어치를 정할 수 없습니다. 오직 지혜와 덕행만이 비구의 값어치를 정할 수 있습니다. 신분이 낮고 천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행위가 훌륭하다면, 여러분, 그 사람들을 공경하십시오”

부처님의 인본주의적 평등사상은 결국 대승불교의 자리이타정신에 근거한다. 타인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이 곧 자신의 이익이 된다는 것, 자기를 위하는 것과 타인을 위하는 것은 곧 동일한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리이타 정신으로 타인에게 자비를 베풀 때 ‘참나’는 비로소 견성성불하게 된다.

이러한 평등사상은 불교의 핵심 진리인 연기법과도 이어진다. 연기법에 의하면 선한 행위는 곧 선한 인연을 불러온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들이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않는 행위는 결코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없다.

선한 행위를 한 사람이 실패하고 악한 행위를 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는 공정치 못한 사회다. 올바른 일을 한 사람이 이익을 누리는 사회가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는 공정사회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타인을 밟고 올라서야하는 냉정한 현대사회에서 ‘회향’이라는 불교 용어를 단순한 불교적 의식과 성취를 가리키는 말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관으로, 대안책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부처님은 <섭대승론>에서 “보살이 육바라밀로부터 생하여진 공덕선근을 모든 중생에게 베풀어주었다면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회향하여 그들로 하여금 사랑할 수 있고 소중한 과보를 얻게 한다”라고 설했다. 보살이 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돌리면 중생은 그 이상의 이익을 얻게 된다. 보살은 이러한 행위를 통해 견성하고 성불할 수 있게 됨으로써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대 이익을 거둘 수 있다.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불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법은 정의가 아니라 이익임을 말한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불교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길이 곧 선(禪)과 통한다고 말한다. 그 이익은 배타적 이익, 이기적 이익이 아닌 자리이타적 이익이다. 나만을 이익을 위해 타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할 때, 그것이 곧 기쁨이요, 모두의 이익이다”라고 강조했다.

조양호 회장은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에 사죄드린다고 재차 사과했다. 자식교육을 잘못시켰다고도 답했다. 일찍이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회향’이라는 불교적 가르침을 알려주었다면 조 전 부사장도 비행기를 ‘회항’시키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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