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사진으로 되살아난 구한말 불교

 

서양인이 본 구한말 조선불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양상현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조계종 성보위원)는 지난 11일 불교와 당시 사회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희귀사진들을 본지에 공개했다. 1890년부터 1910년 사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자료는 19세기말 한국과 일본 연구에 몰두한 미국의 동양학자이자 목사인 윌리엄 그리피스(1843~1928)가 수집한 것으로, 현재 미국 럿거스대 도서관에 소장된 한국관련 자료에서 양 교수가 발견한 것이다.

구한말 골목길에서 바라본 서울 원각사지 10층 석탑. 1890년부터 1910년 사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자료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사진이다. 초가집 지붕의 마을 모습을 통해 당시 사회상도 엿볼 수 있다. ▶관련기사 6면 사진제공=양상현 순천향대 교수

여러 사진들 가운데 원각사지 10층 석탑<1면 사진 참조>과 함께 김제 금산사 미륵전 사진은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모악산을 배경으로 찍은 미륵전은 당시에도 규모가 웅대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지금과 현저히 다르다. 특히 미륵전 좌우에 전각들이 보이는데, 현재는 소실되고 남아있지 않다. 양 교수는 “근대 불교가람 연구에 귀중하게 사용될 자료”라며 “비교 검토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어 어떤 기능을 하는 전각이었는지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지만, 사적기록과의 대조작업 등을 통해 추후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륵전은 독특한 형식으로 유명하다. 밖에서 보면 3층, 내부는 단층인 구조인데 이런 형식의 목조건물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미륵전은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조선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지은 뒤 1988년 해체 보수공사를 거쳐 1993년 완공했다.

원각사비를 놀이터삼아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도 이채롭다. 귀부(거북 모양의 받침대) 꼬리 부분이 보이는 것으로 미뤄 비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며, 거북 머리 부분은 기와 대문 안쪽에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비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석난간은 부서진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조선 성종2년(1471년)에 건립된 이 비는 대리석으로 만든 몸돌과 지붕돌은 단일석으로 돼 있으며 거북받침은 화강암을 다듬어 만들었다. 원각사비는 원각사의 창건 내력이 새겨져 있으며, 현재 원각사탑과 함께 탑골공원에 있다.

비구니 스님으로 추정되는 사진도 발견됐다. 사진 속 스님은 독특한 모양의 삿갓을 쓰고 아래위로 흰색 저고리와 바지차림에 짚신을 신고 있다. 가사 장삼을 입고 있는 현재 스님들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당시 스님들 의복이 통일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 교수에 따르면 1910년 11월 내셔널지오그래픽지에 실린 1910년대 스님 사진과 흡사한 부분이 많아 불교 수행자일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윌리엄 그리피스는 일본 도쿄대에 재직하면서 일본과 한국연구에 몰두했던 학자다.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관련 자료를 수집했으며 이후 자료들을 럿거스대에 기증했다. 양 교수는 2008년 ‘그리피스 컬렉션’에서 한국관련 사진 592장을 발견해 복사했고 오랜 고증작업을 거쳐 이 가운데 358장이 기존에 보지 못했던 사진들임을 밝혀냈다. 이번에 본지에 공개한 사진들은 이 자료에 포함된 것으로, 미공개 자료로 파악된 것들이라고 양 교수는 밝혔다. 양 교수는 “그리피스는 일본 시각에서 한국을 인식했다는 점에서 비판 받았지만, 방대하게 자료를 수집한 그의 노력은 재조명돼야 할 것”이라며 “근대시기 불교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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