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승가대학장 원철스님이 전하는 ‘쉼과 중도의 일상’

깊은 산골 고즈넉한 산사에서 경전 외고 선어록 공부하면서 후학양성에 매진했던 ‘산골승’ 원철스님은 2000년대 초부터 7~8년간 ‘수도승’(首都僧. 서울에 사는 승려)으로 살았다. 스님은 “교단 일을 거든답시고 종로 한복판 원룸에서 강산이 변할만큼 살았다”며 출가를 통해 은둔적 삶의 방식을 선택했지만 당시야말로 ‘노출의 극치’라고 표현했다. 

2011년 늦은가을날 핑계거리를 만들어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다시 산으로 돌아와 산승이 된 스님. 서울살이의 묵은 둥지를 털고 ‘세속을 여읜다(俗離)’는 이름을 따라 속리산으로 들어갔다. 산행과 포행을 살림살이로 삼아 한동안 속리산인이 됐다.

“산다는 것은 결국 드러냄과 감춤의 반복”이라는 원철스님. 강산이 한번 변할 만큼 서울살이 ‘수도승’으로 살았던 스님이 다시 산으로 돌아가 산승이 되었다. 산중에 있을 때 스님은 훨씬 아름답다. 사진제공=불광출판사

“새벽예불 후 앉은뱅이책상을 마주하고서 양반다리를 한 채 몸을 좌우로 흔들며 경을 소리내어 읽으니 새삼 도학자의 환희심이 밀려온다.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오감으로 맞이하는게 얼마 만인가.”

은둔객을 자처한 스님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머물고 있는 곳을 물어도 내 입으로 대답하지 않는 것과 모르는 번호의 휴대전화를 받지 않는 정도에 불과했다”면서도 “그것만으로도 세상과의 인위적 단절에서 오는 여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책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는 원철스님이 다시 산사로 돌아간 뒤 처음 펴낸 산문집이다.

책에는 스님의 일상과 수행, 공부, 여행, 단상을 담았다. 누구나의 일상처럼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힐링과 충고에 지친 요즘 우리들에게 맑은 차한잔 같은 ‘쉼’, 그리고 반짝이는 ‘깨우침’을 함께 전한다. 원철스님은 ‘노마드(homo-nomad) 스님’이다.

정확하고 간결한 글로

법정스님 잇는 문장가

해인승가대학장 원철스님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수행자라는 것, 그리고 생각의 이동과 변화에 막힘없이 자유롭다는 뜻이다. 그 자유로움은 지금, 이곳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에 기본한다. 늘 지금을 바로 보고 성실하자는 뜻을 ‘집’이라고 표현한다면, 언제 어느때라도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집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는 책제목과 연관된다. “남미나 아프리카 하다못해 가까운 중국여행을 가더라도 ‘언제 가나’하는 심정에 목적지가 멀게만 느껴지지만,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거리상으로 같지만 체감적으로 상당히 가깝게 느껴지는 법이다. 내가 있었던 자리였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집은 자기의 본래자리다. 세상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내가 나를 인식한다면 내 자리로 돌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내 자리를 인식하고, 나의 본래면목을 알아차리면서 살고 싶은데 방법이 있는가. 스님은 “제대로 잘 쉬어보라”고 권한다. 쉬는 것을 그저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쉬고 있는 자신에 부담을 느끼면서, 쉬는 것도 아니고 쉬지 않는 것도 아닌 쉼은 의미없다.

힐링 혹은 멘토 충고 대신

‘쉼’ ‘무심’ ‘중도’ 화두로

일상서 ‘마음의 눈뜨기’

죽어도 좋고 살면 더좋고…

스님 특유 유쾌한 통찰

사금파리같은 반짝임 선뵈

“피부를 밤새 쉬게 해줘야 화장발이 잘 받는 것처럼 퇴근 후 제대로 은둔해야 이튿날 자기역량을 마음껏 노출시킬 수 있다. 도시적 일상이 노출이라면 주말을 이용한 잠깐의 템플스테이는 재충전을 위한 은둔이다. 연휴와 휴가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의 현실은 제대로 된 노출을 위해 어떤 형태로건 은둔을 위한 나름의 처방책을 가져야 할 만큼 복잡다단한 시대에 살고 있다.”

책은 ‘중도(中道)’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도시와 산속, 이동과 머묾, 떠남과 만남, 감춤과 드러남, 채움과 비움, 개화와 낙화…. 인생은 두가지 변주로 흐르지만 우리는 한가지만 보기에 불행을 자초한다.

원철스님은 “옳고 그른 것을 존재론적으로 바라보며 양변에 치우치지 않는 혜안을 가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서 자비로워지고 살아가는 여유가 있다”며 “한쪽에 치우쳐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삶이 얼마나 바쁜지 모른다”고 했다.

원철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스님의 이런 잣대는 일상에서도 숱한 이야기거리를 양산한다. 이른 봄날 잔설이 드문드문 묻어있는 봄동으로 겉절이를 해먹을 때도 봄동에 깃든 중도를 꺼낸다. 겨울을 버려야만 얻을 수 있는 봄나물 쑥 냉이와 달리 봄동은 이름에 겨울(冬)을 입혀 겨울과 봄을 포섭하는 중도의 맛을 선사한다.

“봄동 겉절이는 겨울이 지났음에도 잎은 거칠지 않고 부드러웠다. 자비심을 가득 안고 모진 추위와 더불어 살았기 때문이리라. 설한을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본 게 아니라 같이 즐긴 것이다. 만약 봄까지 살아남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겨울과 다투듯 버텼다면 그 잎은 매우 질겼을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아름다운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스님의 격려사다. “겨울준비로 김장을 했다. 자연산 배추는 별로 볼품이 없지만 어디에 내놓더라도 맛과 향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배추걷이가 끝난 휑한 빈 산밭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한 해를 마무리한다. 배추로서는 아름다운 마무리이겠지만 김치로서는 새로운 시작이다.” 배추로 끝낼 것인가, 김치로서 시작할 것인가.

[불교신문3064호/2014년12월6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