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궁극인가 과정인가

정준영 外 지음 / 운주사

기불교, 선불교, 불교학, 비교종교학, 상담심리학의 관점에서 깨달음의 의미와 정체를 집중 추적한 책이 나왔다. 밝은사람들연구소와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와심리연구원이 공동 기획한 <깨달음, 궁극인가 과정인가>다.

과연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이야말로 불교가 추구해야 하는 궁극의 지점임은 틀림없지만 그간 개념이나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깨달음이 인간 조건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이라면 마땅히 냉정한 탐구와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책은 깨달음에 대한 다각적인 탐구 결과로서 이를 추구해 가는데 좋은 지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책 출판과 동시에 두 기관은 지난 11월2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이 주제를 놓고 학술연찬회를 열어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연찬회에 참석한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은 “선불교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인류를 무지(無知)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는 혁명을 불러일으켰다”고 강조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을 해보도록 권했다.

집필자로 참여한 정준영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초기경전을 토대로 깨달음의 의미를 정리했다. 초기불교에서 깨달음은 ‘진리나 사실을 알게 되는 지혜를 성취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정 교수는 초기불교의 깨달음은 궁극에 가깝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미가 확대되면서 최종적 결과 뿐 아니라 ‘과정’도 포함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초기불교 선불교 불교학

비교종교 상담학 관점서

깨달음 정체ㆍ유형 추적

“깨달음 겨냥한 수행보다

사회 속 실현이 더 중요”

이에 대한 근거로 5세기경 인도출신의 붓다고사 스님이 쓴 주석서인 <빠빤짜수다니>를 들었다. 책은 “깨달음은 나무이고, 길(道)이며 모든 것을 아는 지혜”라고 밝혔다. 즉 후대로 가면서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 또한 ‘깨달음’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초기불교 깨달음은 열반의 상태와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면서 “이후 불교수행의 궁극적 목표인 열반 뿐 아니라 열반에 이르는 과정, 무명에서 벗어나 진리를 알게 되는 순간순간의 과정까지 깨달음의 의미로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초기에 깨달음은 수행을 통해 마침내 도달하는 것이었다면, 중국 선법에 이르러서는 모든 중생이 이미 부처라는 완성된 존재라는 주장으로까지 발전하게 됐다는 의견도 담겨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선종의 깨달음과 그 유형을 심층 해부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깨달음은 ‘끝없는 자기개발’이다. 깨달음을 얻고도 결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전진하는 것이 깨달음의 본래 모습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이미 자신에게 깨달음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어록에서는 깨달음을 터득하기 위한 수행법보다 터득된 깨달음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점에 주안점을 뒀다. 또 오늘날 우리 곁에서 주장되는 자기혁명이나 정치개혁, 사상개혁 하는 것은 깨달음의 다른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밖에서 구해지는 것도 아니고 안으로 이상화되는 것도 아니다. 일상생활 가운데서 활발하게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다.

깨달음은 불교가 지향하는 궁극의 지점임이 분명하다. 사진은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들 모습. 불교신문자료사진

그렇다면 깨달음은 일상에서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가. 바로 자비와 보살행의 실천이다. 김 교수는 “깨달음은 어디에나 열려있고 완성돼 있다”며 “깨달음을 겨냥한 수행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활용하려는 의지와 자비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성해영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비교종교학의 관점에서 깨달음은 ‘일상 의식 상태와는 구분되는 비일상적 체험 내지 변형 의식 상태’로 간주했다. 개인적 의식을 초월한 궁극적 실재나 존재의 근원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논했다.

또 중세 스페인 수녀인 아빌라 테레사의 신비체험을 소개하며 그녀가 추구한 윤리적 완성으로서 이웃사랑과 대승불교의 보살정신이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태원 울산대 교수는 불교학 입장에서 언어 환각에 빠져들지 않으면서 언어를 굴릴 수 있는 능력, 즉 언어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언어능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교수는 “선문에서 흔히 목격되는 언어 혐오증은 깨달음의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호균 온마음상담원 대표는 “상담이 증상이나 문제의 해결, 교정에만 치중하지 않고 자기를 깨우치게 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내담자로 하여금 새로운 안목을 열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밝은사람들연구소는 2006년부터 <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 <나, 버릴 것인가 찾을 것인가> <행복, 채움으로 얻는가 비움으로 얻는가> <믿음, 디딤돌인가 걸림돌인가> 등의 독특한 주제로 연찬회를 열고 책으로도 펴내고 있다. 

[불교신문3064호/2014년12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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