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신문에 실릴 예정이던

동료 사제의 사설이

양해도 없이 삭제됐다

사설의 비판적 내용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사제들이 힘을 모아

잡지를 창간하게 됐다

우리 교회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 몇 달 동안 주교 선거, 무료공연 형식의 환갑 파티, 진도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557킬로미터를 순례하는 등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밀도 높은 시간이 계속 흘렀다. 그런데 한 해가 기울어가는 지금, 기왕의 일보다 더 나를 흥분시키고 행복하게 하는 일이 마무리 되었다. 마음이 맞는 사제들 몇이 힘을 모아 잡지를 창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잡지는 웹진으로도 쉽게 볼 수 있도록 개방했다.

사실 이번에 갑작스럽게 잡지를 창간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우리 교단 신문에 실릴 예정이던 동료 사제의 사설이 아무런 사전 양해도 해명도 없이 삭제되고 다른 사람의 글로 대체되어 버린 것이다. 아마 사설에 담긴 비판적 내용이 편집 책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좀 불편했던 모양이다.

처음에 그 소식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어 그저 웃고 넘기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하게 다가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신문이며 누구를 의식하고 신문을 제작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편집 책임자의 결례는 말할 것도 없고 교단의 기관지 격인 이 신문이 이 정도의 부드러운 비판도 싣지 못한다면 이것은 교회의 언로가 완전히 막혀있다는 증거라는 깨달음이 왔다.

단언컨대 언로가 막혀있어 소통이 안 되는 집단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절대 권력이 필연적으로 부패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는 곧 교단의 위기이자 교회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정론이 통하지 않고 비판이 용납되지 않는 조직 내 억압적 분위기는 썩고 곪았다는 증거다.

그래서 교회의 생명력과 활기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막힌 언로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논란을 일으키는 교회의 쟁점사안을 어두운 지하에서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 지상으로 끌어올려 공론화시킴으로써 교회의 숨통을 열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건전한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언론 매체의 필요성이 심각하게 대두된 것이다.

그래서 사제들 몇이 모여 대응책을 논의했다. 결론은 이참에 언론 매체를 새롭게 하나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여망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뜻 있는 분들의 공감과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쉽게 잡지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만큼 제대로 된 언론에 대한 갈증이 우리 교회 안에 용암처럼 들끓고 있었던 거다. 이 잡지는 다양한 견해와 참신한 제안으로 우리 교회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고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한다.

나는 이 잡지를 통해 비전과 소망이라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신문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리라고 본다. 지금 이대로는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서로 격려하고 이끄는 ‘윈윈(win win)’의 관계로 더 성숙해지는 매체가 되기를 희망한다.

언로가 활짝 열리면 도대체 어떤 변화가 우리 안에 오게 되는 것일까? 한동안 무기력하게 멈추었던 심장의 박동이 다시 힘차게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새로운 언론 매체를 통해 달라질 교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두근거린다.

[불교신문3061호/2014년11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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