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

종광스님 강설 / 모과나무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서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진리가 되리라.(隨處作主 立處皆眞)” 선가오종 가운데 하나인 임제종의 개조 임제의현(?~867)스님이 남긴 사자후다.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스님의 말씀은 1200여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유효해 여전히 많은 이들이 스님의 가르침에 의지하고 있다. 임제스님의 법문을 정리한 <임제록>을 전 경주 기림사 주지 종광스님이 강설했다.

스님은 1918년 간행된 <교정 임제록>을 저본으로 선원과 승가대학, 불교교양대학에 강설한 내용을 최근 책으로 엮었다. 그저 고전의 선문답을 소개하는 것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로 바라보는 게 스님의 강설의 핵심이다.

<임제록>은 이름 그대로 임제스님의 어록이다. 임제스님은 휘는 의현이고 조주 남화 사람이다. 출가 후 황벽스님을 만나 깨침을 얻고, 하북성 진주 임제원에서 임제종을 열고 선풍을 진작시켰다.

‘진주 임제혜조선사 어록 서문’에 의하면 “임제원은 옛 나루에 접해 있어 오가는 사람들을 깨우치고 제도했다. 사람을 빼앗고 경계를 빼앗으며 영민하고 지혜로운 제자를 길러냈고 삼요삼현으로 납자들을 단련시켰다”고 한다. 중국의 선풍을 일으켰던 스님은 대명부 흥화사에 주석하다 867년 1월10일 입적했다.

‘교정 임제록 저본’으로 강설

그저 고전 선문답 소개 아닌

나의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

선지식의 가르침, 시간 초월해

여전히 죽비로써 현대인 경책

경전과 어록을 길잡이 삼아

스스로 깨우치려 정진해야

특히 스님으로부터 비롯된 임제종은 한국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인 조계종의 시작을 임제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 임제스님의 영향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고려 때 임제종이 유입된 이래 지금까지 조계종은 임제스님의 선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선수행을 가장 으뜸에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님들이 입적해 축원할 때면 “황매산 아래서 스스로 부처님과 조사들의 심인을 전해 받고 임제스님 문중에서 영원한 인천의 안목이 되어주소서”라는 내용이 빠지지 않는다. 또 스님들은 저마다 임제의 몇 대 후손임을 내세우기도 한다.

때문에 한국불교에서 <임제록>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 이상이다. 스님들 사이에서 임제선사의 어록은 필수교과나 다름 아니다. 2014년 지금도 <임제록>을 길잡이 삼아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스님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임제록>은 서문(序文) 상당(上堂) 시중(示衆) 감변(勘辯) 행록(行錄) 탑기(塔記)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상당은 임제스님이 직접 법상에 올라 한 법문으로, <임제록>의 핵심이다. 시중은 상당에 비해 자유로운 법문으로 대중 속에서 가르침을 보여주는 대중법문이다. 감변은 선승이 수행자의 능력 소질 등을 시험하고 점검하는 것이다.

행록은 행장을 기록한 것으로 스님의 삶과 수행의 여정이 잘 정리돼 있다. 어떻게 공부하고 깨달음을 얻었으며 어떤 사람들과 법거량을 하고 누구를 어떻게 교화했는지 기록하고 있다. 탑기는 탑에 기록된 간단한 행장이다.

종광스님은 <임제록>을 제대로 이해하고 삶의 지침으로 삼고자 한다면 행록부터 읽으라고 권한다. “어떤 말씀을 하셨고 어떤 구도과정을 거쳤는지 알게 된다면 <임제록> 행간에 숨어 있는 참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덕산의 방 임제의 할(德山棒 臨濟喝)’로도 잘 알려진 임제스님은 할과 방으로 납자들의 사량과 분별을 끊어줬다. 한 순간도 번뇌를 일으킬 수 없는 거침없는 직설로 긴장감을 심어주는 것은 임제스님의 특징이다.

스님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가르치고 “불법은 특별히 공부와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똥을 싸고 오줌을 누며 밥 먹으며 피곤하면 누워 쉬면 된다”고 역설한다. 임제스님의 질타에 어리둥절해 있다면 종광스님의 설명으로 눈을 옮겨보자.

종광스님은 임제스님의 본뜻을 부드럽고 친절하게 설명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책에는 또 선불교 탄생과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설명과 함께 선종오가(五家) 계보도표가 수록돼 있다.

“불교의 목적을 모든 사람이 함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고 보는 종광스님은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쓰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공허와 괴로움을 호소하는 현대인에게 고전과 같은 조사어록을 권한다.

스님은 “물질이 풍요로워진 반면 우리의 정신세계는 과거보다 퇴보했다”고 지적하며 “옛 선지식의 가르침은 10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죽비가 돼 우리를 경책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좋은 책도 보지 않으면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이어 “경전과 어록을 길잡이 삼아 스스로 깨치지 않는다면 불조의 가르침은 문자로만 남게 된다”며 “속세에 있으나 선방에 있으나 깨달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종광스님은 1968년 출가해 제5교구본사 법주사 불교전문강원 강주, 남원 실상사 화엄학림 강주 소임을 맡아 후학들을 지도했다. 또 기림사 주지를 역임하며 지역불교 활성화에 앞장섰으며, 학교법인 능인학원 이사장, 경주시장애인복지관장으로 불교의 사회활동에 일조했다.

특히 지역 장애인 복리증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08년 경주시 문화상을 수상했고 2009년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합니다> 등이 있다.

[불교신문3060호/2014년11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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