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모임 붓다로 살자, 25일 주어사 갈등 문제 야단법석

스님과 불자들의 결사모임인 ‘붓다로 살자’는 25일 조계종 전법회관 3층 회의실에서 ‘주어사 갈등 어떻게 풀어야 하나’를 주제로 야단법석을 열었다. 조선 후기 서학(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있었던 경기 광주 천진암과 주어사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당시 여주 주어사는 광주 천진암과 함께 서학자들을 보호했다는 이유로 폐사의 비운을 맞고 말았다. 현재 가톨릭계는 천진암 터에 이벽,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정약종 묘를 모시고 성지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불교계는 지난 7월6일 조계종 제2교구신도회가 ‘주어사 원형 복원 발원을 위한 천일기도’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지역 가톨릭계에서 특정종교를 상징하는 연등과 불교 관련 현수막 등을 철거할 것을 요구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월례모임은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이경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사가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주어사’, 민학기 조계종 제2교구신도회장이 ‘불교의 목소리’,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이 ‘천주교의 목소리’, 조현 한겨레신문 기자가 ‘제3의 시선’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발표 이후 ‘주어사 갈등, 어떻게 풀어야 종교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를 놓고 대중토론도 펼쳐졌다. 야단법석에서 펼쳐진 각 발제자들의 주요 발언을 정리했다.

이경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사

조선후기 새로운 사상이 움틀 수 있도록 사찰이 산실역할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시 민족종교들의 발상 근원지가 대부분 사찰이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불교에서도 불교만의 종교적 공간을 지키겠다고 색깔이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았다.

주어사나 천진암 문제는 현재 어느 쪽이 이곳을 장악하고 점유하느냐를 두고 (양쪽에서) 갈등을 벌이는 것 같다. 역사적 관점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다양한 성격이 축적된 역사적 장소인데, 한 가지 관점으로만 평가하고 그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은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천주교 교회사에서 주어사 강학을 한국천주교 기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천진암과 주어사 강학회가 과연 종교적 의미인 천주교 기원으로서 역할을 했을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주어사 스님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 역시 앞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기록이 없는 것 같다.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

절이라는 공간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교단에 비해 개방적이다.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다. 사찰은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한 효과적인 장소로 그 역할을 했다. 천진암과 주어사 또한 천주교에 있어서 어머니 모태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천진암에 백년 성당을 짓는다고 하는데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그 막대한 비용을 왜 투자하려고 하는지 의문이다. 한 지역을 특정종교의 성지로 지배하려는 것은 다종교 사회에서 위험한 발상이다.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진행하는 (성지화 사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향하는 것과 적대적이다.  

가톨릭 교회는 과거 악습을 되풀이 해 선 안 된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성당들은 인디오 신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신전의 돌을 분해해 성당을 만드는데 쓰거나 그 자리에 마리아상을 세우기도 했다. 일제가 우리 경복궁 앞에 총독부를 지은 것과 다름없는 행위다.

천진암 성지화 과정에서 불교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불교가 침투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배제했을 수도 있다. 특정 공간을 선점하려는 태도는 분명히 시정돼야 한다. 다만 이 두 성지는 불교보다 천주교에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천주교의 시작이라고 확정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천주교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다.

천진암과 주어사가 한국 가톨릭 교회의 발상지인가 하는 문제 또한 내부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천진암과 주어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천진암 성지가 대대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생각한다. 그전까지 조계종에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민학기 제2교구신도회장

여주 주어사지를 두고 불교와 천주교 간의 갈등으로 몰고가선 안 된다. 불교 입장에서는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처주교학자들을 보호한 역사적 사실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자는 게 핵심이다.  

여주시는 2012년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로서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 주어사지를 문화재로 지정했다. 경기 광주 앵자봉을 중심으로 여주시 쪽에 주어사지가 있고 광주시 쪽에 천진암이 있다. 이미 천진암은 천주교 성지로 대형 종교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천진암의 경우 사찰 대웅전 자리에 강학회에 참석했던 5명의 묘를 이장하는 등 사찰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여주 주어사지까지 천주교 성지로 만들면 경기도 일대가 천주교로 성지화 될 가능성이 있다. 천진암 사례가 주어사지에도 반복되면 불자들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천주교는 이곳을 성지화하기 위해 40여 년 전부터 노력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2012년 문화재 지정 이후에는 가시적인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주어사나 천진암은 원래 사찰이었다. 역사적 사찰을 온전히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주어사에 얽힌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돼 문화재로 지정된 이상 원형그대로 복원이 먼저다. 불교와 천주교의 갈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다종교 사회 종교평화의 상징적 공간으로 조성하면 후대에도 의미 있는 공간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조선 말 서학이 들어왔을 때 스님들은 서학자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했다. 1801년 신유사옥이 일어났을 때 천주교도들은 물론이고 스님과 불자들도 함께 수난을 당했다. 물론 불교가 천주교에 고마워해야 할 점도 있다. 천주교 측에서 주어사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름이 남아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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