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통 자장율사 그리고 영축산인의 한담

“내 차라리 계를 지니고 하루를 살다가 죽을지언정 파계하고 백년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吾寧持戒一日而死不願一生破戒而生)”

신라 때 자장율사가 왕이 재상의 자리를 권하며 나오지 않으면 칼로 목을 베겠다고 하자 단호히 거절하며 한 말이다. 대쪽 같은 스님의 지계(持戒)정신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장율사가 창건한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후학들에게 계법을 전하는 전계사(傳戒師)이자 율주인 혜남스님<사진>이 자장율사의 생애와 사상을 재조명했다. 스님은 최근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 그리고 영축산인의 한담>을 펴내고, 통도사와 자장율사의 관계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자장율사는 중국에서 사리를 이운해와 646년 통도사를 창건했다. <삼국유사> 권3 ‘탑상’에 ‘전후소장사리조(條)’에 따르면, 자장법사가 선덕왕(재위 632~647) 때 자장법사가 가지고 온 부처님 두골, 어금니, 사리 백 낱과 부처님이 입던 붉은 깁에 금점이 있는 가사 한 벌이 있는데, 사리 일부를 가사와 함께 통도사 금강계단에 안치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장율사는 귀국할 때 대장경 400함을 받아 사리와 함께 통도사에 봉안하면서 오늘날 통도사를 불보종찰(佛寶宗刹)로 만들었다.

혜남스님이 자장율사에 주목한 이유는 통도사를 창건한 주인공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지계정신 때문이다. 자장율사는 생명의 위협 앞에서, 생명보다 계를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고, 부귀영화와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장부가 나타나 무엇을 바라는지 묻는 꿈에서조차 “오직 중생을 이익 되게 하기를 원한다”고 당당히 밝히며 꿈속에서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책에는 계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겨 지키고, 중생을 위해 회향하겠다는 자장율사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계승해야 한다는 혜남스님의 평소 지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후학들에게 계법 전하는

통도사 전계사 혜남스님

자장율사의 생애 정리하며

대쪽같은 지계정신 재조명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2009년부터 4년간 연재한

칼럼 묶은 후반부에선

세간사 불교적으로 해석

책 후반부인 ‘영축산인의 한담’에서는 스님이 쓴 칼럼을 만날 수 있다. 스님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세간에 따뜻한 조언을 해줬다. 논설위원 소임을 스스로 내려놓으면서 스님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며 어른의 미덕을 보여주기도 했다.

스님이 다룬 칼럼 주제는 불교는 물론 2009년 미국 월가의 금융사기사건,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2010년 아이티 지진 등 다양하다. 추기경의 선종을 통해 열반의 의미를 생각하고,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는 불살생계와 함께 타인에 대한 배려를 이야기했다.

지진으로 고통 받는 아이티 인을 돕는 사연을 소개하며 수교이전 우리나라가 도움을 받은 예를 통해 인드라망의 세계와 연기법의 가르침을 전하기도 한다. 2010년 칠레 광산에서 매몰된 광부들의 사연을 접하고 전 세계인이 한 마음으로 그들의 생환을 기원한 얘기 속에서는 불교의 자비와 공자의 인(仁), 기독교의 사랑이 다르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이처럼 스님은 세간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해 언급하며, 불자로서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짧은 글이지만 그 안에 담긴 스님의 깊은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글 혜남스님 / 맑은소리 맑은나라

책 곳곳에 담긴 스님의 당부도 눈여겨봐야 한다. 혜남스님은 현대인들이 자장율사의 지계정신을 이으려면 먼저 보살계를 수지하고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살계의 특징은 보리심을 일으킨 사람은 누구나 받을 수 있고, 심지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도 받을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스님은 “보살계 중 48경계는 스승을 존경하고 방생을 권하며 명리와 사욕을 금하고 발원과 보살행을 권하는 것”이라며 “이 시대에 맞는 계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유통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출가자들 사이에서 공직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세태에 대해 따끔한 충고도 있다. 스님은 “수행자에게 있어 수행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라는 원력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쌓는 것이지만 우선은 자신의 내공을 쌓아야 한다”며 “무엇이든 하나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참선을 하든지, 염불을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하나를 지키는 수행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 설법교화를 하든지 강의를 하든지 종무를 보든지 이런 자세를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임명권자가 임명해주지 않고 대중도 내가 봉사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면 이 때는 스스로 하나를 지키는 공부를 더 하라는 부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세간의 이야기 외에 자신의 경험까지 담담한 필치로 풀어내는 스님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새 굵직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한편, 고불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혜남스님은 부산 대각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범어사 강원을 졸업한 후 선방에서 정진하던 스님은 해남 대흥사 강원에서 운기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다. 이후 일본 유학길에 올라 도쿄 다이쇼(大正)대학을 졸업하나 뒤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귀국 후에는 학인 스님들을 지도하는 데 매진했다. 동국대 강사를 비롯해 해인사, 법주사, 통도사 승가대학 학장과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중앙승가대 역경학과 교수를 역임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했다. 저서로 <꽃향기도 훔치지 말라>와 역해 <보현행원품 강설> <유행경> 번역서 <화엄경탐현기> 등이 있다.

[불교신문3058호/2014년11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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