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륙재는 물과 뭍에서 희생된 유주무주의 고혼을 천도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중생이 죽은 영혼까지 끌어안아 서로가 소통하고 화합하여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륙재가 지니는 화합의 메시지는 대립과 극단적인 감정의 토로만이 사회를 휩쓸고 있는 현실이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어 수륙재를 새롭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이 필요하며 포괄적으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폭넓은 사고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최근 수륙재가 조선조 초에 행해졌던 국행수륙재의 안목으로 진관사와 삼화사의 수륙재가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실행을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설행하고 있음은 다행한 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수륙재의 의례구조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전통문화적 요소는 문화와 예술이 가득한 세상에서 독창성 있는 창조가 필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날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수륙재에 대한 창조적 마인드와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세월호 사건이 얼마나 많은 갈등을 조장해 왔는가. 참사 초기만 하더라도 이 일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고 그것은 오랫동안 나쁜 관행이 축적되어 온 데 대한 소산임을 다같이 반성하면서 애닯게 죽어간 300여명의 영혼을 천도하는 깊은 애도의 정신을 발휘하여 왔다. 그것은 바로 수륙재의 정신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을 조성한 갈등구조는 화합하지 못하고 서로 갈등만 조장해 왔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구조는 너무 단세포적 사고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임을 실감하게 된다. 세월호 사건 해결방법이 그러하고 대리운전기사 사건이 그러하듯 너무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불합리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수륙재가 문제로 삼는 갈등구조는 시간적으로는 영겁의 시간에 걸쳐 쌓여온 것이며 공간적으로는 인간 사이의 상호 관계 속에서만이 아니라 산 사람과 죽은 사람 그리고 자연환경과 각종 신불(神佛)과의 관계 속에서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전제로 한다.

그러기에 수륙재의 진행은 느리기만 하다. 낮재, 밤재가 있고 3일재, 7일재 등이 있다. 의례음악은 범패 등의 선율이 보여주듯 길게 늘어뜨림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의례내용은 너무 심오하기만 하다. 그리하여 신비성을 내포한다. 여기서 수륙재의 체험자는 인고의 수행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륙재의 의식도량은 음악이 있고 미술이 있고 무용이 있고 문학이 있고 연극이 있다. 최고의 절정은 부처님을 대신 행하는 종사의 설법이다. 이 설법은 장엄한 의식도량에서 행하는 중생계의 화합의 메시지인 것이다.

수륙재는 이제 단순한 유주무주의 고혼을 천도하는 천도재로 전승될 것이 아니라 그를 새롭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이 필요하며 전체를 포괄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폭넓은 사고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수륙재는 창조적 마인드와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한 때라 생각해 본다. 지난달 설한 진관사의 수륙재와 삼화사의 수륙재는 바로 지금까지의 수륙재를 새롭게 바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불교신문3057호/2014년11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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