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의 생애와 선철학

소광희 지음 / 운주사

한국철학자 최초로 선사상과 서양철학의 회통을 추구했던 청송 고형곤(1906~2004)선생의 생애와 선철학을 정리한 책이 나왔다. 청송의 제자로,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자 청송장학회 이사장으로 있는 소광희 서울대 명예교수가 직접 정리했다.

청송은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연세대,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한국철학회 초대회장, 전북대학교 총장, 동국역경원 심사위원 등을 지낸 정통 철학자다.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물론 지식인 사회에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요즘 사람에겐 고건 전 총리의 부친으로 소개하는 편이 빠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불교의 선사상과 서양철학을 융합하는 작업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선불교를 현대철학 특히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으로 규명한 것으로, 지금까지 학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국철학자 최초로

선사상 서양철학 회통한

고형곤의 생애사상 정리

책에는 그의 생애와 사상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청송의 사상과 성격, 성향 등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경험들과 사건들을 여러 기록과 직접 들은 얘기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은 부모님과 어린 시절 스승이다.

군산 임피의 농가에서 나고 자랐는데 그가 학술원 저작상으로 받은 상금으로 어머니 묘비를 세워 각별함을 드러냈다. 또 한 이가 6세부터 15세까지 9년 동안 한문사숙에서 그를 가르친 제당 선생이다.

각별한 교육철학으로 학생들을 감동시켰는데, 한 제자는 자신이 죽거든 제당 선생 발치에 묻어 달라 유언해 거기 묻혔을 정도라고 한다. 청송도 역시 스승의 인품에 감화돼, 추모비를 세웠다. 또 자신은 제당 선생에게 배우며 닦은 학문적 기초와 사유방식, 행동거지를 닮았다고 자처했다.

연구 결집된 ‘선의세계’

최대 업적으로 평가받아

내장사 암자서 칩거하며

연구한 원효철학 ‘분실’

미완으로 남아 아쉬움 커

6·25로 피난을 떠나면서도 가방에 넣은 것은 칸트 전집뿐인 천상 학자였던 그는 32세의 나이로 연희전문 교수로 취임한 뒤 연세대, 서울대 등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1950년대 말에는 전북대 총장을 맡기도 했다.

전북대 총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난 청송은 정계에 뛰어 들었다. 그 이유에 대해 청송은 “1년간 예일대학 유학을 마치고 여의도 비행장에 내리면서 둘러본 한국과 한국인들의 삶이 미국과 비교해서 너무 가난하고 초라한데 놀라 이제는 철학이고 뭐고 다 걷어치우고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민중들을 위해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치솟았다”고 회고했다.

1963년부터 4년간 국회의원으로 활약하면서 그는 불교계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동국역경원 사업 예산을 대폭 올리는 데 일조한 것이다. “고려대장경을 현대어로 번역하는 사업은 그 자체로 굉장히 귀중하고 의의있는 문화사업”이라는 데 공감한 것으로, 이 인연으로 청송은 1970년 동국대 역경원 심사위원으로 초빙되기도 했다.

소광희 교수는 은사인 고형곤 선생(사진 왼쪽)에 대해 “후리후리한 큰 키에 구레나룻이 풍부한 준수한 미남”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지난 2002년 본지 ‘지성의 광장’기획시리즈에서 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와 인터뷰 모습.

또 그는 선거구민들이 정치자금을 걷어준 것으로 장학회를 만들어 고향의 중고생에게 장학금으로 나눠줬다. ‘청송장학회’인데 오늘날에는 재단법인 청송장학회로 확대됐다. 지난 2007년 제1회 청송학술상을 시상, 10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한 이래 지금까지 철학과 불교에 업적을 남긴 학자들을 후원하고 있다.

청송의 학문적 성과가 논문으로 나타난 것은 그가 국회의원 임기를 마친 후부터다. 그는 1968년 대한민국 학술원 논문집에 ‘선(禪)의 존재론적 구명’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 관련 논문을 다수 선보였다.

‘해동조계종의 연원 및 그 조류’ ‘추사의 백파망증(白坡妄證) 십오조(十五條)에 대하여’ ‘화엄신론 연구’ ‘추사의 선관(禪觀)’ 등이 잇달아 나왔다. 특히 ‘선의 존재론적 구명’으로 청송은 서울대 대학원으로부터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사상이 결집된 책도 발간됐다. <선의 세계>(1971)가 그것이다. 청송은 이 책으로 대한민국 학술원의 저술상을 받았고, 그 때 상금으로 앞서 소개한 어머님의 추모비를 선산에 세웠다. 이 책은 한국에서 철학이 연구되기 시작한 이후 최대 업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불행하기 그지없는 책”이 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내용이 너무 전문적이고 어려워서 도대체 독자가 없었던 것”이다. “불교를 아는 사람은 후설과 하이데거를 모르고 후설과 하이데거를 이해하는 사람은 선불교를 몰랐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청송의 연구성과가 얼마나 독보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2005년 794쪽 분량으로 다시 출간됐다.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1975년 청송은 내장산 내장사 입구 근방에서 백양사로 넘어가는 산길 초입에 조그만 암자를 빌려 10년 동안 혼자 기거하며 연구에 열중했다. 선불교와 원효 및 현대철학에 몰두해 정리한 내용은 그러나 분실돼 빛을 보지 못했다.

생애 마지막에 원효 연구를 어떻게든 만회하려 했지만 고령으로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게 돼 결국 시도에 그쳤다. 청송의 학문적 성과는 그렇게 미완으로 남아 여전히 아쉬움을 남긴다.

[불교신문3056호/2014년11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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