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어록

김호귀 지음 / 민족사

“저는 대풍질(한센병)을 앓고 있습니다. 과거에 죄가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 화상께서 저의 죄를 참회시켜 주십시오.” “그대의 죄를 가져오면 죄를 참회시켜 주겠다.”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대의 죄는 모두 참회되었다.”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이 마음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한센병을 앓고 있던 승찬스님이 중국 선종의 제2조인 혜가스님을 만나 죄를 낫게 해달라고 청했다가 죄의 성품이 공하다는 것을 알고 깨닫게 됐다는 내용이다.

혜가스님을 만난 승찬스님은 그 그릇을 인정받아 비구계를 받은 뒤 몸에 병이 나았으며, 이후 확철대오(廓徹大悟) 해 스승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이처럼 선지식들의 선문답(禪問答)에는 삶의 지혜를 꿰뚫는 촌철살인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한·중 선사의 생애와 사상

어록 편찬시 시대상황 등

일목요연하게 해설ㆍ정리

‘선지식 깨침’ 생생히 전달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초조달마를 시작으로 신라, 고려, 조선후기까지 선사들의 생생한 선어록을 총 정리한 책이 나왔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김호귀 교수가 펴낸 <선의 어록>이다.

이 책은 선사들의 언행을 기록한 선어록과 선의 경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선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한국의 선어록, 중국의 선어록, 선의 경전에 이르기까지 선과 관련된 거의 모든 선문헌들을 정리했다.

특히 이 책은 어록을 남긴 선사의 생애와 법맥, 편찬 당시의 시대 상황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 직관적인 선사상을 이해하고 선지식들의 활연한 깨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또 선수행을 위한 기본적인 지식을 제공하는데도 모자람이 없다.

책에 등장하는 선지식들의 역사적인 명장면을 읽고 있으면 탁월한 경지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이 가운데 선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 번 쯤 들어봤음 직한 이야기도 있다.

선사들 문답 새기다 보면

‘직관적 참구’도 가능해

‘선어록’ 역시 직제자들이

가르침 듣고 기록한 산물

“밤이 되어 부는 바람에 깃발이 움직였다. 두 스님이 논쟁하는 소리를 듣자니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 하고 다른 한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 했다. 논쟁이 오갔지만 도리에는 맞지 않았다. 곧장 혜능스님은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은 실로 그대들의 마음뿐이다’고 말했다.” 이런 장면을 상상하면 읽는 재미를 더해줄 뿐 아니라 직관적으로 그 뜻을 참구하도록 만든다.

사실 우리가 쓰는 어록이라는 말 자체는 본래 선종에서 직제자(문하에서 직접 배운 제자) 등이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기록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선어록은 “법어(法語) 및 수시로 행해지는 제자들과의 문답 등을 기록하고 있어 전체 내용을 요약한 성격이 강해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에 대한 생애 이해가 아울러 수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책은 어록 당사자의 일대기와 편찬을 둘러싼 시대 상황 등을 풍부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선어록이 선종의 어록이라는 뜻이지만 보다 넓은 의미로는 일반적인 선문헌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대부분 선사들은 일상의 담화를 통해 근본 가르침을 설하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문자로 기록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옛 선사들의 선어록을 읽고 있으면 탁월한 깨침의 경지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사진은 서울 약사암 일심선원에서 수좌스님들이 용맹정진하는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교학을 중시하는 교종과 달리 좌선수행과 직관적인 깨달음을 중시하는 선종은 이심전심(以心傳心)과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종지로 삼았는데, 선사가 직접 저술을 펼친 것이 아니라 스승의 언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제자들이 그들의 가르침을 필록했던 것이다.

저자는 “선은 언설을 통해 부처가 되고 중생이 되며, 꽃이 되고 물이 되고, 시간이 되고 공간이 되며, 삶이 되고 죽음도 된다”며 “왜냐하면 선은 이것저것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땅에서 넘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싫어 땅을 멀리하면 끝내 넘어진 땅에서 일어날 수 없다”며 “반드시 넘어진 땅을 의지해야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찬가지로 언설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더 이상 언설에 얽매이지 않는다”며 “언설을 딛고 일어설 때만 비로소 언설을 초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저자는 동국대 선학과에서 <묵조선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선과 좌선>, <선문답의 세계>, <금강경 주해>, <원효 열반경종요> 등의 저서와 함께 다수의 논문이 있다. 

[불교신문3050호/2014년10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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