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절 세운 것 기념해 제작한 비”

부여 사택지적비. 사진=문화재청.
백제인이 제작한 현존 유일의 비석(碑石)이 보물로 지정예고 됐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부여 사택지적비 등 8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부여 사택지적비는 백제 의자왕 시대 인물인 대좌평(백제의 고위 관직) 사택지적이란 사람이 은퇴 후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해 제작한 비(碑)다. 백제인 손으로 제작된 유일한 비석 형태의 유물이다. 이 비는 백제 후기 귀족들의 삶과 사상을 비롯해 백제 관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격조 있는 문체와 서법은 백제의 수준 높은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이 비를 제작한 사택지적은 백제의 대성팔족의 하나인 사택씨(砂宅氏) 출신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대좌평의 지위로 왜국에 사신으로 파견됐다고 한다.

강진 고성사 청동보살좌상은 높이 51cm로 윤왕좌(전륜성왕이 취하는 자세 가운데 하나로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왼쪽 다리는 결가부좌한 좌법) 자세를 취하고 있는 현존 불상 가운데 가장 크다. 이국적 얼굴에 우아한 미소를 띤 표정과 입체적으로 표현돼 있는 천의(天衣) 자락, 천의 자락을 손바닥으로 짚고 있는 모습 등의 생동감 있는 표현력 등으로 미뤄, 고려 후기 불상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은 17세기 초 조각스님들의 활동과 조각 전통 계승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불상이다. 이 보살상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조각승 원오스님이 수조각승을 맡아 1605년에 제작한 불상이다.

강진 정수사 석가여래삼불좌상은 목조좌대의 묵서(먹물로 쓴 글씨)를 통해 우협시불상(右脇侍佛像)은 1561년에, 본존과 좌협시불상(左脇侍佛像)은 1645년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본존과 좌협시불상에서 보이는 균형 잡힌 상호(相好)와 신체, 힘 있는 선 표현은 승일(勝日)의 조각 특징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우협시불상의 착의 형태 표현은 16세기 중후반의 조각 경향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8은 당나라의 반야가 진본(晋本) 60화엄경과 주본(周本) 80화엄경 가운데 ‘입법계품’만 번역한 것으로, 간행 시기는 11세기 초?중반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26행 17자본의 희귀본이며, 판각(板刻) 수법도 현존하는 <화엄경> 판본 중 매우 우수한 것에 속한다.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 34. 사진=문화재청.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4는 당나라의 실차난타(52∼710년)가 새롭게 번역한 것으로, 현재 해인사 사간판(寺刊板)의 모본(母本)으로 추정된다. 고려대장경을 간행할 때 저본(底本)으로 사용되었던 1098년 판본의 국내 전래본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희귀본이며, 본문 옆에 표시된 각필(角筆)의 점토는 각필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목우자수심결(언해)는 선(禪) 수행의 필독서로 고려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수심결>을 바탕으로 1467년(세조 13)에 목판본으로 간행한 것이다. 세조가 경복궁 비현각에서 구결하고 혜각존자 신미대사가 국역한 것으로 4편의 <법어>로 한데 묶여 있다. 이 언해본은 세조 때 불경 간행을 위하여 설치한 간경도감의 성격과 훈민정음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