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휴거사가 묻고 황벽선사가 답한 ‘전심법요’…수불스님이 다시 설하다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이 40년 수행정진의 세월을 살고서 대중에 내놓은 첫 책은 황벽희운(?~850)선사가 설한 <전심법요(傳心法要)>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 배휴(791~870)거사와 스승 황벽선사가 ‘마음’에 대해 묻고 답한 진리의 문답 <전심법요>. 수불스님은 <전심법요>를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평이하게 새로 풀어써서 ‘선수행 길라잡이’ 한 편을 완성했다. <흔적없이 나는 새>다.

“선(禪)은 존재의 궁극적인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인류의 고결한 정신문화유산 중 하나다. 따라서 선은 흔히들 ‘공개된 비밀’이라고 부르는 절대적 진리를 가리킨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복잡한 일상과 잡다한 고정관념에 얽매여, 이 실상(實相)을 보지 못하고 있다.”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은 “선(禪)공부는 우리 모두의 당면한 과제이지만, 보통사람들은 대개 이런 진리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일상의 번잡함에 쫓겨 쳇바퀴 돌듯이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참선수행을 통해 진리를 직접 맛보길” 바라는 수불스님의 간절한 바람은 책 서문에 고스란히 담겼다. “선공부는 우리 모두의 당면한 과제이지만, 보통사람들은 대개 이런 진리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일상의 번잡함에 쫓겨 쳇바퀴 돌듯이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선 일반인들에게 선이 무엇인지 알리고, 선공부의 필요성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할 때이다.”

1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독실한 불자였던 배휴는 842년 쉰살에 종릉 관찰사로 부임한 뒤 황벽선사를 홍주 용흥사로 모셔와 도를 물었다. 848년에도 완릉 관찰사로 일하며 선사를 개원사로 모시고 도에 관해 줄기차게 묻고 물었다. 이 때 받은 가르침을 적어두었다가 857년에 <전심법요>를 간행했다.

당시 배휴는 황벽스님을 처음 만나자마자 바로 마음이 열렸다. 깨친 것이다. 그는 진리에 대한 자신의 공부를 완성하기 위해 황벽스님 가까이서 틈날 때마다 법문을 청했다. 선사들은 대개 분별망상으로 인한 제자들의 질문을 바로 무찔러버린다.

“하지만 황벽스님은 재가 지식인 배휴가 남긴 이 기록의 미래적 가치를 내다보았는지는 몰라도 질문이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일일이 꼭닥스럽게 응해주었다”고 수불스님은 평했다.

“이 점이 바로 <전심법요>가 동양에서는 물론 서양에서도 ‘절대진리’를 ‘상대언어’로 풀어낸 드문 수작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상대적인 지식은 ‘알’수 있지만, 절대에 대한 지혜는 직접 ‘깨달아야만’ 한다. 제자가 근본진실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간절하게 물을 때, 스승은 절대의 자리를 바로 지적해준다. 이때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끝에서 절대와 계합하고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눈뜰 수 있는 인연 닿아

분명한 변화 느꼈으나

묵은 습기로 전보다 더 힘든

공부인에게 큰 도움 될 책

번뇌 망상은 직접 부딪혀

돌파하는 것이 최선”

수불스님에 따르면 이 ‘돈오견성(頓悟見成)’의 선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중국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에 의해 창시됐고 육조 조계대사에 이르러 대성했다. 이렇게 역대 조사들이 누구나 갖추고 있는 절대성품을 바로 눈앞에 제시하여, 제자로 하여금 정법의 안목을 체득케 하는 수행법을 ‘조사선’이라고 한다.

<전심법요>의 요체는 무엇인가. 수불스님은 ‘마음’이라고 잘라말했다. 황벽선사가 말하길 “이 마음 그대로가 부처고, 부처가 곧 중생이다. 그러므로 중생이라 해서 마음이 줄지 않고, 부처라 해서 이 마음이 늘지 않는다”고 하자, 수불스님은 “깨닫지 못한 사람은 말을 듣고 이치만을 좇지, 실제로 근본과 계합하여 변화를 수용할 수 없다”라고 설했다.

이어 “단지 무심(無心)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구경(究竟)”이라는 황벽선사가 “도를 배우는 사람이 당장 무심할 수 없다면 여러 겁 동안 수행해도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자, 수불스님은 “본래 무심을 깨닫지 않으면 어리석은 모습만 더하게 될 뿐”이라며 “무심하기만 하면 즉시 근본이 드러나는 법”이라고 단언했다.

‘어찌 자기 마음을 여읠 수 있겠는가’라는 배휴의 물음에 황벽선사가 “마음이 허공같고 마른 나무와 돌덩이처럼 되며, 다 탄 재와 꺼진 불처럼 되어야 한다”고 하자, 수불스님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강설을 내렸다. “깨닫고 시간을 보내면 분별은 점점 사라진다. 뭔가 자꾸 하려는 마음으로 공부하지 말고, 하되 하는 바 없이 지낼 수 있는 인연을 스스로 살펴야 한다.”

한국간화선연구소장 미산스님은 수불스님이 다시 설한 이번 <전심법요>에 대해 “방(榜)이나 할(喝), 혹은 격외의 선문답이나 오묘한 게송을 사용하지 않고 현대인이 알아듣고 바로 계합할 수 있는 평범한 언어를 사용한다”며 “오랫동안 대중을 상대로 간화선 수행을 지도해온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부중에 나타날 수 있는 장애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자상하게 제시해준다”고 말했다.

미산스님은 “배휴같이 본래 깨달음의 입장을 잠깐 맛본 수행자들이 더 이상 헤매지 않고 돈오의 입장을 더욱더 심화하고 구체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고 했다. 공부인들이 맑고 밝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지금까지 보지 않고 지나쳤던 의식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된다.

수불스님 강설 / 김영사

그 과정에서 무의식 깊이 각인된 업식들이 표면으로 떠오르면서 강렬한 저항이 느껴지거나 깨달음에 대한 갈망과 조급함, 분노와 절망 등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는게 미산스님의 설명이다.

이에 수불스님은 “<전심법요>를 통해 다행히 ‘돈오’를 체험했지만 아직 ‘점수’의 입장에 처한 수행자에게 ‘돈수’의 길을 제시하는 대목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수불스님은 “눈뜰 수 있는 인연이 닿아 그 순간만큼은 분명한 변화를 느꼈어도, 이후 묵은 습기에 의한 업이 정신없이 일어나 자기도 모르게 오히려 체험 전보다 더 심하게 끄달리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그럴 때 미혹되지 않기란 쉽지 않다”며 “이런 입장에 있는 공부인이라면 <전심법요>를 통해 참선공부 중의 많은 의혹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거듭 당부했다.

“번뇌망상은 직접 부딪쳐서 돌파해내는 방법 외에, 그것을 해소할 다른 길은 없다. <전심법요>를 통해 발심하여 근본진리에 대한 안목을 열길 기원한다…허공을 나는 새의 흔적이 없듯이, 붉은 화로에 떨어지는 흰 눈의 자취가 없는 것처럼, 일도청류(一道淸流)가 황벽스님의 자비에 대한 후학의 도리일 것이다.”

[불교신문3048호/2014년10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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